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주 /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세계화의 진행과 함께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면서, 국내에서도 여성의 빈곤은 특히 가속화됐다. 이에 여성 빈곤의 원인을 찾고 탈빈곤을 향한 모색이 다방면에서 이뤄지는 가운데에도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한 분야가 바로 건강문제라고 할 수 있다. 건강정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 지배적인 것은 대개 의료-생의학-중심적 사고이며, 여성의 건강문제 역시 재생산 기능으로만 축소되는 모성보호-모자보건을 중심으로 논의되어왔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의 빈곤화 현상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성별간 건강불평등을 조장하는 제사회적 조건들과 그로인해 구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소외된 계층의 현실 그 자체다. 건강은 개인이 교육을 받고 일상을 영위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며, 일자리를 얻고 사회적 관계를 맺는 기반이 되어 삶의 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잣대가 된다.


빈곤과 건강의 관계가 밀접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저소득층일수록 가용가능한 자원이 적으며, 사회적 참여의 기회가 결여돼 신체적·정신적 건강상태가 손상될 수 있다. 특히 가족 내에서의 불평등한 성별 분업은 과중한 돌봄 노동에서 나오는 심리적 부담과 신체적 긴장까지 수반하게 된다. 즉 여성의 건강은 경제적 빈곤뿐만 아니라 사회 내의 성차별, 만연한 가부장적 문화로 인해 남성보다 불리한 위치에 놓이는 것이다. 때문에 저소득층을 위한 보건의료제도나 정책의 개입정도와 마찬가지로 여성의 건강에 대한 성 인지적 정책 실행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여성의 건강수준, 보건의료의 접근성, 취업여성의 노동환경 등을 다각적으로 파악한 정책 입안이 필요한 것이다. 여성빈곤과 건강에 접근하는 방식은 기존의 소득개념을 넘어 여성들이 경험하는 사회구조적 불평등문제를 중심으로 다뤄져야 한다.
 
빈곤과 건강, 그리고 여성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경제적 소득이며, 상대적으로 낮은 소득은 여타 다양한 자원의 부재를 가져온다. 고소득 남성에 비해 저소득 여성은 건강에 훨씬 취약하며, 소득과 성이 결합할 때 건강상태의 격차는 크게 벌어지게 된다. 성별로 분리한 건강수준에 관한 통계를 보면, 여성의 급·만성질환 발병률이 58.2%로 남성보다 6.6% 정도 높고 급·만성질환으로 인한 활동제한일수도 여성이 남성보다 약 7일 높게 나타난다. 이에 따르면 대체로 여성이 남성에 비해 발병률이 높고, 건강수준도 낮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여성의 저소득은 보건의료 접근성을 낮추는데, 이는 빈곤층을 대상으로 한 의료급여 수급권에서 여성이 더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1인당 전체 의료이용은 여성이 남성보다 많으나, 입원은 남성이 더 많이 하며 여성은 외래이용이 높다. 또한 1인당 진료비와 건당진료비는 대체로 남성이 여성보다 높다.


즉, 저소득 여성은 낮은 경제적 자원에 여성이라는 이유가 더해져 대개 건강수준이 낮고 의료급여 수급대상의 비율은 높으며, 고수준의 의료서비스에서는 배제되는 경향을 보인다. 특히 취업여성의 노동환경과 건강수준은 더욱 취약하다. 노동자의 건강은 일하는 곳의 환경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여성의 취업이 증가하는 데 반해 노동시장에서의 열악한 위치는 여성을 쉽게 경제적 빈곤에 빠뜨린다. 뿐만 아니라 여성은 그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인해 건강이 나빠지는 경우가 많다. 노동의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여성노동자의 건강 상태는 노동에서의 배제, 사회적 관계에서의 배제, 소득 저하를 통해 악순환을 겪게 된다. 가령 작업장에서 유해물질 안전수칙에 대한 정보와 그에 대한 인지도 남성보다 부족한 경우가 많아 여성은 노동환경요인과 건강지표에서 단연 취약한 위치에 있다. 또한 여성의 비정규직화가 보다 심각한 상황에서 여성근로자는 정기건강진단, 병가, 주 1회 휴일, 연차휴가의 혜택이 정규직에 비해 현저히 낮다. 특히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의 노동자 건강보호와 관리는 매우 취약하며, 그것은 고스란히 여성노동자의 불건강 상태로 돌아오게 된다.


여성의 낮은 건강수준은 경제적 수준과 성(다양한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한 불형평성에서 기인하며, 계층과 성의 결합은 여성의 보건의료접근성과 노동환경내에서 건강보호의 수준을 낮추는 역할을 한다. 단지 보건의료 차원이 아닌 경제, 사회, 정치적 수준의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책이 소외된 사회구성원, 특히 여성빈곤층의 불건강을 해소하는 길이다. 형평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지향하는 보건의료정책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다. 특히 저소득층 여성과 일하는 여성들의 건강증진을 위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기초생활보장 대상 이외의 빈곤층에 대한 의료급여를 확대해서 고액진료비로 인한 빈곤의 악화를 막아야 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의료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긴급의료권을 발동해야 한다. 빈곤층에 대한 지역보건사업도 확대하여 취약계층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강화하고 여성과 어린이에게 중요한 영양공급, 예방접종, 성장발육 관리, 출산전후 관리 대책 마련도 폭넓게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도 여성의 건강에 관련된 인식의 부족, 그에 따른 기초 자료의 절대적 부족을 해소하는 일이 우선이다. 보건의료분야에서는 성 인지적인 보건의료정책이 마련될 수 있도록 사회차별과 배제 등을 포함한 여성의 사회적 불평등구조를 밝혀내는 다각도의 연구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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