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우 / 사회학과 박사과정

1990년대 말을 기점으로 하여 ‘인종, 젠더, 문화 등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다양한 정체성이 공존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이상이 미국 대통령과 유엔 사무총장, 좌파 활동가들의 입을 타고 확산됐다. 저자 웬디 브라운의 표현을 빌리자면, 17세기 종교에 대한 관용이 요청됐던 이래 새로운 ‘관용 담론의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이제 저자는 이 새로운 현상에 대해 ‘관용 담론이 수행하는 통치적 역할은 무엇인가’, ‘관용 담론은 어떠한 사회적 주체를 생산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분석을 수행한다.

이러한 질문들은 사실 그리 흥미롭지 않다. 현재의 관용 담론이 차이를 자연화, 탈정치화 시키고 관용하는 자와 관용하지 않는 자를 재분할함으로써 또 다른 배제를 양산한다는 주장이나 탈정치화/정치화의 기본 분석 프레임 역시 신선한 것은 아니다. 근대 이후의 지식과 제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이야기할 때 무한 반복 재생되었던 설명들이기 때문이다.

시선을 약간 달리해보면 어떨까. 사실 책을 읽는 내내, 필자가 꽂혔던 질문은 ‘다른 때도 아니고 하필 1990년대 말을 기점으로 관용 담론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무엇이 바뀌었기에 관용 담론이 확산됐는가.’와 같은 것들이었다. 저자가 의도한 책읽기의 방식은 아닐지라도, 조금 엉뚱한 곳에서 저자의 혜안과 마주칠지 모를 일이다.

1968년, 당시 미 대통령 안보 보좌관 헨리 키신저는 양극체제에서 다극체제로의 전환을 역설한다. 1970년대 데탕트의 서곡이라고도 볼 수 있는 키신저의 이 발언에서 흥미롭게도 현재의 관용 담론과 유사한 맥락을 발견할 수 있다. 당시의 냉전 양극 체제는 미국과 소련 양국에게나 나머지 국가에게나 인위적인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으므로 개별 국가의 독자성, 국가 간의 자연적인 관계에 기초한 국제 질서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세계는 개별적 고유성을 갖는 모든 국가에게 공유되어 있는 것’이라는 논리가 밑바탕을 이루고 있다.

왜 미국의 지배블록은 스스로 냉전이익과 서방 자본주의 블록에 대한 헤게모니 지배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됐을까. 답변은 단순하다. 유지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60년대를 지나면서, 전후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던 지지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경상수지적자와 재정수지적자가 동시에 발생하는 현상)가 확대되면서 브레튼우즈 체제는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을 각국에 수출하는 전동장치로 탈바꿈했고, 나토를 비롯한 군사-방위비 협약 체제는 스태그플레이션 부담을 증폭시키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미국의 주요 파트너들 특히 유럽과의 긴장이 강화되는 것은 불가피한 수순이었다.

‘자유로운 무역과 공동 안보를 통한 서방 진영의 점진적 개발·발전’이라는 논리가 더 이상 깔끔한 표면을 유지하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데탕트는 이 파인 홈을 메우기 위한 기획으로 수용됐다. 중국을 개방된 세계로 끌어들이고 이를 매개로 크레믈린을 다극체제의 파트너로 전환시키는 것은 제1세계 내부의 균열을 봉합하고 새로운 자유주의를 향하도록 구조조정 하는 기획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90년대 말 이후 관용 담론의 확산은 데자뷰를 보는 듯하다. 브라운이 말하듯, 관용은 “헤게모니적 규범이 일탈적 타자를 손쉽게 식민화하거나 내부화할 수 없을 때 호출”되며, 기존의 규범이 작동불능에 빠진 지점에서 대리보충으로 기능한다. 동아시아 위기가 1세계로 확산되면서 ‘탈산업화-지구적 아웃소싱’의 논리가 재고되고, 헤지펀드 LTCM의 붕괴와 함께 ‘금융공학’에 대한 신념이 동요하기 시작한 시점이 관용 르네상스가 시작된 시점이었다. 이제 관용은 각 집단의 차이를 탈정치화시키고, 테러집단과 같은 비관용 집단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함으로써 안정적 이행 혹은 새로운 통치를 꿈꾼다. 하지만 관용은 통치전략의 업그레이드이기 이전에, ‘전후 자본주의’나 ‘신자유주의’같은 특수한 자본축적의 기획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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