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래 / 단국대 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

2011년 7월 통계청이 발표한 2010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주택보급률은 101.9%로 바야흐로 모든 가구가 집을 가질 수 있는 시대에 이른 것처럼 보인다. 2005-2010년까지 5년 사이 총 204만 9천 호의 새로운 주택이 공급됐다. 이렇게 하여 주택 총 수는 13.1% 늘었지만, 전체 가구 중 자기 집을 가진 비율, 즉 주택보급률은 같은 기간 겨우 1.0% 늘어 61.3%에 머물렀다. 보급률에 비해 소유율이 이렇게 떨어지는 까닭은 집을 공급해줘도 그 혜택이 주로 유주택자에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실제 204만 9천 호가 공급되는 5년 동안, 주택의 7.8%만 무주택자에게 돌아갔고, 92.2%는 유주택자들에게 돌아갔다. 지금까지 정부의 주택정책은 기본적으로 무주택 실수요자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목적과 명분으로 주택을 최대한 공급하는 데 역점을 뒀지만, 소유율 증가란 측면에서 볼 때 결과는 참담하다. 이는 정부의 주택정책이 근본부터 잘못됐음을 보여준다.

정부의 주택공급주의

최근 들어 정부는 주택보급률 계산식 기준을 바꿨다. 가구 수 중에서 과거에 포함시키지 않았던 1인 가구나 비혈연 가구 등을 포함시켜 가구 수를 늘린 반면, 오피스텔, 거주용 호텔, 원룸 등 실제 거주하는 주택들은 주택 수 계산에서 뺐다. 그 결과 주택보급률이 옛날 기준으로는 110%를 넘어서지만, 새 기준에서 100% 남짓하다. 이는 주택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정부는 가구 수 대비 주택 수의 비율인 보급률도 주택부족 실태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고 해서 요즘은 천 가구 당 주택 수를 들고 나오고 있다. 2010년 인구 천 명 당 주택 수는 363.8호로 미국(2010년) 409.8호, 일본(2005년) 450.7호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 이렇게 보면 주택은 여전히 부족하다.

정부가 이렇게 주택의 부족을 입증하려 하고 또 강조하는 것은 공급을 계속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주무부서인 국토해양부를 중심으로 관련 산하 관련 기관과 그 종사자들은 대부분 공급주의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주택건설산업을 둘러싸고 이해 관계를 공유하면서 거대한 먹이사슬을 구성한 채, 우리사회 전반에서 산업과 정책이란 이름으로 부동산으로써의 주택을 지속적으로 생산하고 유통시켜, 그로부터 막대한 부를 취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전국 어디를 가도 개발현장이고, 또한 집을 짓는 현장이다. 주택은 차고 넘쳐나는 가운데, 근자엔 이른바 미분양마저 속출하고 있다. 이럼에도, 이들은 정부규제로 인해 공급이 줄고 거래가 줄어 집값이 오르고 또한 전세란이 왔다고 떠든다.

2010년 정부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공주택은 4.8% 쯤 된다. 그러나 우리의 공공임대주택 대부분은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민간에게 분양되는 것이다. 잠시 분양을 미뤄놓거나 기다리는 유형의 공공임대주택이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탈상품화된 주택이라 볼 수 없다. 따라서 사실상 대부분의 주택은 시장에서 내 돈을 내고 구매해야 할 전형적인 초고가의 상품이다. 대다수의 한국인에게 주택구매는 평생에 한 번 경험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소비다. 주택을 갖는 순간부터 이들은 최소의 부(부동산)를 소유한 중산층이 된다. 누구나 선호하지만 모두가 가질 수 없는 주택은 자연히 높은 상대적 희소성과 함께 집값의 지속적 상승에 따른 부를 저장하는 수단이 된다.

국제금융자본의 유입과 ‘하우스 푸어’

이렇다 보니 정부는 누구나 쉽게 가질 수 있도록 주택을 최대한 공급하여 그 값을 낮추는 것을 주택정책의 최대 소임으로 여기고 있다. 공급주의 주택정책이 만연하는 이면엔 정부의 입장이 있고, 이러한 정책명분에 편승하여 주택산업이 번창해 왔다. 주택관련 산업은 비단 주택을 직접 공급하는 건설부문만 아니라, 이에 기생하는 서비스업, 그 중에서도 주택관련 금융업이 최근 들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개인 소비자의 신용이나 사는 집을 담보로 하여 은행이 빌려주는 주택담보대출이나 건설업자의 건설사업 자체를 담보로 하여 천문학적 액수로 빌려주는 ‘프로젝트 파이낸싱’은 이른바 주택금융의 전형적인 예다.
사실 은행에서 개인이 집을 살 때 은행에서 대출을 받는 것이 지금과 같이 쉬워진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는다. IMF 위기 이후 2000년대에 들어 생긴 현상이다. 대출이 쉬워진 까닭은 한마디로 은행에 돈이 차고 넘쳐나기 때문이다. 돈이 넘쳐나는 것은 사회전반에 축적된 잉여자본이 은행자본으로 들어온 부분도 있지만, 근자엔 신자유주의 지구화의 힘에 의해 자본시장이 열리면서 국외의 놀고 있는 ‘값싼 돈’, 즉, 국내로 대거 유입된 국제금융자본이 우리 국민을 대상으로 벌인 돈놀이의 결과다.

건설자본과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주택의 공급 상황과 맞물려, 주택을 갖는 게 평생의 꿈이고, 또한 집을 이용해 막대한 불로소득을 얻고자 하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힌 개인 소비자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주택매입 경쟁에 참여하고자 한다. 과거와 달리, 최소한의 신용만 보장되면 집을 사는 데 필요한 은행대출을 받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니, 조건이 좋은 대출금을 얼마나 더 많이 받는가가 주택매입의 용이도를 좌우하기도 한다.

최근 들어 가계부채가 무려 천조 원에 육박하고, 그 중 3분의 2가 주택담보대출금인데, 이는 당연한 결과다. 개인의 입장에선 단순히 은행에 돈을 빌리는 것이지만, 자본의 관계에서 보면 주택이란 상품의 구매를 통해 주거적 삶의 영역으로 파고들어온 금융자본의 족쇄에 갇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금융부채는 가처분 소득 대비 1.5배로 OECD국가 중에서도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개인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이에 따른 대가로 고율의 대출이자를 꼬박꼬박 내야하고, 적당 시점이 되면 원금도 돌려 줘야 한다. 국제금융자본의 돈놀이를 대신해주는 것이지만, 그것도 소득이 계속 유지되고 집값이 오르면, 대출을 일으킨 개인의 입장에서도 돈이 될 만한 장사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상태가 되면, 즉 소득이 줄고 집값이 떨어지면, 소득을 수십 배 초과해서 빌린 주택대출금은 내 능력으로 갚아나가기엔 너무나 큰 액수가 된다. 소득의 상당분을 매달 이자로 내는 것도 이자율이 오르면 가계에 엄청난 무게를 얹는다. 거기에 주택보유에 따른 각종 공과금들마저 부담하게 되면, 집은 더 이상 황금의 알을 낳는 뭔가가 아니라 경제적 삶 자체를 지탱불가능하게 만드는 멍에가 된다. 주택이 없는 빈곤층이 아니라, 고가의 주택을 가진 빈곤층이 근자에 속출하는 것은 이런 까닭이다.

2010년 기획재정부는 ‘번듯한 집이 있지만, 무리한 대출과 세금 부담으로 인해 실질적 소득이 줄어 빈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우스 푸어’로 정의했다. 주택마련을 위한 대출 원리금과 이자 상환 때문에 가계 지출을 줄여 생계에 부담을 느끼는 가구라는 뜻이다. 하우스 푸어는 부동산 상승기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내 집을 마련했지만, 부동산 가격이 하락하면서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집을 내놓아도 팔리지 않아 매월 막대한 이자비용을 감수하면 전락한 ‘집 가진 가난뱅이’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하우스 푸어는 156.9만 명 가구이고 총 가구원 수는 549.1만 명에 이른다. 이들은 주로 수도권에 거주하면서 아파트를 구매한 30-40대 중산층들이다. 자산의 대부분을 거주주택에 투자하고 있는 이들의 평균 자산은 3억1천105만 원이고, 그 중 38%에 해당하는 가구의 1년 부채는 증가했고,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가구도 19.3%에 이른다. 이들은 평균적으로 매달 가처분 소득의 42% 이상을 대출 원리금을 갚는 데 쓰고 있다.

 주택은 차고 넘치지만 소유 집중으로 집이 없는 가구가 여전히 4할에 이르고, 그나마 힘들게 마련한 소유자조차 막대한 금융부채로 온전한 경제적 삶을 지탱할 수 없게 됐다. ‘빈곤의 주택’이라 부를 수 있는 이 현상의 뿌리엔 결국 ‘자본’이 도사리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의 주택이 과도하게 상품화되고, 거기에 자본의 최고 형태인 금융자본의 실핏줄이 파고 들어와, 개인 소비자가 힘들게 모아 놓은 ‘피 같은 돈’을 빨아먹는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지금의 ‘주택의 풍요와 빈곤의 주택’이란 현상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해결책은 주택의 탈상품화다. 즉.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공공재(복지재)로 주택의 상당부분을 돌려놓아야 한다. 국민의 다수가 그러한 주택에서 평생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결국 국가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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