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숙 / 아동복지학과 교수

나는 종종 학생들에게 학문하는 ‘가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대학원에 온 이유를 묻곤 한다. 나는 학문하는 가치는 모든 학문적 행위와 연관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를 모든 학문적 질문 위의 질문 즉, 상위 질문으로 두고 학생들과 대화를 나눈다. 사실 나도 대학원을 다닐 때 그러한 가치를 지니지 못했다. 학위 과정을 시작했을 때도, 학위를 취득한 후에도 나의 연구 결실을 미래 전망과 연결 짓는 데에만 여념이 없었다. 이처럼 계산된 학문적 행보를 스스로 반성하게 된 계기는 스웨덴의 구닐라 달버그와의 만남이었다.

그녀는 북유럽의 아동복지와 보육·교육 분야에서 현대 철학 담론을 주도하고 있는 석학이다. 내가 그곳에 머무르는 약 4개월 동안 그녀는 세계 어린이들의 현실과 아동복지제도 구축에 필요한 사회적 행동을 설명하고 실행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녀의 열의에 가득 찬 말과 행동은 자신의 이론을 현실적 행동 ‘가치’로 표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실 어린이에 관한 어떤 학문적 담론도 그 속에 어린이의 주체와 삶의 현실이 제외되어 있다면 사상누각인 것이다. 나는 그 때 석학으로서 자신의 연구분야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전문적 지식 이외에도 일정한 가치 체계와 그에 걸맞은 행동 체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연구에 대한 가치를 정립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각 분야와 전공별로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며 더군다나 그것은 철학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문 공동체의 협력이 더욱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유럽에서 어린이 연구에 관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된 것도 1960-70년대의 아동권리와 현대 철학에 대한 사회와 학계의 활발한 담론과 연대 때문이었다.

경쟁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학문적 가치 자체를 찾는 것과 학문공동체의 풍토를 조성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수도 있다. 그러나 연구 성과가 개인적 산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학문적 지평을 여는데 공헌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가치를 학문공동체에서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 대학원 과정 중 작게는 학과와 학교에서, 크게는 학계에서 이를 시도해볼 수 있다. 그러니 아주 작은 그룹이라도 상관없다. 아름다운 사색의 계절인 이 가을, 작은 규모라도 좋으니 우선 시작해 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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