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제 / 화학공학과 석사과정

 
 
  열심히 노를 젓기만 하면 우리는 무사히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아니다. 주변의 변화를 무시한 채 방향타를 고정하고 노를 저으면 목적지에서 멀어질 것이다. 바닷물의 흐름과 바람의 방향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이 시대의 우리들에게는 ‘여유’가 없다. 좁은 건물에서 수천 명이 다닥다닥 붙어 지내면서도 아는 사람 하나 없고, 학점 따느라 남의 눈치 보며 다니기에만 급급하다.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는데 내 시간만 빨리 가는 것처럼 조급하고, 남들에게 뒤처질까 종종걸음치게 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정작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이룰 수 있는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우리는 주변을 무시한 채 열심히 노만 젓고 있지는 않은가?
   
  얼마 전, 잠잘 시간도 없다고 엄살을 떨었더니 부모님께서 이번 추석은 내려오지 말고 쉬라고 하셨다. 그러나 추석이 되자 나는 밤새 실험을 마친 후 입석표를 끊었다. 어른들께 인사하고 친구들 얼굴 한 번 본 것 빼고는 늘어지게 잠만 자고 왔을 뿐인데도 집에 다녀온 것이 내게 ‘활력소’가 됐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은 우리의 삶을 풍요롭고 행복하게 만든다. 아마도 ‘쉰다’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 있게 삶을 즐긴다는 ‘재충전’의 의미일 것이다. 

  우리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공부를 하는 학생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행복’을 간과하며 산다. 인간답게 사는 것이 죽도록 책만 파고, 문장 몇 줄 더 머리에 집어넣는 것은 아닐 것이다. 시간도 ‘여유’가 있어야하고 공간도 ‘여유’가 있어야 하며 일에도 ‘여유’가 있어야 한다. 심지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여유’가 있어야 관계가 안정적으로 흐를 수 있다. 우리에게는 ‘여유’를 경험할 ‘시간’이 필요하다. 

  열역학법칙에 의하면 자연은 안정해지려는 경향(엔탈피 감소)과 자유롭게 움직이려는 경향(엔트로피 증가)으로 인해 평형상태를 유지한다. 우리가 사는 푸른 지구도 한 때는 태양처럼 뜨거웠지만, 오랜 ‘시간’동안 많은 과정을 거쳐서 수많은 생명을 보듬을 수 있는 지금의 모습이 됐고 지금 우리가 재앙처럼 말하는 온실효과 덕택에 지구는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게 됐다. 이제는 다시 과도한 온실효과 때문에 그 평형이 깨질 위기에 놓인 것이다. 

  뜨겁고 빨갛던 행성이 시간과 여유를 가지고 지금의 아름다운 푸른 지구가 됐듯이 우리도 ‘뜨거운 열정’과 ‘냉철한 이성’을 아우를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가진 푸르른 결정체, 청년들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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