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가은 / 영화감독

“저게 뭐냐? 정정당당하게 해야지!”

   영화 <불한당들> (2007)
   영화 <불한당들> (2007)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소개 장면이 TV에서 흘러나오자, 응원을 나온 남자들이 짜증을 낸다. 2006년, 월드컵 기간 중 한 호프집의 풍경이다. 백인이 아닌 ‘깜둥이’들이 한 데 뒤섞여 프랑스 팀이 되는 건 반칙이고 편법이라며, 벌써부터 언짢은 기색이 역력하다. 한국 팀이 경기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자 이내 화살은 구석에서 조용히 술을 홀짝이던 이주노동자들에게 날아간다. 한국인도 아니면서 한국 팀을 응원하는 ‘저것들’이 거슬린다고, 대놓고 반감을 드러내기도 한다. 결국 한국 팀은 패배한다. 술집을 가득 메웠던 열띤 응원 열기는 참담한 절망으로 뒤바뀌고, 분노를 참지 못한 몇몇 이들이 좀비로 변해 나머지 사람들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장훈 감독의 <불한당들>은 발칙하고 유쾌한 상상력과 날카로운 풍자로 무장된 작품이다. 영화는 32분의 짧은 러닝 타임 동안 한국 사회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뒤틀린 애국심과 집단주의를 꼬집고, 우리 안에 내제된 배타적, 폭력적 민족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에 코미디적 요소를 가미하여 극에 재치와 활력을 불어 넣는다. 이는 페이크 다큐로 출발하여 코미디, B급 좀비 물로 거듭나는 장르의 이종교배 역시 성공적으로 진행되도록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영화의 포인트는 시선의 전환이다. 감독은 도입부에서부터 외국인 노동자를 취재하는 감독 성호의 시선으로 극을 전개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영화의 주체는 성호에서 이주 노동자들로 바뀐다. 이때, 극의 관점도 자연스레 이동하여 관객에게 원투 펀치를 날린다. 성호의 카메라 뒤에 숨어 이주노동자들을 관찰하던 관객들은 이유 없는 적대감과 차가운 멸시의 시선으로 사방이 가로 막힌 이방인의 자리로 옮겨지게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부끄러운 자화상과 마주한 관객의 얼굴은 당혹감과 창피함으로 물든다.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하나로 뭉친다’는 미명 아래 ‘우리 아닌 것들’에 대해 불합리한 분노를 서슴없이 표출하는 한국인들의 모습이다. 그 내재된 폭력성과 뒤틀린 민족주의의 이면은 영화 속, 살아있는 시체로 변한 자들이 서로를 공격하며 뜯어 먹는 모습에 비유된다. 우리는 이 영화가 가리킨 ‘불한당들’이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영화의 끝부분에서 좀비로 변한 성호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것처럼, 불한당으로 변해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이제는 솔직하게 대면해야 할 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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