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식 / 평화네트워크 대표

 

 

DJ-노무현 억제와 대화 병행, MB 무력시위 일변도

 


   그렇다면 MB 정부가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폄하한 DJ-노무현 시대와 현 정부가 서해상의 긴장과 안보딜레마를 풀기 위해 선택한 정책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우선 DJ-노무현 정부는 대북 억제를 통해 NLL을 사수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면서도 대화를 통한 긴장 완화를 병행했다. 2000년 6·15 공동선언을 통해 남북관계의 새로운 지평을 연 DJ 정부는 국방장관 회담 등 군사회담을 통해 군사적 신뢰구축과 긴장완화를 추구했다. 비록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조지. W. 부시가 당선돼 한반도 긴장이 크게 고조되고, 2002년 6월 또 다시 서해교전이 발생해 이러한 목표 달성에는 한계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 시기에 남북간의 긴장이 크게 완화된 것만은 분명하다. 북한이 최전방 배치 군사력을 후방 재배치하면서 개성과 금강산을 남북 경협 지역으로 삼은 것은 DJ의 대북정책이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완화에 기여한 대표적인 사례로 일컬어진다. 

   뒤이어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경제공동체 건설을 통해 서해상의 긴장을 완화하려고 했다. NLL 인근 수역을 ‘공동어로구역’으로 지정하고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이용 등을 통해 군사적 긴장은 낮추고 경제적 번영을 함께 이루는 방안을 모색한 것이다. 이러한 구상은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창설 합의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MB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위기의 바다’를 ‘평화와 번영의 바다’로 만들 수 있는 전임 정권들의 성과를 무시하고 대결적 대북정책으로 돌아서고 말았다. 6·15와 10·4 선언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버렸고, 북한급변사태론을 부추기면서 흡수통일을 추구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총론상의 대북정책이 크게 후퇴하면서 서해상의 위기관리도 뒷걸음쳤다. 3차 서해교전 당시에는 남한 함정의 경고사격에 북한이 대응사격에 나서자, 무려 4천발이 넘는 포탄을 북한 함정에 퍼부었다. 또한 여러 가지 의혹과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으로 결론짓고 미국과 함께 대규모의 무력시위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최근에는 NLL 작전지침도 더욱 공격적인 방향으로 수정할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작전지침 수정 검토 배경에는 지난 8월 9일 북한이 발사한 120여발의 해안포 가운데 10여발이 NLL 이남 수역으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군당국이 경고 통신만 보내고 대응사격을 하지 않았다는 보수파의 비난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비난을 의식한 군당국은 북한이 NLL 남쪽으로 해안포를 쏠 경우 피해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2-3배의 대응사격을 실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대응 사격에 나설 경우, 우발적 충돌은 물론이고 확전의 위험성이 대단히 높아지게 된다. 특히 남북 양측 모두는 포탄을 이용한 무력시위가 무력충돌로 비화될 가능성에 대비해, 육·해·공군의 경계태세를 크게 높일 수밖에 없다. 양측의 군사력이 밀집된 서해에서, 사소한 무력충돌이 확전으로 치달을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안보, 상대가 있는 게임

 


   더구나 최근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에는 남북관계의 악화뿐만 아니라, 미국과 중국 사이의 신냉전까지 가세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은 대북 무력시위에 나서달라는 MB 정부의 요구를 중국에 대한 봉쇄정책을 강화할 기회로 이용하고 있으며, 중국은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강화되고 있는 한미동맹에 경계심을 나타내고 있다. 이렇듯 한반도와 동북아의 군사적 긴장 고조는 안보 문제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상식을 떠올리게 한다. 바로 ‘안보는 상대가 있는 게임’이라는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억제용’이라고 주장해도 한미 양국이 이를  수용하지 않듯이, 한미 양국이 핵추진 항공모함 등 최강의 전력을 투입해 실시하고 있는 무력시위를 아무리 ‘방어용’이라고 주장해도 북한은 이를 ‘북침전쟁’으로 간주한다. 마찬가지로 중국의 군사력 현대화에 미국이 강한 우려를 갖고 있듯이,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강화되고 있는 미국 주도의 동아시아 동맹체제를 중국은 자신에 대한 군사적 봉쇄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한다.

   이처럼 상호간에 주장과 주장이 충돌하고 억제와 억제가 맞닥뜨리게 되면, 안보 딜레마는 더욱 심화되고 군비경쟁과 군사적 긴장은 더욱 격화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다면, 긴장의 수위는 일촉즉발까지 치닫고 우발적 무력충돌과 확전의 위험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 나의 안보를 강화하기 위한 조치가 상대방의 반작용을 야기하고, 여기에 또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이 오히려 나의 안보를 위태롭게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안보 이론을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1999년 6월 북방한계선(NLL) 인근 수역에서 남북한 해군 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한 이후, 서해는 ‘한반도의 화약고’로 불리워지고 있다. 1953년 8월 유엔군 사령관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NLL을 ‘영해선’으로 간주해온 남한의 입장과 이를 ‘유령선’이라고 반박해온 북한의 주장이 평행선을 그리면서 긴장이 높아져온 것이다. 1차 교전 이후에도 2002년과 2009년 두 차례의 교전 사태가 발생했으며, 2010년 3월 26일에는 백령도 인근에서 남한의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해 46명의 해군이 목숨을 잃는 비극적인 사건도 발생했다. 민군합동조사단은 천안함이 북한의 어뢰 공격에 의해 침몰했다고 발표했고, 이에 기초해 MB 정부는 사실상 남북관계 전면 차단을 강행한 5·24 조치를 발표했다. 특히 정부는 미국과 함께 동해와 서해를 오가며 대규모의 대북 무력시위를 벌이고 있고, 천안함 침몰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해온 북한도 해안포 시험 발사를 하겠다고 선포하는 등 위협적인 언행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런데 세 차례의 서해교전과 천안함 침몰 사태를 유심히 들여다보면, 남북한 사이에 전형적인 안보 딜레마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안보 딜레마란 자신의 안전을 증진하기 위해 취한 조치가 상대방의 반작용을 야기해 오히려 자신의 안보를 위태롭게 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1차 교전은 남쪽 함정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쪽 함정을 차단 기동으로 밀어내는 와중에 발생했고, 선체가 견고하지 못한 북쪽 함정은 큰 피해를 당했다. 그리고 3년 후 북쪽 함정은 바뀐 교전규칙으로 2차 교전에 나섰다. 차단 기동을 위해 접근하던 남쪽 함정에 선제사격을 가한 것이다. 큰 피해를 본 남쪽도 교전규칙 수정에 들어갔다. ‘경고 방송→시위 및 차단 기동→경고 사격→위협 사격→격파 사격’으로 나뉘어 있던 규칙을 ‘경고 방송→경고 사격→격파 사격’으로 대폭 간소화한 것이다. 작년 11월에 발생한 3차 교전은 철저하게 이에 따라 이뤄졌다. 승리한 남쪽은 교전규칙 수정에 대해 ‘잘했다’고 승전가를 불렀지만, 그 후과는 안보 딜레마의 심화로 이어지고 말았다.

   3차 교전에서 패퇴한 북한은 해안포와 지대함미사일의 발사 태세를 강화했으며, 올해 초에는 NLL 인근 수역을 항해금지구역으로 선포하고는 대대적인 해안포 훈련 사격을 실시했다. 이에 대해 남측 군당국은 북한이 유사시 서해상의 해안포와 지대함미사일을 동원할 것으로 판단하고, 초계함의 작전 구역을 백령도 등 섬 인근까지 근접 기동하는 것으로 조정했다. 이와 관련해 김태영 국방부 장관은 천안함 침몰 일주일 후 “북한이 세 차례의 서해해전을 통해 함정 대 함정 전투에서는 이기기 어렵다는 점을 깨닫고 해상 도발뿐만 아니라 지상무기 공격 등 새로운 방법으로 도발할 것이라 판단했다”며, “북한이 방사포, 지대함미사일 등으로 공격할 경우 섬을 활용해 피할 수 있도록 백령도 뒤쪽으로 기동하는 작전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남측 군당국은 서해에서의 유사시 섬을 엄폐물로 삼고자 했던 것이고, 천안함 침몰은 조정된 기동 훈련 중에 발생했던 것이다. 이는 천안함 사태가 지난 세 차례의 서해교전을 거치면서 안보 딜레마가 격화되는 와중에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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