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진 / 반전평화연대(준) 공동간사

 미국의 국방부, 펜타곤은 전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을 행사하는 장소일 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최첨단 과학기술이 배양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사실 우리가 단 하루도 접속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게 되는 인터넷도 무기 경쟁과 관련이 있다. 1957년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소련의 스푸트니크 1호 시험 발사가 성공하자 미국은 소련이 이 기술을 미 본토 공격에 활용할 것이라 판단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부 내의 과학연구개발부서 ARPA를 만들어 ARPANET을 개발했다. 이것이 바로 인터넷의 모태가 됐다. 과학기술이 전쟁 및 군사력과 함께 발달해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무선 통신이 군사적 목적으로 탄생한 기술이란 것은 이제 상식이다. 오늘날 휴대폰에 쓰고 있는 CDMA기술은 쿠바 미사일 위기가 발발한 뒤 무선통신 보안기술 개발에 절실해진 미군이 개발한 것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잠수함 발사용 로켓, 대공 미사일, 가변익 제트 항공기, 대륙간 탄도 미사일, 생화학 무기 등, 첨단무기에 사용되는 기술의 사례들은 무궁무진하다.

전쟁이 과학 발전에 직접적 영향을 끼친 것은 대포의 발명 이후였다. 대포같이 화약을 이용한 장거리 살상 무기가 사용된 뒤로 인류는 장거리 살상 무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금속공학, 산업기계, 탄도학(수학), 화학 등의 과학기술을 급격히 발전시켰다. 더 분명한 사실은 자본주의는 시장과 자원을 위한 경쟁뿐 아니라 살인 기술과 무기 경쟁도 엄청난 규모로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산업이 발달하기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량파괴 무기들이 수백만 명을 살상했다. 탱크와 기관총, 독가스와 전투기가 등장함으로써 사망자의 대다수는 질병이 아니라 상대국 병사들의 손에 희생됐다.

그리고 이 효율적인 장거리 살상 무기를 방어하기 위해 또 다른 금속공학, 산업기계, 탄도학, 화학, 그리고 무선통신, 레이더 등의 과학 기술이 발전했고, 이렇게 발전한 방어 체계를 무력화 시키기 위해 또 다시 장거리 살상 무기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식으로 서로 물고 물리며 군비 경쟁, 과학기술 경쟁이 가속화됐다. 여기에는 기업의 ‘지적 재산권’과 ‘과학기술의 사유화’라는 엄연한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사유화된 과학기술이 강대국의 패권 유지에 활용되고 있다. 수많은 사례 가운데 한 가지만 들어보자.

2002년 12월 이라크가 유엔안전보상이사회의 결의안 1441호에 따라 자국의 무기 개발 과정에 관한 11,800쪽에 달하는 서류를 안보리에 제출할 수밖에 없게 되자, 부시 행정부의 관리들은 서둘러 뉴욕으로 가서 다른 회원국들이 보기 전에 먼저 그것을 확보했다. 그리고 그들은 미국 기업과 다른 서방 회사들이 1991년 이전에 이라크에게 팔았던 무기와 군수용·민수용으로 이중 사용이 가능한 기술이 상세하게 나와 있는 8천 쪽을 삭제하고 발표하지 않았다. 이런 미국 기업에는 하니웰, 유니시스, 록웰, 스퍼리, 휴렛-패커드, 듀퐁, 이스트만 코닥 및 여러 회사가 포함돼 있었다.

사실 한국의 나로호 발사도 군사적 목적의 우주기술을 발전시키려는 전략의 산물이다. 우주센터 건립과 발사체 개발은 1백60여 개 국내 기업이 참여하고 8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 자금이 들어간 거대 프로젝트였다. 그리고 현대중공업의 발사대(발사체 기립장치), 두산 DST의 관성항법유도장치, 한화의 고체연료와 추진체, 삼성 테크원의 추진체 터보 펌프 등 국내 대기업이 이끄는 방위산업체가 참여했다. 이처럼 나로호는 2000년대 들어서 미래의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각광받고 있는 방위산업체 성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디지털카메라로 유명한 삼성테크윈도 사실상 군수업체다.

나는 작년에 전 국방장관을 지낸 분이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전쟁과 과학기술은 동맹관계”라며 “과학기술자들을 길러내는 카이스트를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강연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고 소름끼치기까지 한다. 나는 한국의 많은 대학생들이 이런 물음을 던지고 또 고민하고 있을지 모른다고 꿈꿔 본다. 과학기술이 왜 첨단 첩보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여야만 하는 것일까. 재생가능한 에너지를 대량 생산하는 개발에 쓰일 수는 없는 것일까. 상용화되기에는 수지타산에 맞지 않는다며 무수히 버려지는 친환경 기술들과 생명존중 기술들에는 왜 제대로 투자조차 되지않는 것일까. 과학기술 발전이 전쟁이 아니라, 또는 살상무기를 체계적으로 고안해 내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공공의 유산이 되는 것을 꿈꿀 자유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전쟁과 과학기술의 위험한 동맹이 깨지기를 바랄 자유와 권리가 있다. 특히 세계 어느 곳보다 어마어마한 군비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동아시아에서는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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