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 사회학과 교수

 

수명이나 질병 발생의 정도는 국가간 큰 차이를 보인다. 유럽연합 회원국들 사이에는 기대 수명의 차이가 15년 정도 존재하며, 폐결핵이나 암 발생률도 4-5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노동과 생활환경의 차이뿐만 아니라 의료와 복지 정책의 차이에 따른 결과다.


 

 

 

 

 

 

 

 

 

 또한 한 국가 내에서도 경제적인 조건에 따라 건강불평등이나 건강격차가 존재한다. 직업에 따라 평균수명과 빈번히 발생하는 병의 종류 혹은 병에 걸릴 가능성이 다르다. 2003년 세계보건기구가 보고한 영국과 웨일즈 지역 연구는 전 생애에 걸쳐서 노동환경과 소득수준이 건강에 누적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빈곤층은 부유층에 비해서 중대한 질환에 걸릴 가능성과 조기 사망 확률이 두 배 정도 높다는 것을 밝혀냈다. 오랜 기간 누적된 물질적인 궁핍, 영양 불균형, 심리적 불안감, 열등감, 사회적 고립, 과중한 일과 생활의 부담 등이 빈곤층의 신체 건강과 정신 건강을 해치며 조기 사망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하버드대 의과대학 가와치 교수의 연구(2005년)는 미국에서 인종과 계급이 건강불평등의 핵심요인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는 남성의 경우 저소득 집단의 심장병 사망률이 고소득 집단 사망률보다 3배 정도 높고, 소득수준과 직업에 기초한 계급이 인종과 건강과의 관계를 매개하고 있으며, 동일한 인종 내에서도 계급에 따른 건강격차가 대단히 크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사회에서도 이러한 추세가 강화되고 있다. 경제위기 이후 한편으로 빈곤 심화와 사회양극화가 나타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질을 강조하는 웰빙문화가 확산되었다. 생존 자체가 힘든 빈곤층이 늘어나고 있지만, 건강식과 피트니스를 강조하는 웰빙족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들은 한국사회에서도 생활과 건강의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2003년 5분위 소득계층에서 가장 낮은 소득 계층의 암 발생률은 고소득 계층에 비해 남성이 1.65배, 여성이 1.43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모두의 건강과 사회통합

집단의 건강과 사회경제적 위치와의 관계는 매우 뚜렷하다. 집단이나 커뮤니티의 건강 수준은 불평등 체계 내에서 그들이 어디 위치해 있는가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는 소비하는 음식의 종류, 의료기관 이용 빈도, 건강에 대한 관심 정도 등이 경제적 자원에 의해서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빈곤이 ‘건강하지 못함’과 관련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사회적 요인들에 의해서 건강이 결정되기 때문에 건강 불평등은 사회 불평등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는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건강 불평등과 사회 불평등은 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관계되는가. 이는 두 가지 차원에서 논의될 수 있다. 하나는 개인적인 차원의 논의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 개인이나 가족의 경제적 자원은 소비생활이나 주거와 같은 물질적 제반환경 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 사회적 지위나 자신감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노동시장과 지역사회 내에서 개인이 속한 위치에 따라서 물질적 조건이나 정서적, 감정적 자원의 수준과 내용이 달라진다. 1980년 영국의 ‘블랙 보고서’에서 밝혀진 바와 같이, 직업 계급에 따른 물질적 조건이 건강과 사망 격차를 만들어낸다. 

집합적 차원에서는 지역이나 국가의 소득 수준과 불평등 정도, 그리고 빈곤율 등이 개인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 상대적 박탈감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회적으로 좌절감과 열등감이 누적되어 정신건강에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영국의 윌킨슨이 밝힌 것처럼, 불평등이 심할수록 평균 수명의 격차가 벌어지고, 특정 계층의 사망률이 높아지며 질병에 노출되는 빈도 차이가 발생한다. 결국 사회 전체의 건강이 나빠지는 것이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일수록 평균적인 건강이 더 나빠진다는 윌킨슨의 주장은 집합적 차원의 사회적인 속성들이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1942년 ‘비버리지 보고서’는 질병과 빈곤 문제를 복지국가의 핵심적인 의제로 제시했다. 2차 대전 중 비버리지는 전후 영국이 정상적인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부유층과 빈곤층의 건강불평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것을 밝혔다. 당시 보수당 정권의 복지부 장관도 이러한 건강불평등의 해결을 위해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과제는 오늘날에도 똑같이 인식되고 있다. 2010년 마모트의 보고서 <공정한 사회, 건강한 생활>에 따르면, 최근 유럽연합은 건강불평등 증가가 사회통합을 위협하고 있음을 인지, 사회통합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건강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정책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이는 충분한 영양 섭취와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최저 임금 수준을 향상시키고 빈곤층에게 세금혜택을 줄 수 있는 조세개혁을 도모하는 것 등을 그 내용으로 한다. 구호로만 머무는 것이 아닌, 구체적인 분석과 정책을 통한 사회통합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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