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우 / 민주언론 시민연합 대표

[종편,다양성의 늪] ‘미디어 빅뱅이냐, ‘미디어 빅팽(烹)’이냐. 올 하반기 종편방송이 개국을 앞둔 상황에서 지금 방송계는 뉴미디어의 등장으로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종편의 출범이 ‘미디어 산업 진흥’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일까. 종편을 둘러싼 우려들에 대하여 시청자의 입장에서 고찰해보자.<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 ① 미디어렙, 무엇인가?   ② 정권의 그림자, 미디어  ③ 언론의 보수화  ④ 경제효과라는 환상  ⑤ 종편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미디어렙 법을 제정하라며 언론 노조가 파업에 들어갔다. 시민들은 조금 의아한 듯하다. 언론사들끼리 밥그릇 싸움하는 것인데 왜 시민사회와 정치권까지 끼어들어 시끄럽게 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무상급식, 정리해고, 가계부채, 등록금문제 등에 이르기까지 숱한 사안들이 널려 있는 마당에 잘 들어보지도 못한 미디어렙 법안을 만들라며 언론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다니 고개가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기자가 취재를 하지 않고 PD가 제작을 하지 않겠다며 파업을 한다면 스스로 언론인 노릇을 하지 않겠다는 것 아닌가? 아니다. 진짜 언론인 노릇을 해보자는 것이다. 이대로 미디어렙 법안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언론인은 제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디어렙은 미디어를 대신해서 광고주에게 신문의 지면이나 방송의 광고를 팔아주는 회사다. 지금까지 KBS나 MBC, SBS 등 지상파 방송사는 방송사가 직접 광고주에게 방송광고시간을 팔지 못했다.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를 통해서만 방송광고를 사고 팔 수 있었다. 여기에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같은 대기업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08년 11월, 헌법재판소는 코바코만을 통한 방송광고 판매가 헌법 불합치라는 판결을 내렸다. 방송사가 직접 영업을 하지 못하게 한 것은 방송 공공성을 위해 필요했지만, 당연히 코바코의 독점을 막기 위한 대체 법안 또한 필요했다. 하지만 입법 책임을 맡은 국회는 헌재 판결 이후 3년이 다되어 가도록 손을 놓고 있었고 한나라당내에서는 논의조차 제대로 되지 않아 당론도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도 그다지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지상파만 놓고 보면 미디어렙 법안을 그다지 서두르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문제는 올 연말부터 시작되는 종편이다. 현재 그들은 무법상태에서 방송광고를 직접 팔겠다고 나서고 있다. 뉴스, 드라마, 버라이어티, 등 모든 장르의 방송을 내보낼 수 있는 종편 방송은 지상파 방송과 사실상 다를 바가 없다. 조중동 방송은 여론의 반대를 무릅쓰고 MB정권과 한나라당이 정치적 의도로 만들어낸 사생아들이다. 한나라당은 현재 지상파의 경우, 미디어렙을 통해서 방송광고를 판매하도록 하지만 조중동 방송에게는 고삐를 풀어놓았다. 이는 조중동 방송이 더 쉽게 방송광고를 끌어갈 수 있도록 특혜를 주자는 것이다.

헌재도 인정했듯이 광고를 방송사가 직접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취지는 방송의 제작이나 편성이 광고주에 휘둘리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직접 판매하면 방송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광고주를 압박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방송의 힘으로 협박하여 광고를 갈취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거꾸로 광고주는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도를 못하도록 하기 위해 광고를 미끼로 내걸 수도 있을 것이다.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조차 광고주의 협찬을 받기 위해 그들의 입맛에 맞게 만들어질 것이다. 권력과 자본에 대한 비판과 감시는커녕 그들을 위한 홍보의 통로가 되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릴 우려가 크다. 건강하고 합리적인 민주적 여론 형성의 공간은 붕괴될 것이다.

방송광고를 직접 판매하는 것을 그대로 둔다면 조중동 방송만 광고주에 휘둘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송사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이미 SBS는 지주회사의 자회사를 통해 방송광고를 판매하겠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벌써 방송광고시장은 이전투구가 될 조짐을 보인다. 그렇게 되면 방송사가 광고주와의 유착을 막아서 방송공공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한다는 우리사회의 합의는 허물어지게 된다.

이렇게 각 방송사들이 방송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광고판매시장을 교란하면 결국 쓰러지는 것은 건강하고 다양한 언론 환경이다. 어차피 광고시장의 규모는 한정돼 있다. 새로운 매체가 등장한다고 해서 광고주들이 광고예산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기존 예산을 빼서 나누어준다. 정부는 광고시장을 늘려서 조중동 방송이 먹고 살 거리를 더 만들어 주겠다고 나섰지만 억지로 늘릴 수는 없다. 전문 의약품의 광고를 허용하며 광고에 대한 규제를 풀어서 15년까지 지금보다 50% 정도 늘리겠다고 하지만 현실성은 없다. 광고시장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아니다. 시장은 정부의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한국의 GDP 대비 광고비중은 다른 선진국보다 높은 상태다. 더구나 외국시장에 수출하는 기업이 광고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소비자들에게 제품과 서비스를 팔 기업들이 광고를 한다. 한국경제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내수비중이 낮아서 광고비중이 높아질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조중동 방송이 직접영업을 하면서 광고를 끌어가면 새로운 광고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매체의 광고시장을 잠식하게 된다. 여전히 광고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MBC나 SBS 등의 방송사는 상대적으로 영향을 덜 받을 것이다. 반면 광고시장 경쟁력이 취약한 신문, 지역방송, 종교방송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다. 다양한 매체들이 다양한 여론을 만들어 가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반인데, 그 기반과 생태계가 허물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가 작금의 사태를 방송사들 간의 밥그릇싸움으로만 알고 구경만 한다면 미래는 자명하다. 광고주와 언론이 우리의 눈과 귀를 가릴 것이고, 상업적으로 타락한 언론과 대광고주들의 세상이 될 것이며 다양한 시각과 의견은 사라지게 돼 민주주의의 뿌리가 문드러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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