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우 / 정치외교학과 석사과정

해방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한국사회에서 ‘광장의 언어’ 중 대표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민주주의’를 들 수 있다. 4·19와 유신, 5·18과 6월 항쟁에 이르기까지 민주주의는 한국현대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줄기였다. 그러나 1987년을 기점으로 민주주의는 차츰 ‘경제’에 광장의 언어 대표선수 지위를 양보하게 된다. 이제 민주적인 게임의 룰이 어느 정도 ‘완성’됐으니 너도나도 ‘잘 살아 보자’를 외치며 무던히도 열심히 살았다. 그러던 민주주의는 이명박 정부 하에서 미국산 쇠고기 파동과 용산참사를 통해 다시금 ‘광장의 언어’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러나 저자는 근래 광장에서 민주주의가 부활하기 그 이전부터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지적하며 민주주의 저발전의 3대축을 제시한다. 첫째는 “보수적 민주주의”로, 보수적 민주화로 귀결된 한국 민주주의에서의 대의정치는 광범위한 사회적 요구와 개혁의제를 배제하는 동시에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한 역할 또한 태업함으로써 정치를 공분(公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노동 없는 민주주의”로,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노동세력은 배제당하고 정치적으로 대표되지 못함을 지적한다. 마지막은 “재벌개혁에 취약한 민주주의”로, 재벌이 권위주의 정권시절 정부의 철저한 비호를 받아 과대 성장한 이후 아직까지도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다며 시종일관 개혁의 대상임을 주장한다.

그렇다면 한국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한 과제는 무엇일까. 저자는 현대 민주주의 틀 안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대안은 결국 정치일 수밖에 없음을 역설하면서 그 중심에 정당을 위치시킨다. 즉 사회적 갈등을 완화시키고 통합하는 민주주의의 중심기제인 정당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는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의 구체적인 정당 역할론에 대한 분분한 이견은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한국 정당의 무능과 오만이 ‘민주주의’를 또다시 광장으로 소환한 한 축임은 명백한 사실이다. 또한 문제는 민주주의가 광장의 언어로 울려 퍼지는 일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광장으로 소환되기까지의 과정과 배경에 있다. 그런 점에서 민주화 이후의 한국 민주주의가 “질적으로 나빠졌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해준 것 또한 이명박 정부의 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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