이문기 / 세종대 중국학과 교수

  2000년대 이후 국제질서 변화의 초점은 단연 미중 관계에 집중된다. 국제적 지위와 영향력에서 미국의 상대적 퇴조와 중국의 급격한 부상이라는 거대한 변화가 기존 국제질서의 구조를 변화시킬지의 여부가 근본적인 질문이다. 최근 이른바 ‘G2’로 불리는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탈냉전 시기 양국 관계의 변천이라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해돼야 한다. 

  탈냉전기 미중 관계는 흔히 ‘갈등과 협력의 복합적 관계’로 규정된다. 양국의 관계에는 정치체제와 가치규범의 차이, 그리고 현실적 이익의 상충이라는 경쟁 관계 때문에 기본적으로 갈등요인이 깔려있다. 반면 경제발전과 국가안보, 그리고 국내 정치 안정이라는 현실적 국가이익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충돌보다 협력이 더 필요하다는 인식 또한 매우 강하다. 즉 양국은 구조적 경쟁 관계로서의 갈등과 점차 심화되는 상호의존성 때문에 협력의 필요성이 중시되는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특성 때문에 탈냉전 시기 양국 관계는 갈등적 측면이 부각되거나, 협력적 측면이 부각되는 주기적인 변화를 반복했다. 양국 관계 변천을 큰 흐름으로 보면, 1990년대는 협력보다는 갈등적 측면이, 2000년대 이후에는 협력적 측면이 더 강조되는 경향을 보인다.

  1990년대 중국은 탈냉전기 국제질서의 변화를 ‘미국 일극’에서 중국을 포함한 ‘다극화’의 방향이 국익에 유리하다고 보았고, 객관적 정세도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미국은 중국이 경제성장을 발판으로 기존 국제질서에 중대한 도전을 시도하려 한다며 중국을 압박했고, 국제사회에 ‘중국위협론’이라는 강력한 담론을 유포시켰다. 당시의 미중 관계는 기본적으로 협력보다는 갈등이 부각되는 시기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양국관계는 협력적 기조가 강조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중국은 점차 미국과의 국력 격차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특히 자국의 경제발전과 정치 안정을 위해서는 평화적인 안보환경이 필수적인데 미국과의 불편한 갈등이 결코 유리하지 않다고 인식했다.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도 큰 변화가 시작됐다. 2001년 ‘9.11테러’ 사건은 미국의 세계전략과 대중국 정책에 일대 변화를 초래한 사건이었다.

미국이 테러 세력과의 전쟁에 역량을 집중하기 위해서는 중국 등 여타 세력과의 갈등을 줄여야 할 뿐 아니라, 중국의 협력이 매우 중요했다. 이런 배경에서 2000년대 이후 양국 관계는 갈등보다는 협력을 더 중시하는 방향으로 전환됐다. 기본적으로 협력보다는 갈등이 부각되는 시기였다. 2003년 중국은 과거의 다극화 전략을 철회하고, ‘평화부상’이라는 새로운 외교전략을 제시했고, 2005년 미국은 중국을 공동의 ‘이익상관자’로 규정하고 공동이익과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지난 20년 간의 양국 관계를 이와 같이 정리한다는 것은 매우 단순하고 거친 것이며, 실제로는 매 시기 매 국면마다 끊임없이 크고 작은 갈등요인이 출현했다. 가장 최근의 경우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들 수 있다. 미국 발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미국과의 국력 격차가 더 축소됐고 상대적으로 위기극복을 성공적으로 달성했다는 자부심에 충만했다. 반면 미국은 여전히 국내 경제의 구조적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으며 아프카니스탄, 이라크에서의 전쟁도 효과적으로 매듭짓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양국은 공히 외교전략에 대한 새로운 조정이 요구되는 환경에 직면했고, 이 과정에서 중국의 태도는 전례 없이 강경하고 공세적이었다.

특히 2009-10년 사이에 중국의 공세외교는 극에 달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달라이 라마 백악관 초청과 대만으로의 무기수출, 그리고 남중국해 영토분쟁에 대한 미국의 적극개입 천명 등이 중국을 자극했고, 이에 대해 중국은 전례 없이 강경한 어조로 미국을 비난했다. 또한 2010년 9월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발생한 중국 어업선과 일본 순시선과의 충돌사건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중국의 강경조치는 세계를 놀라게 했다. 당시 중국은 회토류 수출 중단 등으로 일본을 압박하여 결국 항복을 받아낸 바 있다. 이때부터 중국의 ‘공세외교 논란’이 확산됐고, 미국을 위시한 서방국가에서는 드디어 중국이 패권적 야욕의 발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며 ‘중국위협론’이 다시 확산됐다.  

  하지만 지난 8월 미국의 바이든 부통령 방중에서 확인했듯이, 최근 들어 양국은 서로 갈등보다는 협력의 필요성을 다시 강조하고 있다. 끊임없는 갈등요인의 출현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이를 부단히 봉합하면서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탈 냉전기 미겵� 관계는 갈등보다는 협력을 더 중시하고 우위에 두려는 ‘갈등적 협력 관계’라 규정할 수 있다.  

  물론 향후 장기적으로 이런 협력우위의 시대가 계속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장기적으로 양국 관계의 완전한 협력과 공존을 어렵게 만드는 가장 근본적 요인은 현실적 이익 관계의 충돌보다는, 서로 다른 정치체제와 가치규범의 차이에서 기인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20여 년간의 양국 관계가 크고 작은 갈등에도 불구하고 상호의존과 협력이 더 강조되는 배경에는, 타협과 협력이 충돌보다 각자의 국익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향후 미중 관계가 갈등과 대결적 관계로 표출된다는 것은, 각자가 추구하는 국익이 타협과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 전면적 경쟁구조로 발전할 때 가능할 것이다. 이 경우는 결국 자국 본토에 위협이 되는 국가안보 문제가 발생하거나, 또는 국제질서의 중대한 변동을 초래하는 가치규범상의 차이가 충돌할 때를 의미한다. 이 점이 향후 미중 관계의 협력과 갈등구조를 관찰하고 분석할 때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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