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리한 개발로 말미암아 인간에게 돌아오는 재해들을 마주할 때마다 환경론자들은 개발을 멈춰야 한다고 강력하게 말한다. 날로 썩어가는 새만금 갯벌을 지키기 위해 포클레인을 온몸으로 막아도 봤고, 천성산을 관통하는 터널 준공 반대를 위해 도룡뇽의 이름을 빌어 법정에 소송도 내봤다. 그러나 이들의 요구는 모두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이하 원전)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귀담아 듣지 않고 있다. 일본을 강타한 지진·쓰나미의 여파로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물질이 누출된 이후 전 세계가 원전의 위험성에 공감하고 그 수를 줄이거나 없애는 것에 합의하고 있는 데도 말이다. 오히려 한국은 기존 원자로 21기에 더해  9기를 현재 짓고 있거나, 앞으로 지을 계획이다. 아직 사업부지가 결정되지 않은 신규 원전에도 향후 원자로 6기가 건설될 예정이라고 한다(시사IN 184호 참고).

이제 그만 개발을 멈추라는 환경론자들의 주장을 이리도 무력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그들에게 순진하다고, 혹은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말한다. 새만금, KTX, 그리고 원전을 포기하라는 말은 곧 경제적 효과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너희들이 누리는 삶은 그것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이미 원전을 줄이는 것에 사회적 합의를 이룬 독일의 경우, 10기의 원전을 포기하는 것이 당장의 에너지공급 중단으로 이어지지 않을 만큼 재생에너지 공급이 가능해졌고, 장기적으로는 수력·풍력·태양열·태양광·바이오매스·지열 등의 재생에너지에서 에너지 공급 100%를 충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는 미래과학의 청사진이 아니라, 지금 독일이 실시하고 있는 에너지 정책의 모습이다.

이명박 정부가 하는 것처럼 바로 옆에서 벌어진 우리의 미래를 모른 척 하기는 너무도 쉽고 편하다. 그러나 우리는 현실을 직시해야만 한다. 원전을 지속하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편의는 물론이거니와 우리의 삶 자체가 중단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정부는 계속 ‘우리는 안전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꾸준히 정부와는 다른 입장들이 발표하고 있다. 지구가 야기하는 변화들은 언제나 예측을 넘어서기 때문에 6.5 강도의 지진과 10m이상의 쓰나미로부터 한국이 안전하다는 보장은 누구도 할 수 없다. 한국형 원자로(가압형 원자로)는 안전하다는 주장도 전문가들에 의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수천의 세관으로 둘러쌓인 가압형이 도리어 관리가 어렵기 때문이다. 원전을 반대하는 것, 원전 없는 세계를 요구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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