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찬희 / 신문방송학과 박사수료

현대인들은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업무능력을 가져야 하며, 타인과 경쟁해야 한다. 구조조정이나 정리해고의 위협으로부터 안전망을 확보하려면 뒤쳐져서도 안된다. 이들은 수시로 평가받아야 하므로 주위를 둘러볼 여유나 자신을 돌아볼 여유는 허락되지 않는다. 유일하게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 허락되는 때는 기업경영에 도움이 되는 소위 자기계발을 할 때다.  기업은 점차 거대해지고 경제지표가 상승하는 반면 현대인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진다. 왜 그럴까. <모두스 비벤디>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저자인 바우만은 유동하는 근대라는 개념을 가지고 불안정한 현대인의 삶을 설명한다.

과거에는 개인이 실패하거나 불행해질때 보호받을 수 있는 장치가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장치는 줄어들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계획하고 행동하던 사회구조도 사라지고 있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사람들이 가졌던 유대감은 상품과 노동만 생각하는 시장의 이해관계 속으로 사라지거나 약해졌다. 세계화라는 거대한 개방 속에서 사람들의 삶은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놓이게 됐다. 유동하는 근대에서 불확실성은 공포 그 자체다. 경제위기, 테러, 이방인. 이들은 공포를 유발하거나 혹은 공포로써 존재한다. 공포를 완화시키거나 제거하기 위해 방어적 행동을 취하게 되는데, 사람들이 방어적 태도를 취할수록 공포는 더욱 증식한다는 게 바우만의 설명이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행동을 취하는가. 도시의 삶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례가 된다. 도시는 사람들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담과 울타리로 경계를 규정하지만 이 경계가 위험을 사라지게 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삶에서 배제된 사람들, 생계 수단이 없는 사람들은 도시의 나머지 시민들을 위협하는 잠재적 요소가 된다.

불확실성이 낳은 공포는 도시민들에게 이방인을 위협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며, 자신들의 생활공간에서 배제해야 할 사람으로 만들게 된다. 국가 권위주의도 공포를 대하는 방어적 태도에서 슬며시 등장한다. 바우만은 대 테러 캠페인이 낳은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고 말한다. 대 테러 캠페인은 위협적 대상의 제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 자체로 공포를 사회 전체에 스며들게 했으며, 그로인해 민주주의와 인권 존중을 떠받치는 가치를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그의 논의를 요약하면, 근대성이 견고한 국면에서 유동하는 국면으로 전환되면서, 즉 우리 삶을 규정짓는 사회구조가 변화하면서 현대인의 실존은 위협받게 되었고,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취하는 방어적 태도는 ‘위협’ 혹은 ‘공포’를 지속적으로 재생산한다는 것이다. 세계화, 개방화라는 물결은 우리를 경쟁사회로 초대했다. 경쟁에서 뒤쳐진다는 것도 두려움이자 공포다.

고용은 불안하고 언론에서는 언제나 경제가 위기라고 진단한다. 직장에서 언제 정리될지 모르는 두려움은 제한적 태도를 취하게 한다. 바우만의 말처럼 확인되지 않은 외부의 타인은 언제 자신의 경제적 삶을 위협하는 사람으로 돌변할지 모른다. 사회가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결국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치는 현대인이 또 다른 공포를 잉태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해답은 없는 것일까. 현대인의 피폐한 삶에 구원의 손길은 요원한 것인가. 바우만의 결론은 명확하지 않지만, 비관적이지도 않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역경, 돌연성과 불규칙적인 운명의 횡포와 같이 불확실적인 것을 예측하고 통제할 경우에는 오히려 그 반대의 상태가 될 수 있다. 즉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믿을 만한 세상, 신뢰할 수 있는 세상, 안전한 세상이 필요하다며 그러한 세상의 구현 가능성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행동, 혹은 실천의 문제로 넘겨진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지옥이라면 그 지옥이라고 부르는 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는 압력에 맞서 용감하게 싸워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짧은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경제위기가 사회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합리적 주체의 덕목을 갖는 근대성이 그 자체로서 어떻게 반근대성을 갖는지 등 여러가지를 생각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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