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휘진 편집위원

  추석 연휴를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온 사람들의 안부 인사가 색다르다. 여느 때라면 쉬는 동안 무엇을 하며 보냈는지, 고향에 다녀왔는지, 맛있는 음식은 많이 먹었는지를 물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모두가 입을 맞춘 듯 ‘집은 괜찮냐’고 묻는다. 추석 연휴 첫날 서울에 쏟아진 260㎜의 집중호우는 이렇게 오랫동안 입에 배인 인사를 바꿔놓을 정도로 강력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이날 폭우로 2명이 사망·실종하고 1만4천여가구가 물에 잠겼으며 1만2천여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다음날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최대 침수지역인 양천구 신월1동을 방문해 이재민들을 위로하고 “상습 침수지역에 대한 기술적인 점검을 해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이날 현장을 보도한 KBS뉴스에 의해 전파를 탄 이 대통령의 ‘위로’의 말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대통령은 한 다가구 주택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마음을 편안하게 먹어요. 기왕에 된 거니까. 편안하게.” 온통 빗물에 젖은 세간을 침통하게 바라보던 수재민은 대통령의 위로에 이렇게 응수했다. “편안하게 먹을 수가 있어야죠.”
  혹시 이게 바로 실용주의적 마인드일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판단은 뒤로하고, 일단 벌어진 일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갖는 것. 다시 말해, 원인과 과정보다는 결과를 중시하는 것. 이 나라의 수장인 한 실용주의자의 사고체계에는 지난 사건에 대한 반성도, 진행되고 있는 일에 대한 검토 및 보완도, 앞으로 벌어질 일에 대한 예견도 없고 오로지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실만이 존재하는 듯 보인다.
  게다가 그 현실에 대한 관심도 매우 국한되어 있으니 더더욱 문제적이다. 만일 이 대통령이 절망에 잠긴 그 ‘수재민의 현실’에 정말 관심이 있었다면 어떻게 그런 위로를 던질 수 있었겠는가. 서민을 위한 정치를 하고, 서민을 위한 경제정책을 실시하겠다던 이 대통령 집권 후 세 번째 맞이한 추석에 ‘그의 서민’은 물가폭탄과 물폭탄을 동시에 맞고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어차피 단기에 눈에 보이는 성과를 가져오지 못할 서민경제 살리기에 집중하기보다 ‘국가경제’ 수치를 효과적으로 높여줄 4대강사업에 매진하는 것이 실용이고, 이미 먹거리를 선택할 자유를 박탈당한 저소득층의 건강을 챙기는 것보다 미국산 소고기를 수입해 지금의 한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실용일 테니 말이다. 무게감 없이 너무도 쉽게 나온 그 한 문장을 단지 위로가 서툰 어느 중년남성의 그것으로 여기고 웃어넘길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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