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창 / 전북대 일어일문학과 교수

1945년 일제의 패망으로 우리 민족은 식민통치로부터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재일조선인들은 해방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과거의 불행했던 역사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여전히 고난의 삶을 계속하고 있다

다시 디아스포라의 삶으로

해방 직후 2백만 명으로 추산되던 재일조선인들은 대부분 귀국했으나, 일본에 잔류하게 된 60만 동포들은 디아스포라의 삶을 이어가게 된다. 1945년 10월, 재일조선인들은 스스로의 권익을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재일조선인연맹(조련)을 발족시켰다. 하지만 좌파세력이 주도권을 잡게 되자 이에 반발한 우익인사들은 조련을 탈퇴하고 1946년 10월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을 결성한다. 1948년 본국에서 총선으로 대한민국이 출범하자 민단은 대한민국을, 조련은 북한을 지지하게 된다. 이로써 두 조직은 서로 대립하는 정치 단체로 변모하고 말았다. 이는 재일조선인 사회가 분열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는데, 이후 순탄한 조직활동을 펴온 민단과 달리 조련은 미군정 및 일본 정부와 대립하다 민족교육을 위한 ‘한신(阪神)교육투쟁’을 계기로 해산당하고 만다. 이후 일본공산당의 산하기관인 재일조선통일민주전선(민전)으로 명맥만을 겨우 유지해오던 조련은 1954년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조총련)으로 재결성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조련과 그 후신인 조총련은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들 조직이 민족학교를 설립하여 민족교육을 실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당시 재일조선인들은 자녀들에게 귀국 후 필요한 우리말이나 우리 역사에 대한 교육을 시킬 정도로 일본에서의 생활을 일시적인 삶으로 여기고 언젠가는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가주(假住)의식이 강했다. 

이는 당시 동포들의 삶을 그린 문학 작품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이 시기에 활동한 김달수, 박원준, 이인직, 장두식 등은 차별과 같은 일본사회의 문제보다 자신들의 생활이나 민족문제를 주로 다뤘다. <현해탄>, <태백산맥>, <까마귀의 죽음>등의 작품에는 어려운 현실 아래 고민하는 지식인의 모습과 조국통일 같은 문제가 주된 관심사로 등장했던 것이다. 많은 1세대 재일조선인 작가들이 조총련 산하 조직인 ‘문예동’에 가입하여 어려운 여건아래 한글로 작품활동을 한 사실에서도 일본 생활을 청산하고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재일조선인의 가주화의식을 엿볼 수가 있다.

가주화에서 정주화 시대로

그러나 1세대들의 가주화의식은 1960년대 들어서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그 이유로는 재일조선인 사회의 세대교체, 조국의 정치현실, 그리고 한일회담 등을 들 수 있다. 해방 후 2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면서 1세대는 일선에서 후퇴하고 일본에서 나고 자란 2세대들이 재일조선인 사회의 주류로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남북이 분단 대치되면서 북은 일당독재와 김일성부자의 세습체제로 굳어져가고 남한 역시 이승만 독재와 4·19, 5·16, 박정희의 유신체제로 이어짐에 따라 통일전망이 더욱 어두워졌다. 덧붙여 1965년 이뤄진 한일협정은 그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당시 한일회담을 계기로 재일조선인들은 일본 사회의 차별이 철폐되기를 기대했으나 무위로 그치고 말았다. 이에 재일조선인들은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았다는 ‘기민(棄民)’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본국 정부에 대한 불신감을 표현했다.

이들 사이에서 귀국을 포기하고 일본에서 정착할 수밖에 없다는 정주화의식이 확산되자, 이제껏 보이지 않던 일본 사회의 차별이 이들의 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일본인들의 재일조선인 차별은 일본인들이 서양인들에 대한 열등의식을 조선인에게 보상받고자 하는 심리에서 기인한 것이다. 재일조선인들은 일본 사회에서 공적, 사적 차별로 많은 고통을 받아왔다. 일본 사회에서 차별이 문제시된 것은 1950년대 후반에 일어난 이진우 사건으로부터 시작되어 1960년대에서 1970년대로 넘어가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김희로사건(1968), 박종석사건(1970), 김경득사건(1977)이 발생하고, 조선인 모욕, 취업 차별, 공무원 임용거부, 지문날인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이에 일본에서의 정착을 모색하던 재일조선인들은 뜻있는 일본인들과 연대하여 지문날인과 취업 차별, 임용거부 등에 대해 거리시위와 법정투쟁 등의 방법으로 일본정부와 사회에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한편 일본 사회의 변화는 재일조선인 사회에도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그것은 일본 사회에서 좌경화의 퇴조현상과 더불어 북조선의 실상이 밝혀지면서, 조총련의 신뢰가 무너지게 된 것에서 기인한다. 또한 일본으로 귀화한 사람들을 ‘반쪽바리’라고 부르면서 민족반역자라고 비판하던 1세대들의 의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즉, 귀화하고도 조선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간다는 ‘제3의 길’이 많은 찬반의 논란 속에 1970년대 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재일조선인 작가들 사이에서도 나타났는데, 김달수, 김석범, 이회성과 같은 이들을 조직 안에 흡수하여 통제하려는 조총련과 갈등을 빚었으며, 많은 작가들이 조총련에서 이탈했다. 이들은 <비망록>, <왕생이문>과 같은 작품에서 조직과의 갈등을 다루기 시작했다. 특히 아쿠다가와상을 수상한 이회성의 단편 <반쪽바리>는 귀화를 했다는 이유로 일본 사회와 재일조선인 사회에서 동시에 따돌림 당한 청년이 결국 분신자살하고 마는 이야기로 당시 일본 사회에서 살아가는 재일조선인들의 아픔과 정체성 문제를 파헤쳤다.

‘제3의 길’을 통한 공생의 시대

1980년대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재일조선인 사회는 세대교체와 정주화현상이라는 커다란 변화를 겪어왔다. 한국에서 태어났거나 조국에 대한 지향의식을 가지고 한국인으로 살아온 1, 2세대들은 이미 작고했거나 노령화로 사회 활동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 나고 자라서 일본인과 같은 정서와 의식을 가지고 있는 3, 4세대의 수가 늘어나 이들 사이에 세대교체가 일어나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새로운 의식과 사상이 분출되고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대한 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소외감과 소속감의 문제는 한국과 일본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소속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많이 나타났다. 그러나 이전세대 후반에 나타난 ‘제3의 길’이 점차 일반화되면서 ‘귀화는 개인의 선택에 맡긴다’는 생각 또한 크게 확산되고 있었다. 국적과 상관없이 본명을 밝히며 한국인 또는 한국계 일본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젊은이들도 크게 늘어났다. 이들의 인권운동도 종래의 차별철폐를 위한 투쟁 방식에서 일본인과의 공생을 위한 참정권 운동 등의 더욱 적극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갔다.

한편 재일조선인 사회의 또 다른 커다란 변화는 일본 사회에 한국의 경제발전과 북한의 경제 파탄이 알려지고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 핵문제 등이 대두되면서 조총련이 크게 약화되고 민단이 주도권을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동시에 조총련은 자신들의 권익을 위한 조직이 정치화되면서 재일조선인 사회의 분열을 조장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따라서 최근에는 정치를 배제하고 이들의 단결을 모색하는 ‘원코리아 운동’이 일어나 크게 호응을 얻고 있다. 민단도 종래의 명칭에서 거류를 삭제한 재일대한민국민단으로 명칭을 바꿨다. 이는 재일조선인 사회가 과거의 조국 지향적이던 가주화 시대에서 일본에서의 공존을 모색한다는 정주화 시대로 완전히 바뀌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이러한 변화와 함께 새로운 세대의 문인들이 등장해 재일조선인 문학에도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이양지, 유미리, 현월과 같은 아쿠다가와상 수상 작가들이 등장하자 일본 문단에서도 재일조선인 문학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졌다. 이들 문학은 과거 1세대의 김달수, 김석범의 조국지향적이며 민족적 성격의 문학과는 달랐다. 양석일은 <피와 뼈>, <밤에 어둠을 걸고>에서 조국 대신 재일조선인들 삶의 실상을, 이양지는 <나비타령>과 <유희>에서 아이덴티티의 문제를 담아냈다. 또한 유미리는 <풀하우스>, <가족 시네마>를 통해 가정의 붕괴와 유년시절의 트라우마를, 현월은 <어둠의 그늘>등에서 공동체의 붕괴를 다뤘다. 이들은 재일조선인 문학의 주류를 이뤄온 민족과 차별저항과 같은 주제에서 이탈하여 새로운 작품세계를 모색하고 있는 자신들의 문학을 재일이라는 기존의 틀을 가지고 바라보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재일조선인 사회의 변화를 단적으로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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