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호 / 문화기획자

   2005년 ‘안티성폭력페스티벌-포르노포르나’라는 행사가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주최로 서강대 메리홀에서 열린 바 있다. 안티미스코리아페스티벌로 지상파에서 미스코리아대회를 퇴출한 것에 힘입어 ‘포르노’라는 화두로 여성주의적인 ‘포르나그라피’의 가능성을 고민한 축제였다. 이 축제는 남성 중심의 포르노에서 폭력을 제거하고, 대신 에로스로 충만한 포르나(포르노의 여성형 명사)를 모색하는 섹슈얼리티 운동의 일환으로 기획된 것이었다. 나는 당시 이 축제에서 ‘포르나’에 걸맞는 영상 작품을 기획하는 프로그래머 역할을 했다. 그러나 포르나에 맞는 한국 작품은 찾아볼 수 없었고, 해외 작품 역시 바바라해머, 슈리칭 등 여성, 성적 소수자 작가주의 영상에서나 찾을 수 있었다.
   여성주의 포르나를 모색하기 전에 ‘포르노’에 대한 기원부터 살펴보자. 포르노는 희랍어로 ‘포르네pornē, 매춘하는 성노동 여성을 낮춰 부르는 말에서 유래한다. 당시 매춘여성들은 아마도 여성노예이거나 전쟁포로 여성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 여성노예와 전쟁포로 여성들은 남성 주인에게 가사 노동과 더불어 강간, 성적 이용 등 성 착취의 예속상태에 놓여 있었다.
   로마시대의 폼페이 유적지를 발견했을 당시 발굴팀들은 유물들에서 드러난 외설스런 성행위 묘사에 많이 놀랐다고 한다. 여남 성교는 물론이거니와 로마의 목신 ‘판’이 염소와 성교하는 조각상이 발견된 것이다. 즉, 문명 초기부터 남성들은 성적 경험을 기록해왔으며, 그림, 사진, 영화, 비디오, 컴퓨터 매체를 통해 오늘날까지도 가장 희구적으로 그 외설성을 그려오고 있다. 남성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시공간을 초월해서 전파되고 전유되어 온 문명이 바로 포르노라는 발명품이 아닐까 싶다. 현재 영화산업 중에서 최첨단 3D 영화 제작으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분야도 포르노영화다. 아직까지 포르노영화의 주 소비자층은 당연히 ‘성인 남성’으로 이야기된다.
   포르노는 사진, 잡지, 비디오, 영화 등 산업구조에 편입되면서 더 큰 호황을 누리게 되었으며, 오늘날 그 시장규모는 무려 일백이십칠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에서는 플레이보이와 같은 포르노잡지와 더불어 포르노영화 등의 주 소비자층으로 성인 이성애자 남성이 부각되면서, 그들의 욕구에 맞는 다양한 버전의 포르노가 등장하게 되었다. 미국 포르노의 90% 이상은 미국 포르노산업의 메카, 일명 ‘포르노밸리’로 불리는 '샌포르낸도 밸리'에서 제작된다. 일본은 미국만큼이나 포르노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곳으로 AV(Adult Video) 시리즈와 포르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면서 거대 포르노 산업을 이끌고 있다. 이 두 국가의 공통점은 신자유주의 정책과 초국적 자본주의를 지향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공통점은 포르노 여성배우들이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점인데, 미국의 여성 포르노 스타 사샤 그레이, 오드리 홀랜더, 일본의 아오이 소라, 하라 사오리 등은 그 인기가 유명 배우 못지않고, 개런티도 많이 받는다.
   한때 성혁명이라는 이상 때문에 포르노그라피를 했던 시절도 있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여성 포르노 배우들과 남성 포르노 배우들은 돈 때문에 이 일을 선택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여성들이 ‘성폭력 피해자’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그녀들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긍심이 대단하며 포르노 배우를 매우 급진적이고 흥미로운 직업이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녀들의 포르노는 웬만한 남성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하드코어 포르노다. 그러나 그녀들은 상당히 주체적이다. 섹스를 좋아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성 에너지를 발산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다큐멘터리 영화 <데이즈 인 포르노>(감독 젠스 호프만, 2008)에 나오는 것처럼 자신들의 직업을 사랑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녀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영화를 찍는 것보다 사회적 낙인이나 신분적 현실에서 오는 차별이다.

 

   

마돈나 Madonna, 에드바르트 뭉크 Edvard Munch (1863-1944)

1894-1895, Oil on canvas, 91x70.5cm, The National Gallery, Oslo, Norway

 

 

 

 

 

포르노 문화에 대한 다양한 시각들


   이 글을 읽는 여성 독자들은 어떠한가. 기존 남성 전유물로 제작된 포르노에서 ‘여성’ 중심으로 사고를 전환하면 많은 수의 여성주의 포르나그라피를 만날 수 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포르노 주인공이 여성이고, 스타급 여성 포르노 배우는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카리스마로 모든 것을 제압해 버리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들은 모든 전천후적 섹슈얼리티에 능하다. 여성이 소비계층으로 형성되면서 익명의 여성 관람자를 의식하는 포르노도 상당수 제작되고 있다. 페미니스트들이 입으로는 끝없이 가부장 중심주의 폐지를 주장해 오면서도, 실천에는 가부장 중심주의에 다시 귀속되던 미흡한 관습들을 이들 새로운 포르노, 포르나는 공중분해시킨다. 그녀들은 가부장제를 파괴해버리며, 남성중심주의가 여성에게 구속해온 순결주의를 척결하며, 일부일처제를 능멸한다. ‘포르노 배우들은 페미니스트다’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도 그 이유다. 그러나 다른 측면으로는 그녀들의 신분은 여전히 낮고, 그 소비주체가 남성이라는 것에서 또 다른 거국적 가부장 이데올로기의 틀에 걸려버리고 만다.
   1970년대 여성주의 운동이 일어나면서 포르노 섹슈얼리티에 대한 쟁점은 가장 큰 화두 중 하나였다. 첫 번째는 포르노 문화를 반대하는 입장으로, 포르노를 남성의 전유물로, 그것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모두 성폭력 피해자로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포르노 문화를 인정하는 입장으로, 인간의 성적 욕망이 이성애자 남성의 일방향적이고 폭력적인 문화가 아닌, 비폭력적이고 다양한 성적 욕망이 존중받을 수 있는 포르나 문화를 일궈야한다고 보는 것이다. 포르나 문화 운동은 두 번째 입장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여성과 성적 소수자들이 주체적 섹슈얼리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남성의 전유물로만 재생산되던 포르노 문화에 다양한 시각들이 교차하게 된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남성 독자들은 어떠한가. 현재 남성 중심의 포르노 문화는 인권 사각지대라고 할 만큼이나 여성 인권을 보호할 수 있는 그 어떠한 장치도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신인 포르노 배우일수록 더욱 심한 폭력에 노출되기 쉽고, 그들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다. 최근 인터넷을 중심으로 포르노가 더욱 무분별하게 퍼지고 있는 가운데 그 정도가 여성의 몸에 너무나도 폭력적이고 잔인한 경우가 많다. 특히 일본에서 제작되는 포르노 애니메이션은 ‘가상’ 캐릭터라는 이유로 여성의 몸이 성적 도구로 전락하여 여성의 입, 가슴, 음부, 항문 등을 폭력적으로 잔인하게 희화화하고, 강간, 집단성폭행, 청소녀 강간 및 일방적 성행위 묘사 등이 실사보다 더욱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아마 대부분의 남성들도 이를 잔인하다고 여기지 않을까 싶다.

 

포르나그라피의 실현


   아름다운 포르나그라피를 실현할 수 있는 단서를 조심스레 한 가지 더 제공하고자 한다. 여성 인권유린의 정도가 심각한 포르노는 포르노가 갖고 있던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성적 욕망의 긍정성을 희석한다. 그것은 오히려 대부분의 여성과 남성의 성적 에너지를 위축시키고, 성애에 혐오감을 주면서 삶의 활력을 빼앗는다. 행복한 포르노, 포르나 문화를 위해서라도 여성과 남성이 함께 여성 인권유린적 포르NO!, 진보적 성문화 캠페인을 해보면 어떨까. 폭력교실에서 해방되고 싶은 학생들의 소원만큼이나, 폭력포르노에서 해방되는 것이 여성들의 소원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더욱 적극적이고 공개적으로 포르나 운동이나 폭력포르노 개선운동을 하거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입장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어야 한다. 또한 포르노에 대해 선입견이 있었던 여성이라면, 오늘날 분명히 존재하는 그 현상을 외면하지만 말고, 목도하고 고민하면서 개선 방향들을 함께 실천해야 한다. 나보다 약자인 사람의 관점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포르나 문화를 만드는 것. 포르나그라피는 ‘관점’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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