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영 /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북한의 공민으로 태어나 북한땅에서 생활하다 경제적, 정치적 사유를 비롯한 여러 가지 이유로 그곳을 떠나서 남한 사회에 정착한 탈북이주민들은 2010년 현재 2만여 명에 달한다. 한때 우리 사회에서 ‘귀순용사’로 불리기도 했던 이들은 현재 탈북자, 새터민, 북한이탈주민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호명되고 있다. 이와같은 다양한 이름은 그들이 국가와 민족의 구성원으로서 가진 복합적인 정체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들은 대한민국 국민인 동시에 대한민국의 적국으로 간주되는 북한의 공민이었던 사람들이다. 우리와 같은 피를 나눈 한민족인 동시에 외부 사회에서 들어와 이 사회에 정착한 이주민이다. 이들은 ‘우리’인 동시에 ‘타자’이고, 통일미래를 준비하는 역군이면서 동시에 남한 사람들의 짐으로, 우리의 ‘형제자매’이지만 어느 순간 ‘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한편 국내 입국한 북한이탈주민 외에 중국 등 외지에서 떠도는 숫자도 적지 않다.

   북한은 장기간에 걸친 유일지배체제라는 자체 모순, 소련 등 동구 사회주의국가 몰락으로 인한 국제사회주의 시장의 상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봉쇄정책 등 식량난으로 대표되는 위기들이 점증되어 왔다. 이러한 체제위기는 이탈주민의 증가라는 결과로 이어졌는데, 이들 대부분이 중국을 중심으로 제3국에 유입됐다. 재외 탈북자 중에서 재중 탈북자의 수는 기관에 따라 차이가 나긴 하지만, 1990년대 후반까지는 급증하다가 이후 감소했으며 2005년 당시 대략 3-5만 정도로 추산됐다. 주로 중국에 있는 친척을 찾아 나서거나 중국에 일정기간 체류하면서 노동을 통해 돈과 식량을 마련하는데, 이들 중 궁극적으로 남한행을 결심하는 숫자도 적지 않다. 이들은 중국에서 체류하는 동안 어느 정도 식량문제를 해결하게 되지만 중국에서 겪게 되는 여타 인권 문제들도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중국의 북한이탈주민

   이들은 주로 인력이 부족한 중국 농촌지역에서 단순숙식 해결 정도의 저임금 노동자로 생활한다. 남성의 경우 농촌지역 과수원 및 목장 등에서 일하면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가 많고, 여성은 식당이나 유흥업소 봉사원, 저임금 간병인, 가정부 등의 일자리에 취업한다. 하지만 적발될 경우 고용주는 처벌을 받고, 이들은 강제북송되기 때문에 작은 임금조차도 지속성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또한 이들의 불안정한 신분을 빌미로 노동착취도 종종 자행되고 있다. 더구나 불법 입국자인 이들은 중국 내에서 최소한의 사회보장 혜택을 받을 수도 없으므로, 북한에 있을 때와는 또 다른 요인으로 경제적인 위협을 경험하게 된다.

   식량문제는 결국 경제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북한에서보다는 식량문제를 해결할 기회가 많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임금이긴 하지만 숙식을 제공하는 취업 기회들이 있고, 여성은 취업 외에 조선족이나 한족 남성과 사실혼 관계를 가지면서 숙식을 해결하는 경우도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식량사정은 재북시절에 비하면 비교적 양호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들은 불분명한 신분여건으로 인해 여러 가지 위험에 노출된다. 건강에 있어서도 여러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는데, 신변위협의 불안으로 정신적·육체적 질병이 매우 많이 발병한다고 한다. 특히 여성은 인신매매를 당하는 등 성폭력에 심각하게 노출되어 있다. 또한 사실혼 관계에서도 그 상대가 알콜중독자, 도박꾼, 성격파탄자들인 경우가 많아 구타와 폭행을 경험거나, 원치 않는 임신과 불법낙태 등으로 말미암아 건강뿐만 아니라 정신적 안전을 보장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어린이의 경우에는 발육부진문제가 지적되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이들을 불법 월경자로 규정하고 난민지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개인안보의 위협 또한 매우 크다. 중국 정부는 이들이 적발될 경우 북한으로 되돌려 보내는 ‘강제송환’ 정책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정부는 이들의 개인안보에 위협요인이며, 이탈자에 대하여 처벌 정책을 취하는 원국가인 북한 또한 위협요인이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은 중국 체류기간 동안 늘 언제 있을지 모르는 검문검색과 체포를 두려워하며 생활해야 한다. <좋은벗들>의 조사에 의하면, 이탈주민들은 탈북 이후 피신한 장소에 대해 63.2%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낀다. 중국에 친지나 친척이 없는 경우, 이들은 중국 체류기간 동안 안전한 곳을 찾기 어렵고 타인으로부터의 학대나 물리적 폭력으로부터도 이들을 보호해 줄 주체가 없으므로, 개인안보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앞서 언급했듯이 여성은 물리적 폭력과 성폭력, 성매매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다.

   중국 등 제3국에서 공식적인 이주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은, 북한주민으로서 가졌던 사고방식과 정체성을 지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탈주민들은 신분이 노출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외모와 행동에서 더욱 중국 사람처럼 보이려고 노력하며, 여성들은 중국식 가사와 육아 등 중국여자로 살아가기를 강요받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중국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 사고방식과 언행, 외모까지도 변화할 것을 요청받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들이 함께 모이거나 그들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여지는 전혀 생각할 수 없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들이 중국에서 정치적으로 보호를 받거나 권리를 가질 수도 없다는 것이다. 총체적으로 보면, ‘더 나은 삶을 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위협적인 북한을 떠난 북한이탈주민들이 오히려 중국에서 총체적인 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탈북의 주요동인 중 하나인 식량문제가 일정수준 나아지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불안정한 신분으로 인해서 체류국가와 원국가 어디로부터도 정치적·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며 이로 인해 육체적·정신적 건강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이탈주민에 대한 다차원적 시선

   북한이탈주민의 문제가 복잡한 가장 핵심적인 이유는 이들에 대한 규정이 다차원적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헌법에 따르자면 이들은 분명히 한국의 국민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제법상으로는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국민이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불법적으로 국가를 버린 ‘배신자’로서 체제 위협세력으로 간주된다. 중국이나 제3국의 입장에서 보면 불법체류자가 되고, 인도적인 차원에서는 국제난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중첩성은 이들에 대한 적절한 대책 수립을 어렵게 한다. 무엇보다 어떠한 법적 보호도 받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난민인정이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우리 자신도 난민 인정에 인색하면서 체류국에 난민 인정을 요구하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 특히 당사자라 할 만큼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는 중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북한이탈주민은 대규모의 불법체류자로서 치안을 위협하는 세력인 동시에 중국이 가장 민감해 하는 소수민족문제와 관련되어 있고,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어서 그들 역시 북한 이탈주민 문제를 체제 유지 차원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정치논리를 떠나 이들에 대한 인권적 차원의 인식이 당사국간에 공유되는 것이다. 중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바탕에서 남한으로 오고자 하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통로를 확보하고, 경우에 따라 북한으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북한이 처벌 등의 제재 없이 수용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남한 사회 내에서도 이들을 정치적인 선전의 수단이나 경제적 이득을 취할 대상으로 보는 경향을 경계해야 한다.

   중국 등 북한 인접국가뿐만 아니라 영국을 포함한 유럽지역까지 진출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이 증가하고 있는 최근 상황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기존 탈북자들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 남한에 일단 정착했다가 국적을 숨기고 북한난민으로 유럽에 가는 경우도 없지 않은데 이들에 대한 적절한 정책을 마련하는 것 역시 필요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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