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소 / 문화연구학과 석사과정

우리는 진부하리만치 ‘마음의 감기’를 앓는 사람들에 대해 숱하게 보고 들으며, 일상적으로 마주한다. 통상 우울증은 정신과에서 널리 사용되는 진단기준인 DSM-IV(미국정신의학협회의 정신장애 진단 및 통계 매뉴얼)에서 제시하는 9개의 증상 중 4개의 증상이 2주 연속으로 나타날 경우 그 혐의를 받는다. 이를 살펴보면 “반복되는 죽음에 대한 생각이나 반복되는 자살 생각 또는 자살 기도나 자살 계획” 항목을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지속되는 우울한 기분 또는 흥미나 즐거움의 상실”, “피로나 활력 상실”, “무가치감 또는 과도하거나 부적절한 죄책감”, “사고력이나 집중력의 감소 또는 우유부단함” 등으로,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곧잘 느끼곤 하는 ‘일반적인’ 수준의 감정 상태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더불어 약물치료를 비롯한 우울증 치료법은 우울증을 유발하는 부정적인 사고 및 행동방식을 ‘교정’하거나 대인관계 문제들을 이해하고 고쳐나가는 데 도움을 준다고 홍보된다. 이처럼 우울증이라고 재단되는 감정 상태가 사실상 정상의 영역으로부터 크게 구별되는 지점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울증을 다루는 주요 담론들은 ‘편견 제거’와 ‘인식 개선’을 중요하게 논한다. 그 ‘인식 개선’은 당신이 그저 우울한 것이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아픈 사람’임을 핵심으로 한다.

자살 충동 유발 등 항우울제가 가지는 여러 위험에도 불구하고, 각종 문구를 통해 그것을 마법의 약처럼 선전하는 제약 자본의 마케팅 전략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크리스토퍼 레인의 <만들어진 우울증>이란 책에서는 광범위한 감정 상태를 장애로 규정하여 치료의 대상으로 만드는 미국정신의학협회와 ‘약’의 투여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고 홍보하며 이득을 얻는 다국적 제약자본, 그리고 이를 부채질하는 언론의 3박자를 자세히 보여준다.

결국 우울증은 이러한 3박자,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는 질병 분류 체계를 넘어 그것과 매개되어 있는 다양한 담론들과 함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등장하고, 또 변화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알랭 에렌베르는 ‘신경증의 시대로부터 우울증의 시대로의 전환’이라는 현상을 분석하면서 우울증이 이른바 자율적인 자아, 자기주도적이고 자신을 돌보는 책임을 짊어진 자기를 조준한다고 보았다. 우울증의 시대가 자기주도성 혹은 자기책임성 같은 것을 전면에 내세우며,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고 지배하지 못하는 개인들을 병리화하는 사회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는 것이다. 우울증이 단순한 신경생리학적 질환이 아닌, 사회를 바라보는 시좌를 제공하는 단서가 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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