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은실 /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구원

  ‘성’이라고 할 때, 사람들은 으레 이성애를 상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성애적 성행위의 합당한 장으로서 혼내 관계, 그것도 젊은 남녀로 구성된 부부 관계를 전제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의 생각 속에 성이란 기혼·이성애적 성과 등치관계에 있다. 이런 인식은 특정한 집단이 특정한 방식으로 향유하는 성을 정상적 성이라고 간주하고, 그것에서 벗어나는 성적 행위나 정체성 혹은 취향 등을 일탈, 변태 또는 비정상적 성이라고 보는 관점을 견지한다.     

  이러한 관점에는 성을 생물학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는 시각(남성의 생식기와 여성의 생식기 결합이 자연스럽고 따라서 그것이 욕망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과 성을 재생산 중심적으로 보는 시각(성행위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각)이 나란히 들어있다. 이 고정관념은 인간관계를 궁극적으로는 생식기적 관계에 다름 아닌 것으로 환원하는 문제나 절대 다수의 이성애적 성행위가 재생산과는 무관하게 이뤄진다는 사실, 그리고 상당수의 임신과 출산이 개인들 사이의 감성이 동반된 그야말로 이성애적 욕망과 쾌락이 동반된 행위라기보다, 기계적인 생식기 결합이나 기계의 개입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은폐한다.

  역사적으로 성에 대한 관념과 행동이 변해 왔다는 점을 비롯해, 무엇이 성적이고 성적이지 않은지, 무엇이 일탈적이고 일탈적이지 않은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결코 문화적으로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은 이러한 고정관념에 많은 질문을 제기한다. 예를 들어 역사의 어느 시기까지는 동성애적 행위가 그저 어떤 사람이 행하는 성적 행동에 불과했지만, 근대에 들어와 동성애적 행위는 한 개인을 다른 개인과 본질적으로 다른 인간으로 구별하는 잣대가 되었다. 버선을 벗은 맨발을 손으로 슬쩍 잡는 것이 나쁘지 않은 정도의 성적 희롱, 성적 놀이였던 적이 있었다면 지금은 배나 등, 쇠골, 골반뼈 등의 맨살을 드러내줘야 소위 ‘섹시하다’ 즉, 성적으로 ‘매력적이다’는 평을 듣는 정도가 된 것이다.

  한편, ‘킨제이 보고서’와 ‘하이트 보고서’ 등은 다수의 사람들이 사실상 기혼·이성애·재생산 중심의 성에 부합하지 않는 성생활을 생애동안 종종 혹은 꾸준히 향유하고 있다는 점을 밝히며 기혼ㆍ이성애ㆍ재생산 중심의 성을 정상적이고 이상적인 성으로 간주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설명이라기보다는 특정한 방식으로 이상화된 관념일 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성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생물학적 조건에 더해 한 사회의 정치·경제적 상황과 문화적 상황의 상호영향 안에서 구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특정한 성적 체위나 성적 행위 혹은 성적 정체성이 사회적 지위를 독점 승인받는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이 질문이 성정치의 문제제기이자 화두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분배권력’과 ‘인정권력’의 헤게모니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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