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훈 / 수유너머 N 연구원

 


 

 

 

 

 

 

 

■에티엔 발리바르 (Etienne Balibar, 1942~)

이제 레닌의 귀환은 부인될 수 없는 사실이 된 것 같다. <레닌에 대해 말하지 않기>(사이먼 클락 외, 2000)가 출간될 당시만 해도 전혀 관심이 되지 못했던 레닌이 어느덧 우리 시대의 지적 스타 지젝의 ‘레닌의 제스처를 반복하자’는 구호와 더불어 대한민국 진보 지식계의 뜨거운 관심사가 되었다. 지젝의 레닌론인 <혁명이 다가온다>(2006) 이후 레닌에 대해 쏟아지는 국내외 저작들, 특히 한국의 연구자들이 중심이 된 연구서의 출간이 활발해졌다. 이제 레닌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반자본주의와 혁명을 논의하는 것은 시대에 뒤쳐진 일처럼 보이는 시절이 도래한 것 같다.

그러나 레닌의 귀환을 경축하기에 앞서 우리는 ‘어떤’ 레닌이 돌아왔는지 먼저 물어야 한다. 우리 시대에 ‘무엇을 하기’ 위해 레닌을 다시 읽어야하는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발리바르의 <전쟁이 규정한 정치에서의 철학의 계기: 1914년-1916년의 레닌>(<레닌 재장전> 수록)은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한다.

정세의 철학자, 레닌

발리바르의 텍스트는 1차 대전을 전후하여 레닌의 사유가 변화되는 과정을 추적하며 그 안에 있는 복수적 경향들 -심지어 상호 대립되는 경향들-을 분석한다. 여기서 발리바르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레닌에 있어서 ‘정치’, ‘철학’, ‘전쟁’이라는 세 가지 단어가 서로 관련을 맺는 양상이다. 레닌에 대한 논의에서 많이 다루어졌던 이 주제는 종종 철학(또는 이론)에 대한 정치(또는 실천)의 우위, 전쟁에 대한 정치의 우위라는 테제로 정리되곤 했다.

그러나 발리바르는 레닌의 사유를 보다 면밀히 이해하기 위해서 이 세 가지 항(정치, 철학, 전쟁)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야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 그는 그 동안 레닌에 대한 논의에서 관련되지 않았던 두 항, 즉 레닌에게 있어서 철학과 전쟁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 묻는다. 그리고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는 1914-16년 사이의 레닌을 주목해야한다고 말한다.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1914년)이 발발한 이후 러시아혁명(1917년)이 발생하기 바로 직전까지이다. 이전에는 겪어 보지 못했던 격변의 사건들이 연속되는 이 시기가 어떻게 레닌의 사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이 시기에 나타난 레닌의 변화는 “모든 혁명은 ‘순수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집약된다. 다시 말해 역사발전 법칙에 따른 순수한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1915-16년에 작성된 레닌의 텍스트에는 경제적 진화주의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다. 하지만 발리바르는 1916년 말-1917년초 레닌의 저술에서는 이러한 진화주의적 사고가 근본적으로 수정되었다고 말한다. 어떻게 수정되었는가. “이제는 모든 역사적 발전이 ‘불균등한’ 것으로 이해됐을 뿐만 아니라, 최종적으로는 정치적 영역의 복잡성을 ‘경향들’의 논리로 환원할 수 없음이 드러났다.” 혁명은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극점에 도달해 모든 사회적 갈등이 계급투쟁으로 환원된 결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복잡다기한 정세적 조건 속에서 전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확실히 [레닌의 사유에서] 역사철학의 선험적 전제가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특히 레닌 자신이 고수한 세계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관점에서 이런 전제가 잘 드러난다.) 그러나 이 선험적 전제는 ‘구체적 상황들의 분석’이라는 전략적 ‘경험주의’, 즉 혁명 과정에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투쟁이 (‘평화적’이든 ‘폭력적’이든) 다양한 형태로 결합되기 마련이며, 한 투쟁 형태가 또 다른 투쟁 형태로 이행해 간다고 보는(그래서 혁명적 이행에는 고유한 [정세들의] 지속과 연속되는 모순이 문제가 된다) [레닌의] 경험주의와 공존하며 (양자 간의 극단적인 긴장을 감수한 채로) 서로의 결합을 추구했다. -<레닌 재장전> 중에서

위의 인용문은 발리바르가 파악하는 레닌 ‘철학’의 요체다. 이 문장에서 레닌은 혁명을 다양한 모순들과 복수의 계기들이 응축된 정세로부터 사유하는 정세의 이론가로 나타난다. 이는 혁명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 만들어내는 객관적 운동의 결과로 파악하는 경제주의와 대결하는 사유이며, 또한 자본주의의 모순이 심화되면 사회적 갈등이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계급투쟁으로 환원된다는 단순화된 계급투쟁론과도 맞서는 사유이다. 이것이 바로 발리바르가 레닌을 다시 읽음으로써 오늘날 맑스주의 이론진영으로 소환하고 싶었던 그의 모습이다.

전쟁, 혁명, 대중: 혁명적 상황과 혁명적 주체

혁명에 대한 이와 같은 레닌의 사유는 그의 지적 발전을 표시하는 지표인데, 이는 전쟁의 경험을 거치면서 형성된 것이었다. 1914년 이전까지도 레닌은 ‘확고부동한 교리와 철학적 입장을 견지한 인물’이었다고 발리바르는 말한다. 그러나 1914-16년 사이, 즉 전쟁에서 혁명으로 이어지는 독특한 역사적 공간은 레닌의 사유에 새로운 경향을 도입하게 했다. 전쟁의 경험은 레닌에게 혁명의 조건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뿌리부터 다시 하도록 강제했다는 것이다.

발리바르는 전쟁에 의해 촉발된 혁명의 조건에 대한 레닌의 성찰이 어디로 나갔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철학노트”에서 전개된 레닌의 클라우제비츠 독해를 분석한다. 레닌은 클라우제비츠를 헤겔과의 연관 속에서 읽음으로써, 전쟁과 계급정치의 관계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벼려냈다. 그 결과 그는 결국 전쟁은 정세 속에서 사유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정세는 대중이라는 집단적 행위자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이는 혁명적 주체의 문제를 레닌이 다시 사유하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정세란 단순히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이라는 객관적 조건의 효과로 환원되지 않는 것이다. 정세는 언제나 대중들과 연관되어 있다. 이는 전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국가는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대중들의 힘을 이용할 수밖에 없지만, 장기적으로 이 대중의 힘은 국가의 통제를 초과할 수 있는 것이 되기도 한다. 레닌은 이러한 대중적 힘의 가능성으로부터 “제국주의 전쟁을 혁명적 내전으로 전화시키자”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된다. 전쟁 내에 존재하는 계급투쟁의 계기를 첨예화함으로써 전쟁(제국주의 전쟁)에 맞서는 전쟁(혁명적 내전)을 구성하는 계급정치를 사유한 것이다.

대중의 힘이라는 계기를 통해 전쟁을 계급정치의 연장 속에서 파악하게 된 레닌은 전쟁의 생산성에 주목한다. 다시 말해 전쟁이 사회주의를 생산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발리바르는 여기서 어려운 질문을 하나 던진다. “사회주의는 전쟁을 막을 수 없었는데 전쟁은 어떻게 사회주의를 ‘생산’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발리바르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하다. 전쟁이 조성하는 것은 혁명의 성공이 아니라 혁명적 상황일 뿐이라는 것이다. 전쟁 속에서 대중이 일으킬 수도 있는 반란은 언제나 잠재적이라는 것, 역사적으로 다양한 계기들의 중층적 결합 하에서만 그것이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을 뿐이다.

발리바르는 전쟁의 경험이 레닌의 혁명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고 파악한다. 발리바르의 레닌 독해는 혁명의 정치를 위해 오늘날 좌파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효과를 발휘한다. 혁명적 상황은 객관적 토대가 자동적으로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이 혁명을 실천할 순수한 프롤레타리아트도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정세 속에서 열리는 혁명적 상황을 실제의 혁명으로까지 밀고 가는 혁명적 주체를 어떻게 구성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그래서 발리바르는 전쟁의 경험이 레닌을 “혁명적 주체는 (의식화, 즉 즉자적 계급이 대자적 계급으로 ‘변형’되어가는 형태까지 포함해) 이미 확보된 사회경제적 전제조건이 아니라, 복잡한 정치적 구성과정의 결과로 등장하게 된다”는 결론으로 이끌었다고 말한다.

‘전쟁에 의해 규정된 정치에서 비롯된 철학적 계기’가 핵심적으로 작동했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발리바르가 돌아오도록 만드는 레닌은 누구인가. 그것은 무엇보다 정세의 철학자 레닌이며, 혁명을 중층결정된 정세 속에서 구성되어야 할 혁명적 주체의 실천으로 파악하는 레닌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무수한 얼굴로 돌아오고 있는 레닌에게서 발리바르가 발견하고 싶은 그의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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