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3월, 전 세계가 올림픽 열기로 달아오르고 있을 무렵 티벳에서는 대규모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이 시위는 티벳망명조직인 ‘티벳청년회의(TYC)’를 주축으로 한 ‘다람살라-티벳 대장정시위’에서 시작된 것으로, 티벳 내에서도 이에 동조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평화적으로 진행됐던 이 시위는 불과 나흘 만에 대규모 무력충돌로 번졌다. 시위단에 대한 중국의 강경무력진압이 국제사회에 알려지자 티벳 독립 지지시위가 세계 곳곳으로 확산됐으며 그 비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티벳은 자치와 문화를 인정했던 청조의 형식적 지배를 제외하면, 1950년 중국공산당이 티벳을 점령하기 전까지 단 한번도 중국에 지배당한 적이 없었다. 청조가 붕괴하면서 티벳이 사실상 독립국가가 되었음에도, 1950년 중국공산당은 중국과의 ‘재통합’에 정식으로 합의할 것을 요구했다. 이를 거절한 티벳을 중국이 무력으로 점령하자 달라이 라마는 결국 ‘티벳의 평화적 해방에 관한 17개조’에 합의했다. 그 후 8년간 양국의 공존이 유지되었으나 결국 중국이 일방적으로 조약을 파기하면서 이 위태로운 공존은 무너지고 말았다. 티벳에서 반중시위가 일어났지만 즉시 무력진압됐다. 달라이 라마는 1959년 인도로 망명하여 티벳 망명정부를 수립하고 티벳의 독립을 선포했으며 비폭력주의의 표방 아래 티벳분리독립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티벳의 망명인구는 십삼만여 명에 달한다. 지난 2008년의 시위는 이러한 티벳인들의 절박한 사정을 국제사회에 알리고자하는 적극적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여전히 티벳문제는 ‘국가통합’이라는 ‘중국의 내정에 속한 조국의 통일과 분열의 문제’라며 티벳의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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