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 / 사회공공연구소 연구위원

민영화란 일반적으로 ‘정부가 공급하던 공공서비스를 민간부문에 이전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서비스의 질을 향상시키고 정부의 역할 범위를 축소시키고자 하는 일련의 조치들’이라고 정리된다. 영어로 표현하면 privatization으로써, 사유화된 공공부문을 매입하는 당사자가 민중(people)이 아니라 사기업(私企業)임을 의미하나, 민영화로 자의적으로 번역되면서 공공부문에 대한 왜곡된 이해를 야기하고 있다. ‘민(民)’이라는 용어는 백성을 지칭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반면, ‘관(官)’은 착취, 국가의 통제, 관료의 경직성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영화(民營化)의 본질은 공공조직을 ‘비효율적인’ 관료가 운영하는 것에 반대하여 국민이 운영하도록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가 공동으로 이용해 온 공유 재산을 이윤을 추구하는 소수 개인의 사적 재산으로 바꾼다는 것이다. 즉 민영화가 아니라 ‘공(公)’적 조직을 ‘사(私)’적 소유로 전환시킨다는 의미에서 사유화(私有化)가 올바른 표현이다.

민영화, 얻은 것과 잃은 것


민영화의 신봉자들은 민영화가 소비자에게 이익이 된다고 주장하곤 한다. 민영화로 효율성이 향상되어 서비스 요금이 인하되고, 서비스 질이 향상되며, 산업 재투자도 확대되는 동시에 고용 유연화도 확대된다는 것이다. 실제 민영화 초기에는 인력의 구조조정과 설비 감축의 효과에 공급자들 사이에 경쟁이 가열되면서 가격이 낮아지고 서비스도 개선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반 세계화 활동가인 미헬 라이몬과 크리스티안 펠버가 쓴 <미친 사유화를 멈춰라>(2010)는 자연 독점으로 인하여 경쟁체제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으로도 경쟁체제가 성숙하지 않은 물과 전기·가스 등의 에너지 공급, 보건·의료체계, 교육제도, 연금보험, 교통망, 전화망, 인터넷 망을 민영화한 결과 오히려 재앙이 초래되었음을 보여준다. 정부 독점 기업이 소수의 공급자가 있는 민간 과점 체제로 전환되면서 시장이 분할되고 나면 동업자들끼리 서로 담합을 하게 되고, 서비스 가격이 상승하면서 민영화론자들이 외쳤던 경쟁의 효율은 사라져 버린다. 그 결과 서비스의 질이 열악해짐은 물론, 서비스의 공급도 불안정해지지만, 정작 이를 규제하고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은 부재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정전 사태가 이를 잘 보여준다. 전력 민영화 이후 기반 시설에 대한 투자가 감소하는 한편 도매 가격을 끌어올리면서 소매 업체들이 잇따라 도산했고 정부는 여기에 엄청난 보조금을 쏟아 부어야 했다. 물론 소매 가격도 크게 뛰어올랐다. 가격을 인상하기 위한 발전기의 ‘전략적 가동 중단 사태’도 발생하여 전력의 안정적인 공급도 위협받았다.

영국에서 민영화한 철도를 다시 공영화했던 것은 철도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누적적자와 저수익 구조를 해소하기 위해 철도 회사들이 무리하게 인력을 감축하고 유지·보수비용을 절감하면서도 정부의 규제 조치를 거부한 결과, 안전 사고가 빈발했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국영 기업이던 시절보다 효율이 떨어졌고 서비스도 망가졌던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 빈발하고 있는 KTX 열차사고 또한 수 년 간 진행된 대규모 인력 감축으로 유지 보수 업무가 외주용역업체로 넘어가고, 철도공사가 무분별한 수익성 위주의 경영 방침을 취한 결과다. 철도업무 민영화·외주화·상업화 등이 열차와 승객의 안전을 위협할 수 있는 것이다.

민간 기업은 수익을 우선하고, 이익이 없는 것엔 소홀하게 마련이다. 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태에서 나타난 도쿄전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초기에 대응을 제대로 했더라면 방사능 누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30년 전부터 추진해온 공기업 민영화의 결과 금융자본이 최대 주주가 된 민간기업의 수익성 논리 때문에,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계속된 안전성 경고를 무시했고, 사고 후에도 파장 축소에 급급했으며, 일본 정부는 이에 휘둘려 국가적 재난을 낳고 말았다.

민영화에 따른 공적 자산의 처분은 국가 재정수입 증진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수입은 일회적일 뿐만 아니라 기업 가치 미만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실제 그 수혜는 모두 시장 지배력이 강한 소수의 민간 자본에게 돌아가고, 민영화의 수익증대 효과는 투자자 또는 주주들에게 편중 배분되는 반면, 이로 인한 민간 독점의 폐해와 부담은 국민들에게로 전가된다.

정부가 비효율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효율로 모든 걸 따질 수는 없다. 공기업이 비효율적인 것은 사실 정치적 결정의 결과다. 이로 인해 공기업은 저소득층을 위한 사회복지성 요금 체계를 갖춰야 하고 수익성이 없는 산간벽지에도 안정적인 공급을 해야만 하며, 사회적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재정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하지만 민영화가 되고 나면 이 과업은 달성될 수 없게 되고, 그 과업수행에 필요한 비용은 복지지출 증가, 낙후지역 지원 등의 형태로 납세자에게 돌아온다.

시장논리에 따르면, 공공성이 매우 낮은 기관, 그 중에서도 경영효율성이 떨어져서 정부지원이 불필요하게 많이 들어가는 기관이 우선적으로 민영화 대상이 되어야 타당하다. 그러나 재정수입의 확보가 민영화의 최우선적인 이유가 되다보니, 대체로 그동안 국가가 선제투자를 많이 해놓은 기간산업이나, 수요자가 돈을 지불해야만 하는 필수재 관련기관 또는 공적자금의 투입 등으로 효율성과 수익성이 호전된 기관들과 같이 매수자가 흔쾌히 돈을 지불하려는 기관이 민영화의 대상이 되는 역선택이 발생한다.

정부는 민간이 실적이 나쁜 공기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상당한 자금을 투입하여 먹기 좋게 포장한다. 공기업은 민영화되기 전에 대부분 경영학적으로 정비되고, 이들 기업에 부과되었던 부담은 경감된다. 그러면 그들이 아직 국가 소유인 동안에도 이윤을 달성할 수 있는 셈인데, 이렇게 공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진다면 이 기업을 매각할 이유가 있을까. 인천국제공항이 바로 그런 사례다.

한국에서 민영화 논리는 개발독재 시기에 훼손됐던 민간부문의 자율성을 복원하는 과정, 즉 민주화의 한 과정으로 이해됨으로써 정치적 정당성과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민영화 논리의 기반이자 공기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기초가 되는 방만경영과 비전문적 경영, 정경유착, 낙하산 인사 등은 국가적 소유를 근간으로 하는 공기업 체제 자체에 내재한 문제가 아니라 공기업이 사회적 통제로부터 유리되어 정권의 사적 전유물로 전락하였던 역사적 경험에 기인한다. 민영화는 사회적 통제와 참여의 문제를 소유 구조의 문제로 환원함으로써 공기업 체제하에서의 문제점을 다른 형태로 재생산할 뿐이다.


 
국영화가 민영화의 대안일까


전 세계적으로 보면 1997-98년을 기점으로 공공부문 사유화 추세는 약화되고 있다. 이는 민영화 이후 사기업이 공기업보다 효율적으로 운영된다는 증거가 없으며, 기업 차원에서의 효율성 제고가 사회 차원의 효율성 감소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중남미에서는 1999년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권이 등장한 이래 계속된 좌파 정권의 집권 속에서 석유 및 가스뿐만 아니라 국가기간산업들에 대한 국유화가 진행중에 있지만, 이를 위한 정권 교체와 헌법 개정 수준의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한 만큼 당장 대안으로 들이밀 수 있는 사례는 아니다.

얼마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에 가장 먼저 유탄을 맞은 영국에서는 노던록, 스코틀랜드 왕립은행 등의 대형 은행들이 국유화되는가 하면, 미국에서도 GM, AIG, 시티은행 등의 거대 기업들의 국유화가 논의된 바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신자유주의가 초래한 시장체제의 붕괴를 막기 위한 고육지책의 성격이 강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대안은 없다’고 말해지던 몇 년 전의 상황을 감안하면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하지만 영·미에서 국유화가 추진된다 하더라도 강한 구조조정과 국가재정 투입을 통해 부실을 털어내고 다시 민간자본에게 넘겨주게 될 것임은 한국에서 대우조선해양, 현대건설, 하이닉스 등 공적 자금 투입 기업들의 사례를 통해서도 예측되는 바다.

중요한 것은 국영화 자체가 아니라 이들 산업에 대한 국가적, 사회적 통제가 아닐까.  공적 통제의 영역 및 대상을 축소하고 공공기관을 통한 공적 역할을 위축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는 공공기관 선진화 방안의 본질을 직시하고,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를 통한 공공기관 지배구조의 공적 통제, 공공기관 지배구조 자체의 민주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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