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0.9 금 13:00
기획학술
미디어와 사회, 그 변증법적 상호작용노창희 / 중앙대 강사
천선영 편집위원  |  gmlssjrnf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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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호]
승인 2010.08.31  13:4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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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월터 리프먼은 1922년에 출판된 자신의 저서 <여론>에서 일반 수용자들은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없기 때문에 미디어를 활용하는 주체로서 한계를 가진다고 지적했다. 리프먼의 지적은 수용자가 갖춘 능력에 대한 회의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당시의 미디어가 가진 한계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수용자에게 무한한 접근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고, 3D 기술과 같은 재현기술의 발달은 갈수록 미디어가 제공하는 현실의 ‘실재성’을 높여주고 있다.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진전으로 인해 리프먼의 언급이 갖는 유효성이 떨어지게 된 것이다. 

  당대 사회에서 미디어 테크놀로지만큼 빠르게 변화하는 분야도 찾기 어려울 것이다. 휴대전화의 변천을 생각해 보자. 휴대전화만큼 본래의 용도에 비해 다양한 추가적 기능을 가진 기기도 드물다. 스마트폰에 탑재된 수많은 기능은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만 장착된 것일까. 휴대전화의 진화를 생각해 보면 미디어가 사회의 요구를 수용하는 것인지, 미디어가 사회의 요구를 새로이 만들어 내는 것인지 의문이 생겨난다. 

  미디어가 사회에 행사하는 파급력에 관한 저술로 가장 주목 받은 사상가는 아마도 마샬 맥루언일 것이다. 맥루언은 미디어가 단순히 인간 사이의 매개체 역할만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 양상과 커뮤니케이션 그리고 사회 전반의 성격을 결정한다고 얘기한 바 있다. 맥루언은 미디어의 영향력을 강조하면서 미디어가 ‘인간을 확장’시켰다고 설파했다.

  그는 자신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사후적으로 ‘기술결정론자’로 분류되었고, 추종과 동시에 엄청난 비판에 시달리게 된다. 그의 사상을 비판하는 입장을 거칠게 요약하자면 맥루언이 지나치게 기술의 힘을 맹신했다는 것이다. 맥루언의 사상을 어느 편에 위치시키느냐 이전에 중요한 것은 미디어의 기술적 진보를 중시하는 사상과 함께 이를 반박하는 입장 또한 존재한다는 점이다.

수용자 위상의 변화, 사회구성주의

  인터넷과 같은 상호적인 미디어가 등장하면서 미디어를 둘러싼 기술결정론에 대한 비판은 더욱 거세졌다. 매스미디어만이 존재하던 시절에는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는 수용자의 역할이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같은 미디어는 수용자의 능동적인 참여를 가능하게 했으며, 수용자의 위상 변화는 미디어로 인해 사회가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필요에 의해 미디어가 진화해 왔다는 주장을 대두시켰다. 이러한 시각을 ‘사회구성주의(social constructivism)’라고 한다.

  사회구성주의는 기술을 사회적 과정의 일부로 보고 기술이 사회 변화를 주도한다는 주장을 거부한다. 이는 뉴미디어와 관련된 주요한 저작들 곳곳에서 드러난다. 가령 제이 데이비드 볼터와 리차드 그루신은 <재매개>에서 미디어의 역사를 계보학적으로 분석하면서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기술발전에 근거하기보다는 사회적으로 구성된다고 봤다. 볼터와 그루신은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의 변증법적 역학관계에 주목하는데, 이들에 따르면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는 서로를 참조하면서 경쟁하고 그를 통해 발전해 왔다. 예를 들어 사진이 등장하기 전 회화는 현실 재현에 무게를 두었지만, 등장 이후에는 대상에 대한 재현보다 작가의 관념을 담아내는 형태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이처럼 볼터와 그루신의 시각은 테크놀로지 형성의 복잡한 과정을 구성주의적으로 조명했다는 측면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헨리 젠킨스는 수용자의 참여가 적극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미디어 기술 자체의 역할보다는 수용자의 역할을 강조한다. 젠킨스는 주저인 <컨버전스 컬쳐>에서 팬픽(Fanfic) 현상을 통해 수용자의 참여 양상을 설명한다. 팬픽이란 팬(Fan)과 픽션(Fiction)의 합성어로 독자들이 원작에 수정 및 변형을 가하는 행위를 뜻하는 용어다. 그는 수용자의 능동적 참여가 가능한 디지털화된 뉴미디어 환경에서는 미디어에 의한 기술적인 ‘결정’보다는 참여에 의한 ‘구성’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컨버전스 환경에서의 ‘집단지성’과 같은 사회문화적 측면을 강조한다. 

기술결정론이냐, 사회구성주의냐

  미디어와 사회적 커뮤니케이션 관계의 패러다임 변화를 두고, 기술결정론과 사회구성주의적 접근 중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미디어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생겨난 동시에, 인간의 삶에 미디어와 사회가 지속적으로 서로 영향을 주면서 변증법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미디어와 사회 중 어느 한쪽도 도외시하지 않는 접근이 될 것이다.

  수용자의 참여가 활성화될 수 있는 제반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 속에서 중요한 것은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수용자의 역량을 이끌어 내는 일이다. 집단지성과 같은 가치가 강조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피에르 레비는 집단지성을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조정가능하며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지성’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지성이 구축되기 위해서는 이미 갖추어져 있는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활용할 수 있는 수용자들의 역량이 중요하다. 이와 더불어 수용자들의 요구를 반영한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상호작용이 유기적으로 이루어질 때 미디어와 사회는 원활하게 교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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