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효 / 대구대 일반사회교육학과 부교수

나라 안팎이 ‘경제’로 시끌시끌하다. 더불어 경제학도 인기다. 하지만 오늘날의 경제학이 당면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하기에 과연 적합할까. 본 기획에서는 복잡한 양상으로 진행되는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분석해내는 대안적 경제학에 주목하여, 정치·경제적 국면에 따른 경제학의 패러다임을 학술적인 관점과 접맥시켜 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시대의 경제학> 글 싣는 순서 
① ‘경제학’이 아닌 경제학   ② 경제학 제국주의  ③ 케인즈 경제학의 두 갈래  ④ 신자유주의의 경제학 
⑤ 마르크스 경제학의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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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이 아닌 경제학을 찾아서 

                                                                           안현효 / 대구대 일반사회교육학과 부교수

   현재, 반복되는 경제위기로 인해 경제학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하지만 경제학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오늘날의 경제학, 대학교 경제원론에서 배우는 현대경제학은 이른바 ‘주류경제학’이라 불린다. 이는 1960년대 하버드 대학 교수인 사무엘슨이 정식화한 ‘신고전파종합’에 기초한 것이다. 신고전파종합이란 영국의 경제학자 마샬이 정식화한 수요공급곡선을 중심으로 경제 주체 개인의 합리적 의사결정을 분석한 신고전파경제학에 케인스의 거시경제학을 통합시킨 것을 말한다. 이러한 교과서적 경제학은 비록 십수 년 동안 조금씩 변화하긴 했으나 물리학의 균형 개념에 기초하고 있어 필수적으로 수학과 그래프를 요구한다. 따라서 경제학에 입문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매우 까다로운 일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어려운 경제학을 배우고 나면 경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자면, 합리적 의사결정에 미시경제학은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는 한편으로 자본주의 사회 안에 사는 우리들은 효율성과 합리성의 이데올로기에 매일같이 노출되기 때문에 배우지 않아도 이미 체득했기 때문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원리를 알아봤자 24시간 내내 일일이 적용하며 살 수도 없기 때문이다. 거시경제학은 실업률, 인플레이션, 환율 등 매일의 거시경제의 동향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도움이 된다. 문제는 이러한 교과서인 경제학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사회를 이해하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점에 있다. 
  현재의 경제학은 우리가 처한 경제 위기의 원인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위기의 원인을 이해할 수 없으니 처방도 없다. 왜 그럴까? 모든 학문이 그렇듯이 경제학도 자신의 고유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방법론의 레이더에 잡히지 않는 것은 연구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래서 위기의 시대에는 위기 자체를 연구할 수 있는 대안적 경제학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경제학은 하나가 아니다. 경제학은 경제학‘들’이다. 경제학이 독립된 학문이 되기 전에는 도덕철학의 조류로써만 이와 같은 학문이 존재했다. 경제라는 것 자체가 분리된 연구주제가 된 것은 부나 경제에 대한 독립된 관점의 도입 이후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것도 처음에는 순수한 경제적 현상만을 다루지 않았다. 사회발전의 관점에서, 보다 포괄적인 사회 전체의 맥락 속에서 다루었다. 그래서 초기의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이라고 불렸다. 경제학의 원조, 즉 정치경제학의 원조는 잘 알다시피 아담 스미스다. 아담 스미스는 철학자로서 자신의 학문적 경력을 시작했으나, 이후 최초의 경제학 교과서라 할 수 있는 <국부론>(1776)에서 경제적 부의 생성과 증가의 문제를 생산의 관점에서 다루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는 국가의 부에 대한 관심, 즉 부국강병에 대한 관심으로서 국민국가적 관점을 이미 전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부국강병에 대한 관심을 가진 학자는 아담 스미스가 처음이 아니었다. 이전의 논의와 구별되는 그의 관점은, 부의 생성과 증가가 그 나라 국민들이 제공한 노동의 양과 질에 달려있다는 생각이었다. 국민총소득이니, 국민총생산이니, 성장률이니 하는 것은 모두 이러한 관점에서 접근한다.
  그런데 경제학이 설명해야 하는 것은 부를 증가시킬 방법만이 아니다. 경제학이 등장하기 이전에도 경제에 대한 관념이 없었던 것은 아닌데 대표적인 것은 거래의 공정함에 대한 기준이다. 언뜻보면 실제의 상행위는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식으로 나타난다. 그러면 상인들은 차액을 어디서 얻는지, 그 차액이 얼마여야 정당한지 등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상업은 고대 그리스 시대에도 있었으므로 거래행위, 즉 상행위 시의 기준금액이 도대체 정당한가 아닌가라는 질문이 그때부터 있어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에도 부 그 자체를 추구하는 행위에 대한 경멸이 존재한다. 부 자체가 아니라 유용함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치론이 나왔다. 상품이 일정한 가격을 가질 때 이 가격이 얼마나 정당한가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으로서의 가치론이 등장한 것이다. 가치론은 매우 복잡한 이론인데, 여기서는 오늘날의 주류경제학에 가치론이 없다는 것만을 지적해두기로 하자(정확히는 가치론을 포기했다). 즉 정당성에 대한 논리(가치론)가 없는 채 극대화의 논리(합리적 선택)만 있다는 것이다.
  초기의 경제학의 중요성은 자본주의 사회의 미래에 관심을 가졌다는 점이다. 아담스미스는 초기 경제학자 중 가장 낙관적인 비전을 제시한 사람에 속한다. 그 이후의 경제학자들, 예를 들어 맬서스나 리카도 같은 경제학자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맬서스는 처음에는 빈민들의 인구증가에 의해 빈곤이 누적될 것이라고 했고 다음에는 생산된 물건을 구매할 구매력이 떨어져 과잉생산이 일반화될 것이라고 했다. 리카도는 반대로 그런 문제는 없을 것이나, 오히려 실질임금이 상승하여 이윤이 떨어지고 이에 따라 자본주의의 확대재생산이 정지되어 몰락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자본주의가 맬서스와 리카도의 말대로 된 것은 아니나, 이들이 자본주의 축적 동학의 일단을 포착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의 공황을 보면, 과잉생산 공황의 측면과 이윤율 저하 공황의 측면들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주류경제학은 이러한 공황을 설명하지 못한다. 공황은 체제 내의 자연발생적 동학이 아니라 외적 충격에 의해 나타나는 이상현상에 불과하다고 할 뿐이다. 대안적 경제학은 이러한 문제들을 답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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