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우 / 영화평론가

    ‘풀 메탈 자켓’은 M16 실탄을 말할 때 사용하는 속어지만 이 영화에서는 ‘풀 메탈화’ 하는 인간의 행동학을 지칭하는 것 같다. 해병대 훈련소 장면을 다룬 영화의 전반부는 인간이 ‘자켓’을 입는 과정을 기술하며, 후반부는 본부로부터 낙오된 부대가 베트남 정글에서 행하는 자연발생적 전투를 통해 동료애, 용기, 자존심 같은 가장 인간적인 감정이 ‘로봇신체’의 실질적인 에너지로 아이러니하게 작동함을 보여주는 일종의 사고실험이다.

    해병 훈련소 훈련의 요점은 병사가 국가를 사랑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실 누군가로부터 사랑을 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첫 단계 프로그램은 평등주의의 선포로 시작된다. “나는 엄하지만 공평하다. 모든 인종은 인간쓰레기일 뿐이다” 백인이든, 흑인이든, 히스패닉이든 신병은 모두 ‘구더기’에 불과하지만 훈련소를 나가면 ‘영원한 해병의 전우’가 될 것이라는 교관의 말에는 묘한 매력이 있다. 자유주의의 훈련소 버전 즉, 사람마다 다른 신체적 차이를 무시하고 ‘평등’하게 적용된 가혹한 훈련 일정이 본 궤도에 오르면서 두 번째 프로그램이 작동한다. 겉보기에 이 프로그램은 경쟁의 패배자들을 훈련소 밖으로 추방시키거나 민간인의 자발적 욕망을 철저히 억눌러 순종적 군인으로 변모시키는 듯하다. 하지만 어떤 훈육이 정말로 사랑을 얻기 위한 것이라면 국가는 개인을 금욕주의자로 만들어서는 곤란하다. 엄격한 점호시간에 주인공 조커는 교관이 듣도록 궁시렁거리고 그의 뚱보 친구는 도넛을 몰래 반입해왔다가 들킨다. 이들의 욕망을 처벌하는 교관의 언어에는 반대로 욕망의 담론을 선동하는 무엇이 있다. 병사의 위반은 국가에겐 병사들의 욕망과 대면하는 기회다. 가령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자는 위대한 해병대 출신이었다”고 교관이 열변을 토했을 때, 군인에게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 위계질서, 정치제도 같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리바이던을 추동하는 살아 움직이는 파괴 세포가 되는 일이다.

    이 ‘처벌을 통한 고무’의 패러독스 앞에서 병사들은 정말로 어떤 큰 힘을 사랑하게 된 걸까. 애국심과 베트콩에 대한 적개심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그러나 아주 확실한 것이 있다. 병사들의 신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어떤 적개심인데 국가를 ‘사랑하지 않는’(신체조건 때문에 훈련을 따라갈 수 없어, 빈번한 단체기합을 유발하는) 뚱보를 미워하는 감정이 그것이며 이 때문에 뚱보는 동료들로부터 집단 린치를 당한다. 이로써 병사들의 욕망은 국가에게 유리하게 조정되고 국가는 내기에서 이겼다. 원한에 기초한 국가를 향한 아래로부터의 사랑. 이것은 정확히 교관이 의도한 바였다.

    판옵티콘은 근대국가의 개인을 감시의 환영에 시달리게 하고 순종을 내면화하는 모델로 유명하다. 이 모델에서 우리 모두는 죄수이고, 관건은 감시탑을 부수거나 시선을 무력화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죄수의 욕망이 다름 아닌 베트남전을 추동한 미국 국민의 의지였다면? 정글 속 오지에서 조커가 속한 부대가 길을 잃었을 때 이들은 바로 죄수의 위치에 빠져든다. 어딘가에서 베트콩 저격수의 총탄이 날아와 동료를 하나씩 사살한다. 시선의 비대칭성 속에서 조준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 동료의 어처구니없는 죽음, 자연히 솟아오르는 복수심과 인간적 자존심은 나중에 알고 보니 연약한 십대 베트남 소녀가 저격수였다는 사실이 밝혀질 때까지 병사들을 광적인 전투로 몰고 간다. 부대원들은 신속히 귀환하라는 본부의 명령을 어겨가면서까지 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의지 하나로 ‘감시탑’에 대항하는 애국적 행동에 나선다. 이 에피소드는 뚱보의 희생을 대가로 신병들이 스스로 규합하는 것이 취침시간에 교관 몰래 이루어진 것과 연속선상에 있다. 일정한 공간장치 안에 들어서는 순간 개인은 국가의 명령과 독립적으로 국익을 위해 싸운다는 역설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감독 스티븐 스필그, 1998)와 <아버지의 깃발>(감독 클린트 이스트우드, 2006)이 국가주의의 위선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미국 국민의 양심과 합리적 지성을 가정하는 한계를 가졌다면, <풀 메탈 자켓>은 국민주의와 개인적 휴머니즘 자체가 전쟁의지의 원천이 될 수 있음을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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