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석 / 카이로스 연구원

대세는 레닌이다. 한때는 체 게바라가 담당하던 혁명의 아이콘 역할을 지금은 레닌이 떠맡은 상황이다. 지젝도, 바디우도, 발리바르도 레닌을 노래하며, 이글턴도, 제임슨도, 캘리니코스도 레닌을 옹호한다. 물론 그럴 만하다. 정체성 정치와 정치적 올바름이 좌파를 순치(馴致)시키고, 문화다원주의와 포스트모더니즘이 진보를 발치(拔齒)하는 상황이 좌파로 하여금 섹시한 아이돌(게바라)이 아닌 난폭한 몬스터(레닌)를 소환하게 만든 것이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이 근본주의적인 혁명의 투사, 레닌은 1914년에 1차대전이 발발하자 10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헤겔의 <논리학>속으로 침잠해 들어갔다. 안정된 우주가 무너져가는 종말론적 상황 속에서 관념론의 <신학대전>(Summa Theologia, 아퀴나스에 의해 건축된 중세 가톨릭신학의 총합적 건축물)을 차분히 정독하던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수수께끼처럼 느껴질 수 밖에 없었으리라.

그러나 레닌의 고독은 현학적 도피가 아니었다. 그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듯이 치달리던 역사 속에서 자신과 시대의 방향키를 잡기 위해 근원으로 돌아가는 급진적이고도 근본적인 사유를 선택한 것이다. 급진적 사유의 대상은 헤겔이었고 그의 논리학이었으며 그것은 곧 그의 변증법이었다.

그가 헤겔 독서와 더불어 새시대를 맞이하고자 한 연유는 제2인터내셔널의 현실적 타락에서 발견된다. 이는 이론적 타락과 궤를 같이 한다. 레닌은 이론과 운동의 토대를 다시 다지고자 했으며 이를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헤겔이었다. 제2인터내셔널의 기초를 제공한-플레하노프를 거쳐 카우츠키에 이르는-속류 유물론이 헤겔과 변증법에 대해 평가절하한 것과 연결된다.
 


 

 

 

 

 

 

 

 

 

 

 

 

 

 

 

 

 

 

 

 

 

 

 

 

 

 

 

 

 

 

 

케빈 앤더슨(Kevin Anderson, 1948~)

 레닌의 헤겔 노트 독해

케빈 앤더슨은 바로 이 점을 주목한다. 그는 뉴욕 시티대학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퍼듀대학을 거쳐 지금은 캘리포니아주립대학(UC) 산타바바라에 재직하고 있다. 비록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미국 진보계열 작가로서의 그는 <Lenin, Hegel and Western Marxism>(Urbana and Chicago: University of Illinois Press, 1995)을 위시한 여러 저작들을 통해 탄탄한 명성을 쌓아올렸다.

쿠벨라키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앤더슨은 라야 두나예프스카야(Raya Dunayevskaya, 1910-1983)의 사도다. 두나예프스카야는 트로츠키의 멕시코 체류 당시 러시아어 비서로 시작해 미국에서 마르크스주의에 내재하는 보편적 인간애를 강조하는 맑스주의 휴머니즘의 독자적 흐름을 개척했다. 그러나 두나예프스카야는 자신의 철학적 입장을 세워가는 데에 레닌의 헤겔 노트를 중요한 준거점으로 채택했다. 사실 이점은 그녀의 입장을 정통 트로츠키주의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게 만들었는데 레닌과 헤겔에 대한 그녀의 관심은 그대로 마르크스주의 휴머니즘의 토대가 된다. 그녀는 1940년대부터 이미 헤겔을 읽기 시작했고, 특히 1970-80년대에 연구를 심화시켰다.

앤더슨의 1995년도 저작인, <Lenin, Hegel and Western Marxism>은 분명 두나예프스카야의 입장을 계승한 것이다. 앤더슨이 그녀의 노선을 따른다는 것은 이 저작에서 마지막으로 다루는 사회주의자가 바로 그녀라는 것과 책의 전반부를 가득 채운 헤겔의 변증법에 대한 해석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앤더슨이 자신의 블로그(www.kevin-anderson.com)에 올려놓은 최근 글 “Raya Dunayevskaya: Reflections for the Future”에서도 이는 동일하게 확인된다. 이것은 한갓 배경지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는 분명 두나예프스카야의 레닌(의 헤겔)에 대한 해석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다음과 같은 언급을 보면, 누구라도 앤더슨을 그녀의 사도로 생각하게 될 것이다.

“두나예프스카야 이전에는 혹은 그 이후 지금까지도, 레닌의 헤겔 노트를 당대의 혁명적 변증법을 위한 토대로서 비판적으로 전유하고자 창의적이고 심도있게 파고든 마르크스주의 사상가가 없었다.” 더욱이 그의 레닌 비판은 명백히 그녀의 시각을 재현한 것이며, 이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강조: 편집자)

동시에 앤더슨은 레닌의 재림을 외치는 세례 요한이다. 오늘날의 레닌 부흥은 21세기에 들어설 즈음 발생한 것이지만, 그는 1995년에 <Lenin, Hegel and Western Marxism>을 출간함으로써, 레닌의 길을 예비했다. 레닌의 헤겔 해석에 대한 그 정확성과-그녀로부터의-독립성을 논하기 이전에 헤겔주의적 마르크스주의 노선을 잇는 한 사람으로서 그를 배제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앤더슨(과 그리고 두나예프스카야)이 주목하는 것은 ‘레닌이 헤겔을 읽었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들은 모두 레닌이 헤겔의 변증법을 재발견했다는 사실을 중요시한다. 그리고 혁명의 올바른 토대로 변증법을 제시한다. 앤더슨은 말한다. “변증법은 살아있다”고. 그렇다. 레닌이 인식과 실천의 프레임으로 변증법을 제시한 것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변증법은 살아있다

앤더슨은 이러한 맥락에서 레닌의 기여를 찾아낸다. 우선 개량적 마르크스주의에 대립하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근거로서 제시되는 참된 변증법에 대한 레닌의 (재)발견이다. 앤더슨은 한편으로는 변증법의 진의를 파악하는 데에 실패한 속류 유물론을 극복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철학사를 관념론과 유물론의 대립으로 이해한 엥겔스의 이분법도 넘어섰다. 앤더슨은 주체와 객체의 끝없는 상호작용으로 변증법을 이해하려는 레닌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

둘째는 반제국주의 투쟁의 심대한 의미를 내다본 선구적 작업으로서의 제국주의와 민족해방에 관한 레닌의 변증법적 분석이라고 할 수 있다. 앤더슨은 레닌의 <제국주의론>(백산서당, 1986)을 반제국주의적 민족해방운동과 관련시키거나, 그 이전 해에 쓰인 헤겔 노트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이가 거의 없음을 지적한다. 서구 열강의 민족주의는 제국주의를 추동하지만, 약소민족의 민족해방운동은 전지구적 제국주의에 대한 변증법적 대립물이다. 따라서 레닌은 저발전 지역의 민족해방투쟁과 선진국에서의 프롤레타리아 내전이 결합되는 가운데 혁명이 일어난다고 봤던 것이다. 심지어 그는 러시아에서 헤겔의 변증법 연구와 식민화된 피억압 민족 연구가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앤더슨에 따르면, 레닌의 노작은 이란과 인도의 운동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었다.

마지막은 헤겔적 마르크스주의 사상, 특히 미국과 프랑스의 사상에서 창조적 사유가 촉발되게끔 이끈 레닌의 자극이다. 앤더슨은 프랑스의 르페브르와 미국의 C. L. R. 제임스와 두나예프스카야를 비중있게 다룬다. 그런데 특히 두나예프스카야에 대해 소개할 때 그는 그녀를 통해서 레닌의 헤겔 해석을 비판한다. 헤겔 변증법 연구를 통한 자신의 새로운 사고를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았고, 그의 <논리학> 독해가 행위를 강조하며 과도하게 유물론적이라는 것이 죄목이다. 어떤 의미에서 앤더슨은 레닌 대신에 두나예프스카야의 헤겔 해석을 따르고 있다고 봐도 옳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연구가들은 종종 그를 두나예프스카야의 ‘아바타’로 보기도 한다. 사실 앞서 언급된 레닌의 기여도 두나예프스카야와 연결된다. 그녀는 이미 1949년에 레닌의 헤겔 노트를 영어로 완역하였으며, 레닌의 민족해방에 대한 관점을 그의 변증법에 대한 이해에 연결해 파악한 것도 그녀가 처음이었다. 또한 앤더슨은 헤겔적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미국 대표로 그녀를 내세운다. 물론 이러한 지적이 앤더슨의 레닌과 헤겔에 대한 성실한 연구를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단지 앤더슨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두나예프스카야와의 관계 속에서 읽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려는 것, 오직 그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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