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찬희 / 신문방송학과 박사수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지젝이라는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라캉을 새롭게 전유해 그를 합리주의의 계보에 위치지우고 헤겔로 회귀하는 지젝의 이론적 전개는 그에게 도발적인 철학자라는 수식어를 붙여줬다. 지젝은 1989년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을 시작으로, 20년간 예의 그 특유함이 돋보이는 많은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이 책은 지젝의 근작으로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작된 세계금융위기 혹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진단한다.

자본주의가 맞이한 자본주의의 위기와 그 대처방식에 대한 분석을 통해 지젝이 제시하는 결론적 논의는 공산주의의 재점화이다. 20세기 말 현실 사회주의 붕괴를 목도했기 때문에 이 재점화는 자본주의 위기에 대한 단순한 반대급부로서 제시되지 않는다. 이를 위해 지젝은 책을 두 개의 장으로 나누고, 첫 번째 장에는 자본주의가 금융위기를 대처하는 방식들에서 나타나는 이데올로기적 함의를, 두 번째 장에는 자본주의가 경제위기와 관련하여 억압적이고 비민주적인 권위를 어떻게 부활시키는지를 설명한다. 지젝은 이 과정을 통해 세워진 새로운 기초 위에 공산주의를 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을 제기하는 이유는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상황전개가 묘하게 모순적이기 때문이다. 구제금융안에 대한 공화당의 반발은 하나의 사례다. 공화당은 월스트리트를 구하기 위해 납세자들에게 댓가를 요구하는 것은 사회주의적 정책이라며 거부했다. 공화당은 왜 부자들을 돕는 정책을 거부했는가. 그 이면에는 ‘자본주의 경제 하에서 월스트리트의 번영은 그 계급적 극점인 메인스트리트의 복지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부자가 더 부유해지면 빈자들에게도 이윤이 퍼질 것이다’라는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 그러나 이는 이데올로기일 뿐 아니라 명백한 진실을 내포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월스트리트의 몰락이 노동자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과 동시에 그 역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비대칭은 월스트리트와 부자들에게 우월한 위치를 허락하게 한다.

지젝에 따르면 공화당의 반대, 즉 메인스트리트를 도우라는 슬로건은 일종의 기만이며, 월스트리트의 우월성을 간과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다. 경제위기의 원인도 세계자본주의 체제의 필연이 아니라 우연적인 일탈에 연유한다는 지배이데올로기적 서사가 강요된다. 지젝은 자본주의의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민주적인 절차가 정지된다는 사례를 말하며 또 다른 징후를 읽는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위기의 긴급성은 다른 위기-지구온난화, 생태계 파멸, 기아, 물 부족 등-의 긴급성에 선행한다.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전개과정과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각국 정상들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여기서 지젝은 금융붕괴의 긴급성은 절대적이기 때문에 초국적, 초당적 통일성이 확립된다고 말한다. 이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는 정지된다. 구제금융에 반대한 사람들도 곧 동조하게 되고 행동은 신속하게 취해진다. 지젝은 이들의 신속성은 시장에 대한 신뢰 회복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그 단순한 믿음 때문에 민주적 절차를 정지시키는 권위가 발휘된다고 말한다.

위와 같은 논의를 전개하면서 자본주의의 모순, 민주주의의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그리고 언급한 것처럼, 결론은 공산주의의 재점화이며 그 핵심에 혁명의 주체로서 우리를 가져다 놓는다. 지젝의 논의를 따라가는 일은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이 책은 그간 그의 저작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짧게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오히려 어려운 독해가 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국에서도 충분히 경험한 경제위기상황 혹은 경제위기담론이 어떠한 물질적 효과를 발생시키는지에 대한 학술적 고민을 가진 사람에게는 충분히 이론적 정박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론에서 머무르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간다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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