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아날로그적 인간’이라 자처하는 사람일지라도 컴퓨터를 이용해 글을 쓰거나 인터넷을 통해 전세계를 넘나드는 정보를 접하고 있을 것이다. 당장 주위만 둘러봐도 첨단이든 구형이든 기계를 쉽게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종이 스마트폰’까지 등장했다. 이렇게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른 기술발전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야말로 누구나 쉽게 첨단 기술을 소유하고 사용할 수 있는 시대다. 이제 공상과학 영화의 시나리오 같은 사회보다 과학·기술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가 더욱 어렵게 됐다. 

20세기 과학·기술은 복잡하게 발전해 왔다. 크게 봐서 세 가지 경로가 있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의 등장으로 고전역학의 패러다임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과학이론 전체 틀의 격동, 복잡계 과학이라는 패러다임의 형성, 20세기 후반 산학연 체제 확립에 따른 ‘거대 과학·기술 체제’의 등장, 또 그에 따른 기술공학의 대규모 발전이 그것이다. 이 세 흐름들은 20-30년 단위로 발생하여 과학 내부는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과학·기술의 도구성에 주목하는 경향이 강하며, 거대 과학·기술 체제의 복잡한 변동과 그에 맞물린 사회문화적 심층 구조의 변동은 간과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새롭게 출현하고 있는 21세기 과학·기술 혁명에 내재한 진보적 계기와 파괴적 계기, 기회와 위험을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대응하는 데 큰 장애가 된다.

 이 새로운 과학·기술 시스템은 자연, 인간, 사회에 대한 기존 지식의 한계나 문제점을 극복할 진보적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이전까지 인류가 대면하지 못했던 새로운 위험을 증폭시킬 수도 있다. 미시적으로 정보나 지식이라는 범용화 된 개념이 전면화 돼 정보와 지식의 경제적·정치적 활용이나 가치의 문제가 주된 쟁점이 되었을 뿐, 오히려 그것을 가능케 한 현대과학·기술의 특수하고 복잡한 변화는 비가시적이 되고 있다. 현대사회 속에 침투된 과학·기술의 위상과 비중, 기능과 성격의 급격한 변화를 인지하는데 오히려 장애요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환경오염이나 유전자 조작식품 등 일상적인 위험에서부터 생명복제 및 나노기술의 위험 등에 이르는 다양한 영역에서 신종 위험도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과학 전문가 뿐만 아니라 전사회적으로도 이 양면성을 포착하는 성찰적 시각이 중요하다.

레이 커즈와일의 ‘GNR 혁명’


레이 커즈와일은 <특이점이 온다>(2005)에서 21세기 과학·기술의 발달을 “세 개의 혁명이 꼬리를 물고 중첩되어 발생하는 것”으로 본다. 이 세 개의 혁명은 ‘유전학의 혁명, 나노기술의 혁명, 로봇 공학의 혁명’ 이른바 ‘GNR혁명’이다. 커즈와일에 따르면 “현재 우리가 처한 지점은 ‘G(Genetics, 유전학)’혁명의 초기 단계”이며 “생명이 간직한 정보 처리 과정을 이해함으로써 인체의 생물학을 재편하는 법을 익히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DNA에 기반을 둔 생물학을 자유자재 활용하게 된다 해도 인간은 ‘2류 로봇’으로 남을 것”인데 이러한 생물학적 한계를, “우리 몸과 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분자 수준으로 정교하게 재설계하고 재조립”하는 N(nanotechnology, 나노기술), 즉 나노기술로써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가장 강력한 혁신은 다가올 ‘R(Robotics, 로봇공학)’혁명”으로 “인간의 지능을 본받았지만 그보다 한층 강력하게 재설계될 인간 수준 로봇들이 등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커즈와일에 따르면 우주에서의 생물학적, 기술학적 진화는 여섯 단계를 거친다. GNR혁명은 이 중 다섯 번째로 “기술과 인간지능의 융합”이 일어나 지구에서 만물의 영장으로 군림해온 인간의 위상에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이다. 커즈와일은 “기술과 인간 지능의 융합”이 일어나면 기존의 인간 지능을 능가하는 인공지능의 출현이 필연적이라는 예상을 내놓는다.

이 기술발전 시나리오에서 ‘R(robotics, 로봇공학) 혁명’은 거의 수직 상승하면서 현재까지는 인간의 자연지능을 부분적으로 본받고 있지만 이후에는 그보다 한층 강력하게 스스로를 재설계할 수 있는 인간 수준의 로봇들이 등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지식의 성격 자체가 크게 변화할 것이라는 사실, 즉 20-30년 후에는 지식생산의 주도권이 인간 지능에서 비생물학적 지능으로 넘어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커즈와일은 2030년대 말에서 2040년대 초를 “비생물학적 지능이 생물학적 지능을 압도”할 것이라 예측한다. 그러나 이 기술들이 구현되는 과정 자체에서 양산될 수많은 위험들을 예상하는 것도 가능한데, 이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눠보면 커즈와일이 ‘존재론적 위험’이라고 분류하는 위험들 (마구잡이로 자기 복제한 나노기계들, 생명공학으로 변형된 바이러스의 위험, 태양계를 빨아들일 만한 블랙홀)이 있다. 이 외에도 가치론의 문제와 관련된 위험이 존재한다. 인간지능을 초월하여 인간의 통제력에서 벗어난 강력한 AI시스템이 등장했을 때 이들과의 대립으로 인류 자체가 절멸한 위험이다. 그리고 위에서 논의될 철학적·윤리적 가치들을 구현하는데 등장할 정치·사회적인 차원의 위험이 등장한다.

‘배치’로써의 과학적 합리성

20세기 말의 정보통신혁명은 한편으로는 커뮤니케이션 차원에서 하나의 지구촌을 창출하게 하고 지식생산성을 고도화한 생산력 발전의 핵심동력으로, 생활의 편의를 확대해 왔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생산 관계와 맞물려 생산 과정의 자동화를 통해 노동자를 퇴출하고 사회문화적 양극화를 확산시킨 기술적 동력이기도 했다.

GNR혁명 역시 대다수 인간들을 생산과정에서 퇴출시키는 위험을 야기할 수 있으며 나아가 로봇군대의 힘으로 인해 전지구적 규모의 파시즘이 등장할 수도 있다. 이렇게 볼 때 GNR혁명은 커즈와일이 낙관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방향으로 존재론적, 가치론적, 정치적 위험을 동시에 수반하고 있다. 특히 커즈와일은 이 거대한 과학·기술체제의 자기증식이 가져올 위험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여 그에 대한 예방책이 필요함을 강조하면서도 궁극적인 해결책은 자유시장체제에 맡겨두자는 위험한 주장을 하고 있다. GNR혁명이 가져올 수 있는 현실적인 위험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따라서 이런 식의 반과학적이며 비과학적인 태도를 해체하고, 과학적 합리성과 인류적 가치를 다시금 연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과학적 합리성과 인류적 가치를 재연결한다는 것은 곧 인간을 둘러싼 외부세계와 인간 자신의 내부세계를 합리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과학적 합리성이라는 것이 객관과 주관, 관찰적 질서와 개념적 질서가 중첩되는 과정에 탄생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로레인 데이스톤과 피터 갤리슨은 그들의 공동 연구에서 18-19세기의 과학도감 제작 방식이 이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각 시대의 과학·기술자들은 특정한 규제적 이념에 따라 ‘자연을 그릴’ 뿐만 아니라 ‘과학적 자아’를 형성하는 기술을 동시에 실천한다. 그렇지만 3세기 동안 과학 이미지로써, ‘가능한 충실하게 자연을 종이위에 고정시키는 자연의 재현’인 과학도감이 유일했던 과거와는 다르게, 21세기의 나노기술을 추구하는 과학자들의 목표는 단지 이미지를 포착하는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기기를 생산하기 위한 하나의 국면으로 이미지를 조작하는데 있다. 이렇게 근현대 과학은 객관성과 주관성이 함께 맞물려야만 가능한 특정한 배치의 합리성을 추구해 왔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러한 관점은 과학에서나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자명하다고 파악했던 주관과 객관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반성이 필요함을 보여준다.  
 

전민지 편집위원 | amber.jeon@gmail.com



 

참고문헌: 심광현, <21세기 과학·기술 혁명에 대한 철학적 성찰 :’GNR’ 혁명의 문화·정치적 함의를 중심으로>, 
                   《문화과학 57호》 , 문화과학사, 2009 
                    레이 커즈와일(장시형, 김명남 역), <특이점이 온다>, 김영사, 2007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