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지성 / 한국화학과 석사과정

‘본부’가 존재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학술이나 복지 등 학교생활 전반에 있어 학내 구성원들에게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미리 파악하여, 적절한 해결책을 마련하고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본부는 구성원들이 미처 보지 못했던 학내의 문제까지도 발견해야 할 의무를 지닌 ‘학교의 중추신경계’라고 할 수 있다. 일상적인 대상 속에 숨겨진 문제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막중한 임무를 띤 ‘예술가’처럼, 본부도 그 같은 역할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갈 수 있어야 한다.

현재 교내에서는 한창 학내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한 학생주체의 ‘부재’가 문제시되고 있다. 또한 구조조정으로 인한 ‘학과 통폐합’ 문제는 인문계, 이공계, 예능계의 학문적 고유성을 두고 구성원들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학과에서 학부로의 통폐합은 대학의 경쟁력을 이끌어 내고 발전을 도모할 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각 학과가 가진 ‘인력’의 끈이 없어져 이익과 손해의 상호 배타적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또한 이 과정에서 학생들과 직원, 교수들의 이견이 배제된 채 오로지 “세계 속의 중앙대”라는 실리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한 본부 측의 일방적인 태도는 본교가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는 데 다소간 일조를 하겠지만, 대의를 위한 소(少)의 희생을 반복적으로 발생시켜 또 다른 문제점을 낳을 것이다.

이렇게 벌어진 본부 측과 학내 구성원들 사이의 괴리는 얼마나 더 커질 것인가. 본부가 진정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양 측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학생들의 제안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고, 서로 간의 일방적인 외침은 메아리쳐서 되돌아올 것이다. 본부는 학내 구성원들이 정말로 중요하게 생각하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할뿐만 아니라, 구성원들의 개별적인 의견을 수렴하면서도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큰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때 가장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소양은 바로 ‘서로를 받아들이는 수용의 자세’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융통성’을 가지고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해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문득 사무엘 그래프톤의 명언 한 마디가 떠오른다. “1페니 동전을 당신 눈 가까이 대고 보면 우주에서 가장 큰 별도 안 보이게 할 수 있다.” 본부는 인습화되다시피 한 기존의 폐쇄적인 소통의 형식을 버리고 민주적 토론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구성원들에 대한 존중, 형평성의 기준을 잊지 말고 모두의 의견을 조율해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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