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욱 : 영화평론가. 시네마테크 서울아트시네마 수석프로그래머

 

        

 (왼쪽부터 순서대로)
<진정한 용기>, 감독 헨리 헤서웨이, 1969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감독 코엔 형제, 2007
 <더 브레이브>, 감독 코엔 형제, 2010

 

 코엔 형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텍사스 서부의 풍경을 인물만큼이나 중요하게 탐구한 일종의 변형된 웨스턴이다. 이 영화의 풍경(landscape)에는 변형 중인 국가(land)가 숨어 있다. 기원적인 웨스턴의 대지는 이제 트럭을 몰고 멕시코로 넘나드는 마약중개인들의 출몰지대로 변모한다. 풍경에는 잔혹하게 살해된 시체들이 즐비하다. 은퇴를 앞둔 초로의 보안관은 불가해한 살인자가 남긴 흔적들, 기호들 앞에서 망연자실한다. 그는 언제나 학살 이후에 뒤늦게 도착한다. 액션은 해결되지 못하고 지연된다. 영화 제목의 아름다움은 이런 식으로 구식의 서부에 살고 있던 늙고 맥 빠진 보안관이 미몽에서 깨어난 시선으로 나라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끼게 한다.

노인을 위한 대지는 이제 더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풍경에 아이들을 위한 나라는 존재할 수 있을까.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그랜 토리노>에서 이미 화답했던 이야기를 코엔 형제는 신작 <더 브레이브>에서 다른 식으로 제기한다. 열네 살 소녀가 주인공인 웨스턴이라는 점이 일단 이채롭다. 코엔 형제의 독창적인 고안은 물론 아니다. 이 작품은 찰스 포티스의 소설 <진정한 용기>를  각색한 것으로, 1969년에 헨리 헤더웨이 감독이 존 웨인을 주인공으로 만들었던 동명의 웨스턴을 리메이크했다.

서부개척기가 끝나갈 무렵인 19세기 말을 배경으로, 무법자에게 무참히 살해당한 아버지의 시신을 거두기 위해 열네 살의 소녀 매티가 서부에 도착한다. 소녀는 담대하게도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도망친 살인자를 체포하기 위해 난폭한 외눈의 보안관 코그번과 현상금을 노린 텍사스 레인저 라보프를 고용해 추적에 나선다. 노인의 맥 빠진 추적과 달리 담대한 소녀의 눈에 서부의 풍경은 무뢰한들이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출몰하는 바로크적인 연극무대처럼  비춰진다. 코엔 형제는 헨리 헤더웨이의 원작을 상당 부분 참고했지만 스크린을 검게 물들이는 것으로 변화를 줬다. 헤더웨이가 대부분의 사건을 낮에 그렸다면 코엔 형제는 반대로 상당수의 장면들을 밤으로 처리한다. 특히, 가장 기억할 만한 변화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 코그번이 독사에 물린 매티를 구하기 위해 칠흑의 어둠을 뚫고 말을 몰아 질주하는 순간이다. 슈베르트의 <마왕>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또한 헤더웨이가 존 웨인을 연기한 코그번을 여전히 살아 있는 전설로 표현했다면, 코엔 형제는 코그번을 서부의 실질적인 종결자로 처리하고 살아남은 소녀에 더 주목하게 한다. 그리하여 다른 식의 질문을 끌어낸다. 이런 영웅들을 위한 나라는 정말 있는 것인가.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