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근 / 미술비평가

  ‘미술’은 우리 생활 깊숙이 침투해 있다. ‘아트 팬시’, ‘아트 마케팅’, ‘유럽 현대미술관 기행’, ‘아트 펜스’ 등, 제품과 여행상품, 광고전략, 그리고 건설현장에 이르기까지 ‘미술’이라는 말은 상품의 고급화 전략에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되었다. 때문에 20세기 초 미국 미술시장의 등장에 초점을 맞추어 현대에 두드러진 미술시장 성장의 요인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미술시장의 형성요인들을 살피는 것은 동시대 미술시장의 본질을 파악하는 출발점이 될 뿐 아니라 예술가, 미술관, 갤러리, 비평가, 콜렉터 등 미술시장 구성요인들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발생하는 현대미술의 위상 변화를 이해하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미술 고유의 양식변화 혹은 미술이념의 변화를 중심으로 현대미술에 접근하는 전통적인 미학·미술사의 방식을 넘어선 예술 사회학 혹은 시각문화연구의 접근방식이다. 

 

미국 미술시장의 형성 요인들

 


  미술시장 팽창의 직접적인 원인은 무엇일까? 국내의 경우를 살펴보면 2005년 이후 미술시장의 규모가 급격히 팽창했다. 서진수는 <한국 미술시장과 경기변동>(2009)에서 “1인당 국민소득의 이만 달러 근접, 국부의 전반적인 증가, 부동산 가격의 급상성, 오백조 원에서 팔백조원에 이르는 부동자금, 금융시장의 대체투자 개발 붐, 삶의 질적 변화에 대한 갈망, 투자의 포트폴리오” 등을 미술시장 성장의 요인으로 지목한 바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미술은 일반적으로 상품의 지위를 갖고 시장을 통해서 거래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은 여타의 상품과 구별된다. 미술시장은 대중문화가 생산·소비되는 문화산업의 시장 구조와 가장 유사하지만, 동시에 그 범위를 벗어나는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미술시장은 그 작품들을 평가할 수 있는 전문적 자질을 가진 소규모 그룹들에 의해 매우 은밀한 방식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이들 전문가 집단의 성격을 살펴보면 그 특수성을 이해할 수 있다. 다이애나 클랜은 “갤러리, 미술관, 경매회사, 예술지원 정부기관, 기업 콜렉션과 같이 전문화된 조직 네트워크” 등의 전문가 집단이 미국 미술시장의 네트워크를 형성하며 시장의 발전을 견인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고 말한다. 예컨대, 194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미국의 현대미술 시장은 주로 갤러리(1940년대 약 20개에서 1970년대에는 그 수가 3배 이상 증가)를 통해서 이루어졌으나, 1980년대 이후에는 콜렉터, 아트 딜러, 옥션 회사 등이 미술시장의 핵심적인 요소들로 부각되었으며 이들 기관들의 본격적인 성장과 함께 미술시장은 급격히 팽창하게 되었다.

 

정부 기관 및 기업 콜렉터

 


  미국 미술시장이 1940년 등장한 이래 지속적으로 팽창하게 된 주요 원인 중의 하나는 정부와 기업 기금의 유입이다. 6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연방·주정부·기업의 펀드들은 예술 일반에 대한 지원의 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예컨대 1965년에 설립된 연방예술기금이 예술에 지원한 금액은 1966년 일백팔십만 달러에서 1983년 일억삼천백만 달러로 증가했으며 기업의 예술관련 지출은 이천이백만 달러에서 사억삼천육백만 달러로 증가했다. 또한 모든 주의 지원 금액을 합하면 1966년 이백칠십만 달러에서 1983년 일억이천오백만 달러로, 펀드조직의 지원금액은 1966년 삼천팔백만 달러에서 1982년 삼억사천구백만 달러로 증가했다. 이들의 펀드 혜택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 바로 미술관이었다. 로날드 버만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한 형태의 새로운 후원자들은 예술의 사회적 기능을 인식하고, 예술을 종교 및 교육처럼 유권자의 이익을 증대시키는 사회적 필수품으로 인식했다.

예술은 청소년 폭력과 정체성 혼란을 추방하고, 기술직 숙련공들의 용기를 북돋아주며, 범죄를 예방하고, 고용 기회를 새롭게 창출한다. 예술은 마약중독을 대체할 수 있으며, 죄수의 자활 노력에 훌륭한 조력자가 될 수 있으며, 구시대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예술의 세례를 받으면 도시 중심의 피로감을 완화시킬 수 있으며 적대 문화의 색깔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로날드 버만, <아방가르드>(다이애나 크랜)에서 재인용

 이처럼 예술의 사회적 순기능을 목표로 미술을 지원했던 정부 기관이나 기업 콜렉터들의 후원은 초기 미술시장 형성의 주요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다. 대기업의 이사들은 한편으로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예술을 지원한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대기업 직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하고 홍보 이미지의 긍정적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 미술품 콜렉션을 시행한 대표적 기업은 도이치 은행이다. 세계적인 금융그룹인 도이치 은행의 미술품 컬렉션은 미술관의 규모를 능가할 정도이며, 최근에는 구겐하임 미술관과 협력하여 베를린에 기업 컬렉션을 위한 전시공간을 마련하기도 했다. 크랜이 지적했듯이 기업이 홍보의 수단으로 예술을 선택하는 이유는, 아마도 중산층에게 미술이 인간의 조건을 해석하고 사회적 가치와 신념을 공급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은 이처럼 중산층과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예술을 활용한다.

 

정치인과 부동산 개발업자 그리고 매스미디어

 정부와 기업의 예술기금 조성을 미술시장의 형성 및 발전에 긍정적 요인들로 바라보는 시각과는 달리, 밴필드의 주장처럼 예술기금의 조성을 문화산업과 연관된 로비활동의 결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예컨대 뉴욕시의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관광산업과 연합하여 뉴욕 및 기타 지역의 문화 활동 확대로부터 사업상의 이익을 챙기려는 속셈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에게 기금을 지원하고자 하는 연방·주정부의 의지 뒤에는 순회 예술전시회를 미국적 삶의 양식을 내세우는 프로파간다로 이용하려는 정치적 속셈이 숨어 있으며, 갤러리 및 이와 연관된 뉴욕의 특정지역에 퍼져 있는 서비스 업종들은 예술적 기반 시설들의 개발을 통해 경제적 이익을 챙긴다는 것이다. 정치인은 예술과 연관된 많은 일자리를 얻게 됨으로써 정치적 선전의 효과를 챙기는 반면,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맨해튼의 소호 지역에 예술적 공동체가 탄생함으로써 얻게 되는 부동산의 자산가치 상승에서 이익을 얻는다.  이러한 미술시장의 다양한 구성요인들은 각자의 목표에 따라 미술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고취하기 위해 노력한다. 미술시장의 성장은 이처럼 예술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기관들의 발전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현대미술의 발전방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할 수 있다. 미술과 관련된 다양한 조직들이 미술시장의 성장을 촉진하고, 그 결과로 나타난 미술시장의 팽창은 미술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변화를 가져온다. 이러한 변화는 미디어가 미술에 기울이는 관심이 커졌다는 사실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미디어의 관심 증대는 현대미술에 대한 우리의 접근성을 키워주고 미술을 대중문화의 중심으로 이끌어냈다. 특히 미디어가 추구하는 가치와 잘 부합하는 예술가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먼저 미디어의 초점이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요인들 이외에도 교육수준의 향상은 미술감상의 기회를 확대시켜 미술시장 성장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예술에 대한 미디어의 집중조명 덕분에 나타난 레저 시간 이용의 변화는 예술가들의 수적 증가 및 예술을 판매하고 전시하는 기관의 수적 증가를 촉진하며, 이를 통해 예술 기관들의 확장 및 미술시장의 성장을 추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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