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5.5 화 23:34
기획사회
새로운 대학은 가능하다하승우 / 지행네트워크 연구활동가
이재원 편집위원  |  stjekyll@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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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호]
승인 2010.06.03  00:4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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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국의 대학이 처한 상황은 위기가 아니다. 대학은 ‘이미’ 파국으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올해 3월의 ‘김예슬 선언’은 대학을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공급하는 하청업체”로 묘사했다. 이를 누가 부정할 수 있을까. 심지어 대학이 손수 땅장사를 하거나 용역노동자들을 착취하기도 하니 막장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그 실상은 이미 드러났고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파국을 극복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대학에 새로운 윤리를 요구하라

얼마 전 경희대의 한 여학생이 화장실을 청소하는 아주머니에게 막말을 한 사건이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마치 심각한 문제가 터진 것처럼 난리지만 이미 윤리가 사라진 대학에서 무슨 패륜을 논하는가. 불법비자금 조성으로 형을 선고받은 대학 이사장이 ‘대학개혁’을 내세우며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현실과 대학의 용역노동자들이 최저임금이나 휴식공간을 요구하며 항의했다는 이유로 해고되는 상황에서 어떤 윤리를 얘기할 수 있을까.

지금의 대학이 비윤리적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사건들을 디딤돌로 삼아 대학이 자신의 윤리를 정의하고 실천할 것을 요구해야 옳다. 진리의 상아탑이라는 위선의 막을 걷고 자신이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 그것이 윤리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다시 말해 대학이 윤리라는 언어의 모순을 드러내고 진정한 윤리를 실천할 것을 요구해야 한다.

만일 대학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자신의 윤리를 증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예슬은 대학생이 대학을 거부할 수도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이미 증명했다. 또한 <녹색평론> 5?월호에는 미국에서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을 거부하자고 외치는 존 테일러 개토(J. Y. Gatto)의 ‘바틀비 프로젝트’라는 흥미로운 글이 실렸다. 이 글에서 개토는 “시위도 필요 없고, 돌을 던질 필요도, 반대를 위한 정치활동을 할 필요도 없다”고 얘기하며 답안지에 “나는 이 시험을 보지 않겠습니다”라고 쓰자고 주장한다. 만일 시험을 거부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으면 어떻게 하느냐는 물음에 개토는 이렇게 답한다. “이제 대학은 다른 무엇이기 이전에 하나의 사업이다. 고객을 필요로 하는 사업체인 것이다.” 그러니 고객이 거부의사를 밝히면 기업이 대안을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본주의의 윤리다.

지금은 대학이 이런 거부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등록금이 계속 오르면 굳이 국내대학을 다닐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교육개방으로 ‘막강한 경쟁업체들’인 외국대학들이 국내에 캠퍼스를 만들기 시작하면 누가 국내대학을 다니려 할까. 지금은 일개 신문사가 만든 ‘대학평가’에 목숨을 걸고 있지만, 과연 그런 방식이 계속 통할 수 있을까. 거부가 계속 이어진다면 대학은 그에 따른 대안을 고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구나 대학 밖의 다양한 학문공동체들이 늘어나면 대학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세미나팀, 생활공동체, 학회 등 대학 바깥의 공동체들은 대학의 변화를 자극할 수 있다. 여기에 관심을 기울이며 학생들은 대학에 끊임없이 새로운 학문을 요구해야 한다. 학생들이 공부를 하겠다는데 대학이 이를 말릴 수 있을까. 나의 요구, 우리의 요구를 ‘당당하게’ 대학에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대학생 선언, 대학원생 선언이 빛을 볼 수 있는 때다. 더 많은 선언이 새로운 윤리를 만들 수 있다.

생활로 엮인 자발적 학문공동체

선언이 특정한 사람들만의 언어가 아니듯 대학은 대학생들만의 공간이 아니다. 대학기구에서 일하는 노동자, 프랜차이즈 업체와 용역업체, 위탁급식업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대학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강의의 절반을 도맡는 시간강사도 노동자이고, 자신을 특권층이라 믿는 교수들도 사실은 대학에 고용된 노동자일 뿐이다. ‘미래의 노동자’인 대학생들은 이들과 대화를 나누며 자신의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과거의 학생운동은 학교 밖으로 나가 공장에서 ‘노학연대’를 외쳤지만, 지금은 대학 현장이야말로 노학연대가 필요한 최전선이다. 이미 곳곳에서 그런 흐름이 드러나고 있다. 고려대와 연세대, 이화여대 등 여러 대학에서는 학생들이 청소용역노동자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며 얘기를 나누는 모임을 만들고 있다. 이런 연대의 범위가 더욱 넓어져 강사와 교수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다면, 대학을 바꿀 든든한 힘이 될 것이다.

또한 연대가 꼭 과거의 이념적인 방식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그런 점에서 대학생활협동조합(이하 대학생협)의 구성과 발전과정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988년에 처음 만들어지고 현재 전국 22곳의 대학에서 활동하는 대학생협(www.univcoop.or.kr)은 대학구성원들이 자본을 공동출자하여 매점, 서점, 식당 등을 운영, 그 관계망을 확장시키고 있다. 이처럼 협동은 이념이 아니라 생활로 자신의 필요성을 증명할 수 있다.

지금의 대학에 가장 절실한 부분도 바로 협동이다. 서로가 자신의 몫을 내놓고 서로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주며 함께 할 일을 찾아야 한다. 학생들은 강좌뿐만 아니라 생활에서 여러 노동자들에게 도움을 받고 다양한 자원활동에 열정을 쏟을 수 있고, 교수와 강사들은 학교가 ‘정한’ 강좌 외에 자신있는 강좌를 열어 지역주민들도 초대할 수 있다. 노동자들 역시 다른 구성원들에게 자기 업무와 연관된 생활의 지혜를 가르치고 대학의 현안을 얘기하며 다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여기에 캠퍼스 근처의 상인들이나 지역주민들도 참여한다면 협동의 관계망이 더욱더 넓어질 것이다. 누군가 ‘멍석’만 깔아주면 이런 논의들이 이어질 수 있고,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대학당국 없이도 대학을 운영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런 흐름이 순조롭게만 진행되지는 않을 것이다. 족벌과 기업이 지배하는 대학은 이런 자율적인 흐름을 가로막으려 온갖 노력을 다할 것이고, 승자독식의 사회질서는 관계를 끊고 경쟁을 강요할 것이다. 하지만 생활로 엮인 공동체, 즉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공동체는 외부의 힘에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대학이 우리를 버린다면, 우리도 대학을 버리자. 비우면 채울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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