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1.4.7 수 01:33
기획과학
ANT와 인간-기계의 새로운 관계홍성욱 /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전민지 편집위원  |  amber.je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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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8호]
승인 2011.03.29  11:4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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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과학기술학자 브루노 라투르를 비롯한 몇몇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 이하 STS) 연구자들은 1980년대 초엽부터 행위자 네트워크이론(actor-network theory, 이하 ANT)을 주창했다. ANT는 여러 행위자들이 새로운 동맹을 만들면서 네트워크를 건설하고, 이 네트워크에 다른 행위자를 포섭하고, 이러한 네트워크를 안정화시켜서 더 많은 행위자들이 이에 의존하게끔 만드는 과정에 주목한다. 이러한 과정은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에 대해서 ‘네트워크를 잘 만들고 이를 잘 관리한다’고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ANT에서 분석하는 네트워크는 우리가 일상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네트워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ANT에서의 네트워크는 인간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이 얽혀있는 네트워크이다. 게다가 이 네트워크에서는 인간만이 행위를 하는 행위자가 아니라, 비인간도 훌륭한 행위자로 간주된다. 인간 행위자는 비인간 행위자와 결합하면서 새로운 능력을 얻게 되는데, 마찬가지로 비인간 행위자도 인간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능력과 의미를 취득한다. 이러한 주장은 인간과 비인간의 차이를 설정하지 않고 비인간의 목소리와 행위성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급진적이지만, 의지를 가진 인간만을 행위자로 간주하던 전통적인 철학과 상식의 관점에서 보면 넌센스에 불과할 수 있다.

                                적대적 관계에서 새로운 가능성으로

  산업혁명기를 통해 다양한 기계가 도입되면서 사람들은 인간과 기계의 관계에 주목했다. 당시 기계의 특성 두 가지가 특히 두드러졌는데, 그 중 하나는 증기기관 같은 기계가 인간이나 동물이 낼 수 없는 엄청난 힘을 낸다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는 기계가 인간의 숙련 노동을 대체하면서 노동력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 온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 두 번째 특성은 숙련 노동자들의 노조 때문에 골머리를 앓던 자본가들에게 무척 반가운 것이었다. 당시 가장 정밀한 기계였던 뮬 방적기는 고도로 숙련된 성인 남성 노동자들에 의해서 작동됐는데, 이 방적공들은 자신들의 도제를 스스로 뽑아서 훈련시키는 등 쉽게 침범할 수 없는 특권적 권한을 소유하고 있었다. 방적가 연합은 천재 엔지니어 리처드 로버츠에게 숙련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 뮬 방적기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고, 이렇게 만들어진 자동 뮬 방적기는 숙련 노동자들을 모두 공장에서 쫓아냈다. 

  산업혁명기의 이러한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기계란 근본적으로 인간에 적대적인 존재라는 인상을 갖게 됐다. 기계는 인간의 노동을 소외시키고, 인간을 부품으로 만들며, 도구화하는 존재라는 것이었다. 산업화되고 기계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인간성은 말살됐으며, 인간성을 회복하는 길은 기계 문명을 멀리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데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났다. 기계가 더 인간다워질수록, 인간은 더욱 기계와 흡사한 존재가 되어 갔다. 기계 속에는 인간이 없었고, 인간 속에는 기계가 없었던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와서 인간과 기계의 관계가 적대적이라는 생각과는 조금 다른 이론들이 등장했다. 미국에서는 1940년대를 통해 노버트 위너가 인간의 목적의식적 행동과 기계의 피드백 메커니즘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사이버네틱스 이론을 주창했다.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가늠하며 뛰어가서 공을 잡는 야구 선수와 목표를 찾아가서 명중시키는 어뢰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위너의 사이버네틱스 이론은 1960년대에 사이보그라는 개념으로 이어졌다. 사이보그에 대해서는 비판적이거나 비관적인 평가도 많았지만, 인간·기계의 잡종적인 존재가 인간의 몸에 부과된 여러 가지 차별과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낙관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아이언맨2>(감독 존 파브로, 2010)의 한 장면


  사이보그보다 ANT와 보다 밀접하게 관련이 있는 이론은 프랑스 철학자 질베르 시몽동의 기술철학이었다. 시몽동은 1950년대에 이미 기술의 핵심을 ‘관계’로 파악했다. 기계와 같은 기술은 인간과 사물, 사물과 사물, 인간과 인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든다는 것이었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기술철학과 달리 시몽동은 기계가 인간을 소외시키기는커녕, 인간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낳으면서 다양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낸다고 보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인간은 기계에 대해서 아직 초보적인 이해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시몽동에게 기계는 인간과 자연, 주체와 객체 사이에서 기존의 이분법에 도전하는 존재였으며, 이러한 의미에서 나름대로의 행위성(agency)을 가진 존재였다.

                                    ANT, 예측할 수 없는 네트워크의 탐색

 시몽동의 통찰은 ANT에 의해서 더 정교한 형태로 발전했다. ANT에 의하면 세상은 인간-비인간의 네트워크이다. 이 네트워크 속에서 한 인간은 수많은 다른 인간-비인간들과 연결되어 있고, 마찬가지로 한 비인간도 숱한 인간-비인간들에 연결되어 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나의 행위성이 내게 연결되어 있는 인간과 비인간의 행위성이 합쳐진 결과이듯이, 비인간의 행위성이라는 관념도 비슷하게 파악할 수 있다. ANT가 강조하는 것은 기계의 효과, 용도, 의미가 미리 결정되어 있지 않고, 거의 대부분 예측하지 못했던(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흥미로운)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이다. 기계가 처음 발명되었을 때에 속한 네트워크와는 다른 네트워크에 편입되면서, 처음에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효과·용도·의미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라디오라는 기계는 독재국가와 민주사회의 네트워크 속에서 전혀 다른 효과를 만들어낸다.  

  기계가 인간과 결합하면, 기계와 인간은 독자적으로 할 수 없었던 일을 할 수 있다. 인간은 하늘을 날 수 없고, 기계도 스스로 몇 시간씩 비행할 수 없지만, 인간과 기계가 결합하면 비행이 가능해진다. 또 기계는 인간과 결합함으로써, 인간이 의도했던 결과를 바꾸거나 증폭시킨다. 총을 손에 쥐고 누군가를 겁주러 찾아간 사람은 겁을 주는데서 그치지 않고 살인을 저지를 가능성이 커지는데, 그 이유는 인간과 총의 ‘잡종’은 원래 인간이 가진 의도와는 다른 의도를 낳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 기계는 사람이 추구하던 가치를 새로운 가치로 치환해서 같은 효과를 낳을 수 있게 한다. 운전자는 속도를 내서 과속방지턱을 넘다가는 자기 차의 서스펜션에 무리가 간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과속방지턱 앞에서 속도를 줄인다. 즉 턱이라는 기술은 “이웃을 위해서 과속을 하면 안 된다”라는 도덕적 심성을 “과속을 하면 내 차의 서스펜션이 고장 날 수도 있다”는 이기심으로 바꿔서 감속을 유발한다. 동기는 달라도 그 효과는 동일하며, 훨씬 더 효율적이다. 

  ANT에서 기계가 행위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은 기계가 마치 안드로이드처럼 생명력을 가지고 움직이는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이는 안전벨트를 매지 않고 운전을 하다가 교통경찰을 보고 안전벨트를 매는 운전자와,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다는 경보음이 귀찮아서 안전벨트를 매는 운전자의 행위에 차이가 없다는 의미이다. 다른 사람이 내 행동을 바꾸듯이 기계도 내 행동을 바꾸며, 내가 명령이나 법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행동을 바꿀 수도 있지만 기계를 통해서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우리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우리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기계를 만들지만, 기계가 항상 우리가 계획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기계는 기존의 기술·인간의 네트워크 속에 편입되어 그 속에서 여러 가지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 네트워크가 새로 도입된 기계에 의해서 변하기 때문에 처음부터 기술의 효과·용도·의미를 정확하게 예상하는 것이 어렵다. 때문에 창의적인 혁신가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기술의 궤적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외의 결과에 당황하지 않고 새로운 네트워크의 형성 과정을 예의 주시하는 것이다. 또한 그 속에서 과거에는 없던 인간·기계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방향으로 기술을 새롭게 위치시키는 능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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