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민호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정치철학이라는 타이틀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처럼 유례 없는 인기를 얻은 책이 또 있을까.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석달 만에 30만부가 팔려 나갔다. 최근에는 그 인기에 힘입어 ‘친히’ 저자까지 초청하여 여기저기서 강연을 열고 있다. 사실 이 책과 관련해서 제기되어야 할 질문은 ‘이 책이 가진 가치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이 책이 이렇게까지 유행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일 것이다. 그것은 하버드대라는 명함 때문일 수도 있고, 미국의 시각으로 세계를 보아온 우리의 익숙함 때문일 수도 있으며, 한국의 천박한 자본주의 환경에서 일말의 윤리를 찾아내고자 하는 열망일 수도 있다(혹은 또 다른 무엇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이 지면의 목적이 아니므로 곧바로 책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은 자극적인 사례와 흥미로운 질문들로 독자를 유혹하고, 곧바로 권위 있는 철학자들을 배치한 뒤 그 철학자들의 논리적 난점들을 (지나치게)쉽고, 통쾌하게 폭로한다. 그의 핵심에는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윤리가 놓여 있다. 샌델은 정의의 문제가 “개인이 서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묻는 것”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법은 어떤 역할을 하며, 사회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으로 확장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샌델은 그것이 개인적이든, 사회적이든 특정한 상황에서 판단해야 하는 개인을 상정한 후, 그 개인의 판단이 가진 윤리적·정치적 함의를 분석한다. 여기서 개인들은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는 독특한 합리성을 가진 것으로 전제되는데, 그것은 단순한 도구적 합리성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도구적이고 계산적인 합리성이 인간이 가진 보편 윤리에 근본적으로 대립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공리주의자들과 자유주의자들이 가진 논리적 결함과 문제점을 상세히 분석하며 논의를 진행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샌델은 특정한 상황에서의 개인의 판단은 공동체 의식에 준거해야 하며, 이를 통해 “미덕을 키우고 공동선을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컨대, 정의에는 “어쩔 수 없이 판단”의 문제가 제기되며, 그것은 “올바른 가치 측정”의 문제이기도 한데, 여기서 가치 측정의 준거가 바로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 공동체는 국가와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샌델은 유독 결론 부분에서 공동체 주의에 대한 자신의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해 미국의 대통령들과 정치인들을 자주 언급한다). 지구화의 흐름과 더불어 민족국가의 경계가 유동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공동체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삶의 위협이 될 수 있는 외부적 환경을 차단하기 위해 공동체의 경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정치적 입장과 맞닿아 있다.

  또한 샌델의 논의에서 가장 문제적인 것은 그가 분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분석하고 있지 않은 것에서 발견된다. 그는 개인들 간의 관계와 사회, 나아가 국가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안에는 계급도, 민족도, 종족도 없다. 그의 논의에서는 구조적인 층위에서 사회적 적대를 만들어내는 어떠한 심급도 발견되지 않는다.

  정의란 완성된 하나의 실체가 아니다. (샌델의 말을 빌리자면)그것은 법의 작동과 사회의 조직 형태와 관련되어 있다. 때문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법의 작동과 사회의 조직에 대한 사유가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샌델은 법이나 사회 혹은 국가에 대한 어떤 근본적인 질문도 제기하지 않는다. 그는 정치에 대해 논하지만 정치가 형성되는 근본 조건에 대해 논하지 않으며, 윤리적 사유에 대해 논하지만 그것들을 가능케 하는 인식론적, 존재론적 조건들에 대해 사유하지 않는다.

  철학이란, 특히 정치철학이란 현실의 문제를 괄호치고 관념론적 사유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정치)철학은 현실의 문제가 발생하는 핵심에서 그것의 한계 지점을 사유해야 한다. 샌델이 누락시키고 있는 것은 몇 개의 개념이 아니라 우리 삶에 놓여 있는 정치적 현실, 그 자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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