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창준 / 민주노동당 부설 새세상연구소 연구위원

    일반적으로 대북제재는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 내기 위한 정책으로 이해된다. 북한의 변화는 소극적으로는 ‘북한 행동의 변화’에서부터 ‘북한 정권의 교체’, 가장 적극적으로는 ‘북한 체제의 붕괴’까지를 의미한다. 이같은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북한의 체제가 외부의 지원 없이는 유지될 수 없을 만큼 지극히 취약해야 한다. 둘째, 국제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대북제재에 동참함으로써 ‘북한이 기댈 언덕’이 없어야 한다.


    ‘북한의 체제가 취약한가’에 대한 문제는 논란의 중심에 있다. 그것이 정치가 되었든 경제가 되었든 간에 북한 체제가 얼마만큼 취약한가 하는 문제는 명료하게 정리되기 어려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이 기댈 언덕’의 존재 여부는 더 이상 논란의 대상이 아니다. 중국이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이다. ‘순망치한 관계’ 때문이든 ‘혈맹 관계’ 때문이든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동참 여부에 무관하게 실질적인 대북제재에 나선 적이 없다. 오히려 지난 해 이후, 중국은 북한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결국 대북제재가 성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북제재, 작용과 반작용


    이번엔 북한 내부로 눈을 돌려보자. 중국이라는 버팀목이 존재하는 이상 대북제재가 북한 인민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리라는 기대는 무리다. 미국이 소위 ‘통치자금’과 ‘사치품’ 제재에 집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미국은 통치자금을 봉쇄하면 북한 지도부에 대한 인민의 지지가 철회될 것이며, 사치품을 봉쇄하면 북한 기득권층이 북한 정권에서 이탈할 것으로 기대하는 듯하다. 물론 그와 같은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고도로 정치화된 사회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같은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물론 통치자금이나 사치품 외에도 미사일과 핵 제재를 비롯한 다양한 대북제재가 실행되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제재 상황에서도 북한은 보란 듯이 우라늄 농축에 ‘성공’했다는 발표를 했고, 수소폭탄 제조가 가능한 핵융합 실험도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성공 여부와는 무관하게 ‘변화되어야 할’ 북한의 행동은 계속되고 있다.


    한편에서는 화폐 개혁이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관측이 제기됨으로써 대북제재가 효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화폐 개혁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섣불리 대북제재의 성공으로 판단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이다. 화폐 개혁이 실패했다고 해서 그것이 곧바로 북한의 변화로 직결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화폐 개혁의 실패가 대북제재 덕분이라는 것도, 화폐 개혁의 실패로 대북제재가 앞으로 성공할 것이라는 것도 아직은 설명력을 갖고 있지 못하다.


    결국 대북제재의 효과는 장기적으로도 장담할 수 없는 반면에, 그 반대효과는 단기적이며 명확하다. 북중 관계가 정치·경제적으로 더욱 돈독해지고 있으며, 북한의 행동은 더욱 ‘벼랑 끝 전술화’되고 있다. 북한의 행동을 변화시키겠다는 대북제재가 북한의 행동을 더욱 ‘극단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처럼 이후 북한의 행동 변화를 눈여겨보면 대북제재는 효과보다는 역효과가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미국은 1994년 1차 핵위기 이후 군사적 제재는 포기했다. 이렇듯 일단 군사적 옵션이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대북제재의 수단은 제한적이다. 북한의 무역비중에서 50% 이상을 차지하는 중국이 실질적으로 동참하지 않음으로써 대북제재의 효과도 제한적이다. 제재를 통해서는 북한의 행동을 제어하거나 변화시키지 못하며, 북한 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입히지도 못한다. 그러나 북중 관계는 돈독해지고 있으며, 북한의 ‘핵 억지력’도 더욱 ‘강화’되고 있다.

대북제재의 국제정치학적 역설


    결국 대북제재는 실패가 노정된 정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비록 실패가 뻔히 예상된다고 해도 대북제재의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 변화 유도 외에 대북제재가 노리는 또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이후 대북제재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북접근은 흔들리는 미일동맹을 ‘바로잡는’ 계기가 되었다. 대북제재를 중심으로 하여 한미가 공조한 결과, 미국은 원하는 방향으로 한미 FTA 재협상을 현실화하고, 한국 정부로 하여금 이란 제재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미국이 대북제재의 끈을 계속 쥐게 만드는 동력이 여기에 있다고 보는 것이 비약은 아닐 것이다. 미국은 대북제재라는 수단을 통해 기존의 동북아 질서를 유지하는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최근 북한과 더욱 돈독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 역시 이같은 측면에서 설명 가능하다. 즉 동북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쇠퇴를 열망하는 중국은 대북제재의 효과로 한미일 공조가 강화되는 것에 대응하고자 북한과의 보다 긴밀한 관계 형성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북제재는 동북아시아의 냉전적 질서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고 있다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참으로 역설적이다. 북한의 변화를 꾀하자는 것은 곧 북한을 탈냉전의 조류에 합류시키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같은 목표를 가진 채 추진되고 있는 대북제재는 북한의 ‘대결적 정책’을 더욱 강화시키는 기제가 되고 있으며, 한미일-북중 냉전 구도를 더욱 강화시키는 촉매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설은 결국 대북제재의 의미와 효과에 대한 국제정치학적 재검토를 요구하는지도 모른다.


    한반도의 특성상 한국 정부의 대외정책과 대북정책은 긴밀한 함수 관계를 갖는다.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는 비록 그 표현은 달랐지만 균형적인 외교정책과 대북포용정책을 표방했다. 그 결과 남북관계와 6자회담이 동시에 진전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한미동맹 올인 외교에 치중하고 있으며 이것이 대북압박정책으로 외화됨으로써 남북관계는 긴장 고조의 악순환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결국 한미 ‘대북제재 동맹’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북제재 정책이 결과적으로 냉전적 질서를 더욱 강화하는 촉매제가 되었다는 점에서 대북제재 외교는 결국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것이다. 천안함 이후의 상황 전개는 현 정부의 대북정책이 이미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고 있다는 확신마저 심어준다. 대북제재 동맹은 한국 정부가 추구해야 할 외교정책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판명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대북제재 동맹은 한중, 한러 사이의 외교적 갈등을 촉발하기도 했다. 국제정치학적으로 중국은 미국 못지않게, 어쩌면 미국보다도 더 한국 외교에서 중요한 대상이 되고 있다. 실효도 없는 대북제재에 치중함으로써 중국과의 관계가 훼손된다면 이는 결국 국익의 손상이 될 것이며 치명적인 외교적 실책이라 할 것이다.


    최근 대북제재가 실질적으로 해소되는 상황이 급전개되고 있다. 남측 사회의 대북지원이 현실화되면서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한 희망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역시 북과의 대화에 착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서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이것은 대북제재가 외교정책의 주요한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설령 대북제재 정책을 전면 폐기시키지는 못한다고 하더라도, 대북제재와는 별도로 대북제재 올인 전략에서 벗어나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현실적 접근이 요구되는 것은 분명하다.


    결국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을 재구성해야 할 시기가 오고 있다는 것이다. 대북제재 일변도의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은 한국 외교의 ‘선진화’를 위한 전제이다. 이것이 이명박 정부가 대북제재의 국제정치학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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