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가 후보직 사퇴 의사를 밝혔다. 김 후보자는 기자회견에 앞서 청와대에 자신의 의사를 알렸으며, 이명박 대통령은 이를 수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27일 예정이었던 총리 인준 표결을 1일로 연기하고, 그때까지 여야가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직권상정을 하겠다는 청와대의 발언을 떠올리면 다소 갑작스러운 일이지만, 그간의 여론을 살펴보면 당연한 행보이기도 하다.

사실 인사청문회 과정을 거듭할수록 샘솟듯 생겨나는 의혹들에 국민들이 크게 실망했음은 물론이고 여당까지도 이번 개각을 어떻게 처리해야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간 청문회를 통해 김 후보자가 2006년 경남지사 재선 당시 선거자금 십억을 은행에서 빌려 은행법을 위반한 사실이 밝혀졌으며, 거창 군수 선거 당시 선거자금을 빌려준 건설회사가 수차례 도청 공사를 수주, 정경유착의 혐의를 벗지 못했다. 또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을 알게 된 시점을 1년이나 늦춰말하고, 도청 여직원을 자택 가사일에 동원한 사실을 부인하는 등 거짓말을 반복했으며, 부인과 장모가 공동소유한 건물에 대한 재산신고를 07년부터 누락시킨 점이 드러났다. 청문회 과정에서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무슨 착오가 돈과 관련해서 그렇게 많냐”며 “재산신고 16번 가운데 11번을 틀린 후보자”라고 꼬집어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김태호 후보자를 비롯해 논란이 됐던 청문회 후보자들의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의혹 등을 사전에 알았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명했다 하니, 우리는 이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 대통령은 8?5 광복절 경축사에서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의 기본철학으로 ‘공정한 사회’를 제시하면서 “공정한 사회를 위해서는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 “청와대가 그 출발점이자 중심이 되어야 한다” 등의 언급을 한 바 있다. 또한 청와대는 지난 23일 이 대통령의 지시라며 “인사검증의 더욱 엄격한 기준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청와대는 그 기준이 8·8 개각 대상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정한 사회’를 기본 철학으로 한 실천이 이와 같은 모습인 것을 보니 청와대는 아마도 ‘공정한 사회’를 재해석한 모양이다. 공정이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고르며 올바름’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대통령의 재해석에 따르면 ‘공정한 사회’는 본인이 내정한 이들에게는 공정의 규칙이 적용되지 않아도 되는 사회, 결과가 좋다면 과정에서의 ‘올바름’ 쯤이야 간단히 무시되어도 되는 사회가 된다. 공정한 사회를 향한 이 같은 청와대의 실천이 새삼스레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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