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호 / 언론광장 공동대표

    이명박 정권 들어 남북긴장이 고조되더니 천안함 침몰, 연평도 피폭의 여파로 전쟁불사론이 득세하게 됐다. 사태전정에 따라 다시 전쟁불사론이 고개를 들겠지만 호전주의자 중에서도 이상하게 군기피자들이 더욱 열을 올리는 모습이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지 60년이 지났지만 전쟁의 참혹성, 파괴성을 너무 쉽게 잊은 듯하다. 한국전쟁은 국지전으로 시작됐지만 UN 16개국과 중국이 참전함으로써 국제전의 양상을 띄었다. 2차 대전 이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무력충돌은 필연적이었는데 그 대리전의 형태로 한반도에서 민족상잔의 살육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명박 정권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미국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연기됐다. 천안함 사태 이후 중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서해에 진입하여 대규모 한·미 연합해상훈련을 실시하는 가운데 북한은 연평도 포격을 감행했다. 그 포성은 연평도에 머물지 않는다. 장차 한·미·일 방위체제와 중·조 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동북아시아를 넘어 아시아 전역에 연쇄파장을 예고한다. 남북의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호전주의가 예기치 못한 사태를 촉발할 위험성을 내포한 상황이다.

전쟁, 피비린내 나는 비극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은 대부분 예기치 않은 사태에서 시작됐다. 1898년 2월 15일 밤 9시 40분 쿠바 아바나항에서 천안함 침몰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순양함 메인호가 폭발해 침몰했던 것이다. 당시 쿠바에서는 스페인의 식민통치에 저항하는 독립운동이 격렬했고 미국은 쿠바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스페인의 과도한 진압이 미국과의 외교문제로 비화되자 미국은 자국민의 재산과 인명을 보호하기 위해 메인호를 파견했다. 스페인은 메인호에 외교적 예우를 해줬고 함장은 현지인과의 충돌을 우려해 수병들에게 금족령을 내렸다. 그런데 돌연 이 군함이 거대한 폭음과 함께 적재된 폭약 5t이 폭발하면서 함수의 1/3이 파손돼 침몰했고 260명이 사망했다. 미국의 황색언론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페인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보복과 응징을 부르짖었다. 이 폭발은 결국 미국·스페인 전쟁을 촉발하는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메인호 폭발침몰 사건은 아직도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미궁에 빠져있다. 100년간 5차례나 조사가 이뤄졌지만 자연발화인지, 기뢰피격인지 확실한 증거를 찾지 못한 것이다. 모든 조사가 함수 쪽 탄약고에서 폭발이 있었다고 동의하나 그 원인에 대해서는 결론이 다르다. 그 까닭에 지금도 국제정세 변화에 따라 음모설, 자작설이 나돈다.

    1914년 6월 28일 보스니아의 사라예보에서 울린 두 발의 총성은 1차 세계대전의 서막을 열었다. 세르비아계 19세 청년이 당긴 방아쇠는 그곳을 방문했던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심장을 멈추게 했다. 그 총탄에 흘린 피는 긴 파장을 일으키며 1차 세계대전을 촉발한 도화선이 되고 말았다. 한 달 후인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했다. 여기에 독일, 이탈리아가 가세한 3국동맹에 맞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주도한 3국연합이 대항하면서 1차 세계대전이 터졌던 것이다.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발발한 2차 대전은 1945년 8월 6, 9일 미국이 일본에 원자탄을 투하함으로써 종식됐다. 2차 대전은 강대국만의 전쟁이 아니었다. 식민지에서 병력과 물자를 조달함으로써 세계 전쟁으로 확산되어 사상 최대의 파괴와 살육이 자행됐다. 2차 대전은 사망자만도 무려 5천만-7천만 명으로 추정된다. 질병, 기근으로 인한 사망자를 포함한 민간인 사망자도 4천만-5천 200만 명에 이른다.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하여 1953년 7월 27일 휴전에 들어갔지만 종전이 아닌 정전이다. 그 탓인지 산발적인 총격전이 그치지 않는다. 3년 1개월간의 한국전쟁은 어느 전쟁보다도 비참했다. 양측의 사상자 300만 명, 전쟁미망인 20만 명, 전쟁고아 10만 명, 이산가족 천만 명, 피난민 500만 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당시 한반도의 인구가 3천 만이라 추정되니 얼마나 어마어마한 인명피해인지 말해준다. 양측이 진퇴를 거듭하는 사이, 형제가 국방군과 인민군으로 갈리고 밤새 태극기와 인공기가 번갈아 나부끼면서 어느 전쟁보다 무고한 양민학살이 많았다. 부역자, 빨갱이, 반동분자란 딱지를 붙여 양민학살이 자행됐고 아직도 그 상처가 치유되지 않고 있다. 보도연맹 사건, 노근리, 거창, 산청-함양, 강화 학살사건 등이 그것이다. 북측의 숙청작업, 인민재판에 의한 무고한 희생자도 무수하다.

    1961년 미국의 군사개입을 시작이라고 본다면 베트남 전쟁은 1975년까지 14년간 지속됐다. 폭약량과 폭탄량만도 2차 대전의 그것을 능가한다. 베트남 양측의 전사자는 310만 명이라고 한다. 베트남 정부는 1995년 민간인 사망자가 200만 명이라고 밝힌 바 있다. 베트남 전쟁도 이념전쟁이다. 전쟁은 끝났지만 통합과정에서 64만3천 명이 죽는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있었다. 재교육 수용소 사망 9만5천 명, 강제노역장 사망 4만8천 명, 사형집행으로 10만 명이며, 쪽배에 목숨을 걸고 바다로 나갔던 보트피플 중에서도 40만 명이 죽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 정세

    유럽은 유럽연합(EU)이 중심이 되어 경제통합에 이어 정치통합을 지향함으로써 전쟁억지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와 달리 아시아는 지역공동체가 형성되지 않아 군비경쟁이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그런데 그 뒤에는 군부의 막강한 입김이 도사리고 있다. 중국, 북한, 파키스탄, 미얀마가 그 선두에서 무력증강을 주도하면서 인접국을 긴장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연쇄적인 군비경쟁을 촉발하며 그 파장이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로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퇴조가 맞물려 아시아의 세력판도가 변화하는 과정에서 중국과 북한의 후계구도가 또 다른 새로운 변수를 예고한다.

    중국의 혁명세대인 덩샤오핑과 그의 후임 장쩌민은 인민해방군에 대한 영향력 행사가 가능했다. 하지만 후진타오에 이어 차기 주석으로 유력한 시진핑은 개국공신 2세라는 점에서 군부의 팽창주의에 대한 제어력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의 후계자로 김정은의 세습승계를 위한 정치작업이 한창이다. 후계승계가 성공할지 두고 볼 일이지만 20대의 그가 군부의 모험주의를 통제할 세력을 장악할지도 의문이다. 이미 천안함 사태→우라늄 농축→연평도 포격이 동아시아 정세에 파란을 몰고 오고 있다.

    중국의 해양력 증강과 북한의 핵무장에 위협을 느낀 일본은 36년 만에 잠수함 6척을 늘려 2015년까지 22척을 보유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 파장은 싱가포르, 호주로 퍼지고 있다. 민주주의 기반이 취약한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에서는 군부의 발언권이 강화되면서 군비증강에 매진하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잠수함 구매에 10억 달러를 투입했으며 인도네시아도 전투기 대대를 구매할 계획이다. 인도네시아는 미국과 군사적·경제적 유대관계를 강화하는 포괄적 협력관계를 맺었다. 미얀마의 군사정권이 군비증강에 나선 가운데 소수민족과의 충돌이 예상되자 태국이 지난해 국방예산을 2006년에 비해 2배인 24억 달러로 증액했다.

    그 가운데서도 분단된 한반도의 남북대치가 최악의 상황이다. 그 주변을 막강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보유한 강대국들이 포진하고 있다. 경제대국 중국과 경제강국 일본이 넘나보고 있으며 그 뒤에는 초강대국 미국과 군사대국 러시아가 도사리고 있다. 한 세기 전의 한반도 정세보다 훨씬 미묘하고 복잡한 형세다. 남북 긴장의 장기화는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악화시켜 경제교류에 타격을 주고, 나아가 동북아 정세에도 심대한 악영향을 미친다. 천안함 침몰, 연평도 포격을 놓고 저울질을 잘못하다가는 예기치 못한 사태를 빚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은 19세기의 그 중국이 아니다.

    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과거와 같은 재래 무기 전쟁이 아닐 것이다. 유사시 남북한과 각기 군동맹을 맺고 있는 미국과 중국은 즉각 개입할 것이 분명하다. 북한의 핵개발이 무기급 수준에 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정보가 없지만 북한의 핵시설과 남한의 원자력발전소가 파괴되면 핵재앙으로 인해 한반도는 석기시대 이전으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전쟁을 너무 쉽게 외치며 애국자를 자처하는 부류가 많다. 평화를 말하면 비겁한 사람이거나 좌파 빨갱이라고 매도하면서 말이다. 전쟁의 참혹성, 파괴성을 안다면 전쟁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지 자문하기 바란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