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리 / 불어불문학과 석사과정

    첫 글자를 적기가 두려워서 한참을 망설였다. 요즘은 말 한마디 하는 게, 글자 하나 적는 게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다. 언어를 수단으로, 언어에 대해 혹은 언어로 만들어낸 세상에 대해서 공부하는 게 내 일인데도 말이다.
 

    처음으로 대학원 생활을 시작한 지난 학기는 참으로 어수선했다. 어른들 어려운 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굴던 나에게 갑자기 주어진 조교라는 막중한 임무와 지난 4년간의 학과 공부를 무색하게 만들며 틈만 나면 비집고 올라오는 새파란 무지, 눈과 귀를 막은 상대와의 끝이 보이지 않는 투쟁. 뿐만 아니라 하나둘씩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친구들을 보며 공부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과연 잘 한 일인지, 혹시 한 때의 욕심으로 앞으로의 내 인생에 스스로 위협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불안감이 끝없이 나를 괴롭혔다.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근무시간에 항상 할 일이 넘치는 것은 아니지만 한가해졌다 싶어 책을 펴면 집중이 될 때쯤 전화벨이 울리고, 누군가 사무실 문을 두드린다. 퇴근 후에는 가까스로 과제만 마무리 할 뿐 그 이외의 시간은 학과 행사에 참석하거나 묵은 피곤을 풀기 위한 술자리 혹은 수면으로 흘려보내며 주변 사람들에게 쉼 없이 투덜거렸다. 그 이상은 내 능력 밖이라고 어쩌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주입시켰는지도 모른다. 말과 글이 두렵다고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무언가가 문장으로 만들어져 몸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모든 것이 그 언어 안에 갇혀버려 다른 것을 의식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 반년 전보다 조금은 여유로워진 나는 학과사무실에 앉아 조용히 자판을 두드린다. 내가 쓰는 글이 나 자신을, 혹은 이 글을 읽는 이들을 실제와는 무관한 방향으로 끌고 가지는 않을까 반쯤은 두려워하면서. 모든 것이 마음먹기 달렸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게 돌아가도 자신만 강해지면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누구나 강해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내가 강해졌다거나 상황이 바뀐 것 같지는 않다. 다만 뜨거운 여름이 지나면서 딱딱하게 굳어 있던 생각들도 조금은 녹아내려 부드러워진 느낌이다. 언젠가 또 내 선택을 아니 나 자신을 의심할 지도 모른다. 그 순간을 ‘강인한 정신’으로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내 나는 괜찮아질 것이다. 수두를 넘긴 어린아이처럼, 다시 연애소설을 읽을 수 읽게 된 헤어진 연인처럼.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