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민 편집위원

1989년 당대 미술계에 한 획을 긋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공공미술의 방향에 큰 영향을 끼친 일화로 남아있다. 현대조각의 대표적 작가로 꼽히는 리처드 세라의 작품 <비스듬한 호>가 뉴욕 한복판에 설치됐다가 시민들의 반발로 철거된 것이다. 이 작품은 거대한 철재 강판이 광장을 가로질러 세워진 작품이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입장에서 그의 작품은 공간에 대한 폭력, 미술의 강요, 가부장적 미술의 권위와 일상생활의 위계질서에 대한 증명이었다. 결국 거장의 작품은 철거됐지만, 공공미술의 공공개념을 ‘장소’에 국한된 개념에서  보는 사람, 공간, 환경 등 ‘수용’ 중심의 개념으로 시각을 확장시킨 계기가 됐다.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1997년 서울시 강남구 포스코 빌딩 앞에 세워진 조형물인 스텔라의 <아마벨>은 설치 2년 여 만에 철거 시비에 휘말렸다. 작품은 세계철강협회 사무총장의 추천으로 당시 포항제철 경영자가 주문하여 설치한 작품이다. 주제는 <꽃이 피는 구조물>로, 찌그러진 쇳조각을 불규칙하게 뭉친 쇳덩이 형태로 만들어져 뒤편의 빌딩과 절묘한 대조를 이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경영진들이 교체되면서 지역주민들의 흉물스럽다는 민원을 내세워 철거의사를 밝혔고 여러 논쟁을 낳다가 1999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됐다. 

 ■ 리처드 세라, <비스듬한 호> (1989)
 ■ 리처드 세라, <비스듬한 호> (1989)

 ■ 프랑크 스텔라, <아마벨> (1997)
 ■ 프랑크 스텔라, <아마벨> (1997)

공공미술은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 장소에 설치, 전시되는 작품이자 도시에 사는 사람들과 그 문화의 다양성, 공공장소의 기능, 공간에 대한 이슈로 주어진 장소에 대한 설치 미술이나 장소 자체를 위한 것이다. 이 점에서 <비스듬한 호>와 <아마벨>은 작품과 공간, 감상자, 작가와의 관계가 유기적으로 연계되지 못했다. 이는 비단 두 작품만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박정민 편집위원 narannyoz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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