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무두 / 빅이슈코리아 대외협력국장

1997년 11월 IMF이후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의 아사와 동사 소식이 연일 언론을 장식할 때 ‘이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는가’ 라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목소리가 있었다. 그 당시 장로회 총회상담소 안기성 소장이 홈리스를 돌보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 이들이 하나둘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시민봉사단체가 ‘거리의 천사들’이다. ‘거리의 천사들’에서는 생필품지원과 의료지원, 사회복귀교육, 노숙인봉사단, 구직활동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해 왔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구직활동이었다. 사회는 홈리스를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홈리스임을 숨기고 경비로 취업이 된 후 2년이 지나 동료들에게 자신이 과거 노숙을 했었다는 것을 고백하자 다음 날부터 동료들의 왕따에 시달리다 일을 그만두게 되는 경우가 생겨날 정도였다. 홈리스들이 당당하게 할 수 있고 주변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를 절실히 찾아 헤매다가 알게 된 것이 영국에서 시작한 빅이슈였다.

<THE BIG ISSUE>는 고든 로딕과 유년시절 노숙의 경험이 있던 편집자 존 버드가 1991년 영국에서 창간한 대중문화잡지이다. 홈리스에게만 잡지를 판매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자활의 계기를 제공하는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사회적 기업이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5,500명이 <THE BIG ISSUE>를 판매하며 자립에 성공했고, 현재 영국에서만 500명의 빅이슈 판매원이 활동하고 있다. 데이비드 베컴, 버락 오바마, 레이디 가가, 조니 뎁, 조앤 K. 롤링 등 유명인이 재능기부로 참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THE BIG ISSUE>는 현재 세계 10개국(영국,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일본, 대만, 한국 등)에서 발행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스트리트페이퍼라는 매거진의 장르를 탄생시켜 현재 40개국 112개 회원사가 가입돼 기사와 컨텐츠를 공유하는 INSP(International Network of Street Paper) 설립의 주역이 되기도 했다. 영국에서만 주간 15만 부를 판매(ABC, 2009)하고 있는 주력지이다. 창간 7년을 맞이하는 일본 빅이슈도 현재 격주로 발행하며 월 7만 부의 판매를 기록하고 있다.

<빅이슈코리아>는 해외처럼 대기업의 펀딩으로 시작된 것이 아닌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시작됐다. 빅이슈의 한국판 발행을 꿈꿔오던 많은 이들의 격려와 지지 속에 ‘거리의 천사들’이 앞장섰다. 2010년 5월 서울형 사회적기업으로 선정돼 서울시로부터 인건비의 일부를 지원받게 되었고, 같은 해 7월 5일 창간했다. 월간으로 진행하면서 2011년 4월까지 40명의 판매원이 월 15,000부의 판매를 기록했다. 빅판 한 명당 60만 원의 수익을 올리고 있고, 2011년 5월부터는 월 2회 발행을 통해 안정적인 수익확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2010년 3월 일본 빅이슈 본사를 방문할 당시 흥분을 감추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홈리스만의 일자리가 수익으로까지 이어갈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눈앞에 현실로 펼쳐졌기 때문이다. 일본 판매담당을 맡고 있는 곤노 씨는 나에게 빅이슈의 가장 중요한 점은 ‘대중과의 소통’에 있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 말이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소통이란 단어가 새롭게 다가온 것은 창간 후 3개월이 지난 2010년 11월에 판매원들의 어려움을 듣는 주말 차모임에서였다. 당시 우리는 거리 판매에서 가장 중요한 날씨의 변수에 고민하고 있었다. 겨울은 찾아왔고, 유난히 추운 겨울이었지만 빅판이 판매를 포기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엇이 이들을 영하 15도의 추위에서도 견디게 했을까. 그것을 빅판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었다. “나를 기다릴 독자들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를 지킬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단골 고객들과 잡지를 주고받으며 형성된 관계는 지속적인 소통으로 발전해 이제는 자립의 유지가 고객과의 약속이 됐다. 그제야 곤노 씨의 조언이 떠올랐다. “빅이슈의 가장 중요한 점은 ‘대중과의 소통’에 있습니다.” 빅이슈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마치 투명인간 취급을 받았던 이들이 이제 빅이슈를 통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단골 고객을 만들고, 지속적인 소통이 가능해 진 것이다. 실제로 눈앞에 펼쳐진 대중과의 소통을 통한 홈리스의 자립은 새로움 그 자체였다.

빅이슈는 모든 홈리스의 대안이 잡지판매라고 말하지 않는다. 잡지판매가 맞는 홈리스가 있고 다른 재능이 있는 홈리스가 있다. 이들의 다양함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에게 맞는 일자리 사업이 지속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의 사회적기업은 시작에 불과하다.

현재, 홈리스를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담당자들이 많은 자문을 구해온다. 어떻게 <빅이슈코리아>가 유지될 수 있느냐고 말이다. 빅이슈의 핵심은 관계의 재설정에 있다. 빅이슈에서는 매주 토요일 오전 빅판 차모임이 열린다. 일주일간의 판매성과를 서로 이야기하면서 각자가 터득한 판매노하우를 서로 공유하고 회사에 요구사항을 제안한다. 또한 회사는 빅판에게 지켜야 할 의무사항을 알리고 다양한 정보를 제공한다. 홈리스지원단체는 지금까지 서비스를 주고받는 일종의 상하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은 이 대상자과 함께 일을 해야 하는 곳이다. 어제까지의 클라이언트를 오늘부터 파트너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협력해서 일을 해나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한다. 그것은 비단 홈리스 뿐만 아니라 모든 취약계층을 고용하는 사회적기업들에게 모두 해당될 것이다.

빅이슈코리아는 모든 홈리스자활사업이 빅이슈와 같이 대중과 유기적으로 연계되어 사회구성원들의 지지를 받으며 진행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 진정한 사회통합의 시작이며, 당당한 자립의 첫걸음이 될 것이란 걸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