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 / 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수석프로그래머

 

   <카무이 외전>(감독 최양일, 2009, 국내개봉 2011)
   <실록연합적군>(감독 와카마츠 코지, 2008)


 

  최근 최양일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카무이 외전> (2009, 국내개봉 2011)의 개봉 즈음에 열린 특별대담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최양일은 일본영화계에서 자신이 특이한 존재로 여겨지고 있지만, 자신의 영화는 당연한 기획을 담담하게 해온 결과일 뿐이라고 말했다. “무엇을 위해 계속 영화를 만드는가를 늘 고민한다”는 그의 말을 흥미롭게 기억한다.

  <카무이 외전>은 그의 전작들에 비하자면 심심한 영화다. 일본에서 천 만부 이상이 팔린 시라토 산페이의 동명 만화를 영화로 만들면서 탈주 닌자인 카무이가 외딴 어촌으로 도주하는 에피소드에만 집중했던 탓이다. 속박과 규칙에서 벗어나려는 필사의 도주가 영화의 전부인 셈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그 단점이 영화의 주된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배를 집어삼킬 만큼 거대한 파도에 맞서는 고독한 도망자의 허무와 비장미에는 일본 내부에서 끊임없이 탈주하려 했던 아웃사이더 최양일의 존재성이 짙게 깔려 있다.

  그는 1949년생으로 일본의 전후세대다. 2차 대전의 종전 후 한국전쟁이 시작하기 바로 전에 태어난 세대다. 청년기에 뜨거운 정치의 시절을 보냈고 꿈과 희망의 붕괴 이후에 현실과 마주해야만 했던 세대이기도 하다. 카무이 또한 시대의 변환기, 격변기를 사는 인물로 당시 일본을 떠맡고 있던 어른들의 세계에 혐오와 의혹의 시선을 보낸다. 그의 탈주가 특별한 것은 장엄한 사무라이극의 일본적인 허무, 아름다움에의 추구에서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구질구질해 보여도 그는 끝내 살아남으려 한다.

  일본의 와카마츠 코지 감독은 연합적군의 비사를 다룬 <실록 연합적군>(2008)을 소개하면서 이 영화가 ‘도주할 용기’에 관한 것이라 말한 적이 있다. 이념을 위해 싸우고 죽어가는 것도 용기이지만, 잘못된 것에서 벗어나 삶으로 도주하는 것도 용기 있는 행동이라는 말이다. 최양일 감독의 세계도 그와 비슷하다. 그는 언제나 아웃사이더, 소수파에 관심이 있는데, 이들에게는 죽음이 아니라 삶이 더 중요하다. <카무이 외전>의 포스터에는 ‘살아 남아라’라는 굵은 글자가 또렷이 새겨져 있다. 단순한 광고가 아니다. 최양일이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비장한 메시지이다. 시대 속에서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강력하게 살아남는 것, 그것도 시대에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살아가는 것을 체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카무이 외전>의 하드보일드가 말하는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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