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환 / 전국귀농운동본부 텃밭보급소장

일본의 대지진이 결코 남의 일 같지 않다. 겨우내 소·돼지 구제역으로 불안케 하더니 급기야 이웃 나라 일본에 끔직한 재앙이 들이닥친 것이다. 일본만이 아니다. 지구 곳곳에서 대지진의 횟수가 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런데 이런 천재(天災)들은 과연 천재에 불과할 뿐일까. 그 자체야 천재임에는 틀림없겠지만 그로 인해 입은 엄청난 피해를 살펴보면 거기에는 인재(人災)로 불릴만한 요인들이 더 많아 보인다. 자연 재해를 제대로 고려하지 않은 채 바벨탑 마냥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쌓아올린 문명들이 사실상 피해를 더 키운 것이다. 사실 우리가 자연 재해라 부르는 태풍, 지진, 가뭄, 화산, 홍수, 빙하 등의 지구 활동은 특별한 현상이 아니다. 어쩌면 이는 오히려 지구 자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것이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지구의 현상들은 매우 드문 것이어서 특별하고 비정상적인 현상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이 아니라 지구라는 기준에서 보면 그 현상들은 항상 있어 온 지구만의 독특한 생명 현상이요, 활동이나 다름없다.

천재로 인한 피해를 더욱 키운 지금의 눈부신 문명은, 다르게 보면 석유로 쌓아올린 석유문명이나 다름없다. 석유가 없으면 한시도 유지하기 힘든 문명인데, 언젠가 다가올 석유 고갈로 인한 위기에 우리는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이를 생각하면 일본의 대지진 얘기는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석유 고갈로 인한 위기를 도시농업으로 극복한 나라가 있다.

220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의 40%가 농지이고, 그곳에서 도시인들이 퇴근 후 남는 시간에 유기농사를 지으면서 먹을거리를 자급하는 도시, 바로 쿠바의 수도 아바나가 그곳이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옥상에서, 길가 자투리 땅에서, 콘크리트로 덮여진 빈터에서, 그리고 군부대 뒷마당에서 유기농으로 채소가 길러지고 있고, 관공서와 학교 뒷마당에도 주차장 대신 밭이 만들어져 있다. 도시 곳곳의 텃밭에서는 허브가 자라고 있고, 닭들이 주택가 한복판에서 노닐고 있으며, 자동차 대신 자전거가 길거리를 누비고 있는 모습이 인구가 220만 명이나 되는 대도시의 진풍경이 되고 있다.

쿠바의 선택

쿠바는 소련이 키워준 사회주의 국가였다. 소련과 동유럽사회주의 국가들은 쿠바에서 생산된 사탕수수, 커피, 담배를 위주로 한 단작 대량 생산물을 시세보다 비싼 가격으로 매입했다. 석유를 수입할 때는 국제 시세보다 싸게 공급해 줬다. 쿠바에 있어서 소련은 거의 어머니와 같은 나라였다.

쿠바가 세계적인 복지선진국가로 발돋움 한 것도 사실 소련 덕분이었다. 무상의료를 진작부터 실현했던 쿠바의 의료 복지는 유아사망률이 1천 명 당 6.4명으로 7명인 미국보다 앞선다. 교육도 유치원에서부터 박사까지 모두 무료다. 어떤 오지에도 학교와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기숙사가 있다.

소련이 무너지면서 쿠바에 위기가 닥쳐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동안 경제봉쇄는 했어도 식료와 의약품 같은 인도적 지원 물품은 막지 않아 왔던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마저 봉쇄해 버렸다. 이는 북한의 경우보다 더 강력한 경제봉쇄 조치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증유의 허리케인까지 닥쳐 쿠바는 도저히 회생불가능한 상태로까지 빠져들었다. 먹을 것이 동나고, 에너지도 바닥났다. 석유와 부품이 수입되지 않자 공장은 80%가 문을 닫았으며, 실업율이 40%에 이르렀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식단을 근대화한다며 육식으로 바꿨다가 고기 수입이 끊기자 밥상도 텅 비게 됐다. 이런 백척간두에서 쿠바는 도시를 경작하겠다고 나섰다. 수도 아바나가 중심이 되어 도시농업을 추진했던 것이다.


도심 한복판의 조그만 빈 땅을 경작했다. 거둬내기 곤란한 콘크리트 바닥에는 이른바 상자 텃밭을 만들어 꽃 대신 작물을 키웠고, 관공서, 학교, 군대 뒷마당도 밭으로 만들었다. 길가나 기찻길 옆의 땅, 하다못해 쓰레기장도 밭으로 만들었다. 현재 아바나에는 가정텃밭, 개인농가, 기업농장, 협동조합농장, 자급농장 등 8천 곳이 넘는 도시농장이 있고 3만 명 이상의 시민이 경작하고 있다. 이로써 아바나 전체 면적의 40%가 농지로 둔갑하게 되었다. 아바나를 중심으로 이뤄진 도시농업으로 쿠바는 십여 년 전에 이미 쌀 65%, 채소 46%, 과일류 38%를 자급할 수 있었다. 이제는 달걀과 꿀, 토끼와 꽃, 약용식물까지 도시에서 생산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아바나가 단순히 농업도시로만 변모한 것은 아니었다. 농업을 중심으로 그들은 도시 한복판에 7백 헥타르나 되는 녹지 공원을 새로 조성했으며 1천 7백만 그루의 나무를 심어 도시 전체를 녹화할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의약품 수입이 중단되자 허브와 약초로 대체했고, 침과 뜸 같은 동양의술을 확대했다. 수입이 끊긴 석유를 대신한 것은 자연 에너지였다. 미국이 석유는 봉쇄해도 태양은 봉쇄할 수 없기에 태양 발전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 에너지로 떠올랐다. 풍력과 수력도 활용했으며, 사탕수수를 이용한 바이오에너지 개발에도 성공해 에너지 전체의 30%를 감당했다. 주된 교통수단도 자전거로 바뀌었다. 원래 자동차 도시였던 아바나가 자전거 도시로 탈바꿈한 것이다. 세계적인 자전거 도시로 유명한 중국의 북경에서 기술을 배워왔다. 그런데 지금은 북경이 자동차 도시로 바뀌고 아바나는 거꾸로 자전거 도시로 바뀌었다. 이렇게 아바나는 도시농업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생태도시로 재탄생했다.

한국형 도시농업의 전망 그리기

지금 세계 곳곳에서 도시농업이 행해지고 있다.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저개발 국가도 마찬가지다. 도시근교에서 행해지는 전업농부들의 도시농업이 아니라 시민이 주체가 되는 도시농업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도시농업은 크게 선진국의 취미·여가형과 저개발국가의 생계형이 있다. 일본을 비롯해 영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미국의 주요 도시에서 행해지고 있는 시민농장이 대부분 취미·여가형이라 할 수 있다. 생계형은 쿠바를 비롯해 세계 곳곳의 가난한 나라들에서 실천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올해 들어와서는 붐이다 싶을 만큼 곳곳에서 도시농업으로 북새통이다. 이미 수도권에서는 귀농본부 텃밭보급소 참여 농장이 10여 개가 넘는다. 지방에는 부산, 광주, 전주, 대전, 대구에서 시작됐다. 농촌진흥청을 비롯해 정부 기관에서도 도시농업 전담팀을 설치해 적극 추진하고 있는 중이다. 지자체 중에는 광명, 수원, 안양, 서울 강동, 송파, 전남 광주 등에서 도시농업 지원 조례가 만들어져 관과 민간의 도시농업을 지원하고 있다. 중앙에서는 국회에서 도시농업 육성법이 준비 중에 있다. 도시농업의 춘추전국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형국으로 너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어 오히려 난립과 거품이 걱정되는 수준이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가 지향해야 할 우리만의 도시농업 전망을 가져야할 시점이다.

한국의 도시농업은 유럽형과도, 쿠바형과도 달라야 한다. 우리의 도시농업은 콘크리트로 막힌 흙을 살려내고, 죽어가고 있는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데 기여하는 생태 운동이어야 한다. 생명의 근본인 흙이 파괴되고 농촌이 망가진 데에는 흙이 싫어 너도나도 도시로 떠난 도시인들의 책임이 크다. 또한 현재 자연파괴와 오염에 크게 기여하고 있는 것도 도시인들이다. 도시농업이 건강한 먹을 거리를 먹고자 하는 웰빙형 운동이 되어서는 안된다. 도시농업은 죽어가는 흙을 살려내고, 거름자급을 통해 자원을 순환시키는 실천의 장이 돼야 한다. 그 결과로 안전한 먹을 거리를 내 손으로 생산하는 운동으로 발전해야 도시농업이 대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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