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영 / 사회학과 박사과정


  떠난 연인에 대한 그리움과 혼자 늙어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자살을 결심한 한 남성이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싱글맨>(감독 톰 포드, 2010)은 주인공 조지가 자살을 결행하기로 한 하루를 담아낸다. 시대적 배경은 1960년대, 풍요로웠던 전후 미국이다. 동시에 냉전의 격화로 핵 전쟁과 매카시즘의 공포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이기도 하다. 조지는 전후 영국에서 건너온 중년의 백인 대학교수이며, 동성애자다. 제목인 ‘싱글맨’이 암시하듯 영화는 연인의 부재로 인한 외로움과 사회적 소수자로서의 고독이 맞물려 세상에 홀로 남겨진 이의 고독을 극적으로 부각시킨다. 조지는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16년 동안 함께한 연인의 장례식에 초대받지 못했고, 오랜 친구에게도 그의 사랑은 ‘사랑’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영상 위, 당신들의 동성애

 


 최근, 비단 <싱글맨>과 같은 외화뿐만 아니라 국내에서 생산되는 영화와 드라마에서도 동성애자의 등장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주말 저녁 시간, 동성애자 커플의 안방극장 상륙이 한국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고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동성애에 대한 시선은 점점 더 너그러워지는 듯하다. 그러나 소위 이러한 ‘동성애 코드’의 범람이 자유주의적인 동성애자 인권운동 혹은 급진 성정치학의 성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와 같은 의혹은 두 가지 측면에서 드러난다. 동성애 코드가 출현하는 맥락이 불륜과 ‘막장’이 판치는 작금의 안방극장에 등장한 자극적이고 신선한 이야기꺼리로써 제시된다는 것과, 사랑의 낭만성을 극대화한 사랑 지상주의의 또 다른 판본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21세기에 들어, 오랫동안 존재 자체를 부정당해온 동성애는 1990년대 동성애자 인권운동과 홍석천의 커밍아웃 등으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동성애가 스크린에 재현되는 맥락은 이와 좀 다른 듯하다. 동성애가 등장하는 영화 대부분이 선정적인 노출과 베드신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그것은 주요한 홍보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의 아름다운 외모는 극대화되어 표현된다. 점점 더 자극적이고 노골적인 이야기를 원하는 대중들에게 동성애는 금기를 은밀히 엿보는 쾌락과 화려한 시각적 쾌락을 동시에 제공해주는 코드가 되었다. 즉, 동성애는 대중들의 소비욕구를 흡족하게 충족시켜주는 잘 팔리는 ‘상품’ 중 하나가 된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또 하나의 재현방식은 이들이 절대적 ‘사랑’의 표본이 된다는 점이다. 여기서 동성 간의 사랑을 금기시하는 한국 사회의 배타성은 오히려 이들 사랑을 방해하는 극적 장치로 등장한다. 사회구성원 모두가 이러한 배타성을 몸소 체험하고 있기에 그들은 더욱 사랑의 순수함과 절대성의 구현자로 제시된다. 이성애적 사랑 지상주의는 헌신할 대상의 성별만 바꾼 채 다시 되풀이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싱글맨>으로 돌아가 보자. 비록 영화가 생산된 사회적 맥락은 다르지만 생산되고 소비되는 지점은 한국 사회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응시의 쾌락이 극대화된다는 점, 사랑 지상주의가 유사하게 반복된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현재 재현되는 동성애를 두고 ‘당신들의 동성애’라고 지적하듯, 영상 위로 펼쳐지는 비현실적이고 우아한 세계는 현실과 분리된다. 현실 속 동성 간의 사랑이 위치할 공간은 여전히 허락되지 않는다. 동성애는 현실 속 실재가 아니라 픽션 안에서, 오직 상상적으로 존재할 따름이다. 이렇게 창조된 상품으로써 ‘동성애’는 다시 현실의 ‘동성애’와 ‘동성애자’를 만들어 내고, 동성애자를 이성애자와 다른 존재, 구별된 존재로 분리시킨다. 이러한 메커니즘이 더욱 문제적인 것은 상상적 구별이 실제적인 구별로 확정되고, 이러한 분리가 차별의 조건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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