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2.9 수 12:16
기획과학
진화론과 생태학김기윤 / 강원대 HK 연구교수
박휘진 편집위원  |  whyj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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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호]
승인 2010.06.02  22: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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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교양과학 코너에 생태학이라는 주제의 책이 한권 꽂혀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유진 오덤의 책일 것이다. 오덤의 생태학은 한 지역에서 인간을 포함한, 생물과 자연환경 사이에서 물질이나 에너지가 이동하며 균형상태가 유지되는 ‘생태계’ 개념을 핵심으로 한다. 그것은 2차대전 직후 열핵폭탄의 잔여 화학물질, 특히 방사성 물질들의 흐름을 추적하는 오덤 자신의 연구에 크게 의존하면서 형성되었기에 한때 ‘방사능생태학’이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그 자신이 강조했듯이 자연의 관리를 위한 응용학문이었다.
물론 생태계라는 용어는 이미 1935년 영국인 탠즐리에 의해 만들어져 사용되기 시작했다. 탠즐리 역시 영국제국의 자연을 기획하고 관리할 수 있는 과학적인 도구로서의 생태학을 추구하면서 생태계 개념을 생각해냈다. 유기체론적인 생태학을 주창하면서 인종주의적이고 위계적인 자신들의 사회를 정당화하려 들던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생태학자들과의 논쟁과정에서 생태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쓸 것을 제안하게 됐던 것이다. 이때 탠즐리가 그렸던 생태계란 열역학적이고 도식적인 세계였다. 즉,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생태학자들이나 현대의 환경보호론이 선호하는 전일론적인 세계가 아니라 생태학자들이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기계론적인 세계였다.

생태계생태학에서 진화생태학으로

책방의 교양서적 코너가 아니라 대학 도서관에서 생태학 교과서를 찾아보면 오덤의 생태학 교과서와는 매우 다른 내용의 교과서들을 발견할 수 있다. 대형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책들을 살펴본다면 아마도 1970년대부터 출판되기 시작한 피앙카나 리클렙스 또는 봇킨의 생태학 교과서들이 오덤의 책을 압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될 것이다. 이들의 생태학은 생태계 개념을 중요시 하지 않는다. 오덤 이전부터 생태학의 주요 개념이었던 ‘군집의 천이’나 ‘극상’ 역시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생물상을 오도할 수 있는 위험한 개념으로 취급된다. 식물의 천이는 기후대에 따라 일정한 패턴을 보이기보다는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인간의 간섭이나 식물 씨앗의 우연한 착지 등에 의해 교란되기 십상이며, 따라서 특정 지역의 식물상은 누더기 조각보와 같은 모양을 띠는 게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또한 동식물 개체군이 협력하는 형태로 한 지역의 우점종을 이룰 수 있다거나, 상이한 종들이 공생하는 형태로 안정된 군집이 극상을 이룰 수 있다는 생태계생태학의 시각도 잘못으로 본다. 생물 개체들 사이에서는 자연선택이 작동하는 경쟁이 있을 뿐이며, 생물상은 생명체처럼 자라는 것도 아니고 기계처럼 물질과 에너지를 전달하는 체계도 아닌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변화해 간다.

역사학자들은 오덤의 생태계생태학에서 열핵폭탄의 그림자뿐 아니라 오덤의 아버지, 하워드 오덤이 1930년대에 심취해 있던 뉴딜정신의 그림자도 읽어내기 시작했다. 오덤의 생태계생태학은 자연자원이나 환경을 정부가 나서서 중앙 집중적으로 관리하고 통제해야한다는 신념 아래 만들어진 생태학이기도 했던 것이다. 1971년에 출판된 오덤의 생태학 교과서 표지에는 아폴로 8호 우주선에서 찍은 달 표면으로부터 떠오르는 지구의 사진이 실려있다. 지구 전체가 마치 우주선과 같이 닫혀 있는, 그리고 관리되어야 할 연약한 체계임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인류의 삶의 터전을 우주선에 비유하는 생태계생태학의 시각은 매우 호소력 있는 비유였지만, 진화생태학자들은 이를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위험한 비유라고 본다. 우주선과 같은 중앙 통제자를 상정할 수 없는 이 세계에서, 지구 위의 인류는 차라리 물에 빠진 사람들로 가득한 대양에서 표류하고 있는 구명정 위의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자연자원이나 환경은 특정 소유자가 없는 공유지와 같아서, 이 공유지가 이용되는 방식은 중앙집권적인 관리가 불가능하다고 하딘은 주장한다.

오덤의 생태계생태학에서 정부와 환경학자들 사이의 공조를 통해 공공의 선을 추구하는 뉴딜 사회학의 이념을 읽을 수 있는데 반해, 피앙카나 리클렙스의 진화생태학에서는 국민국가의 중앙집권적 관리나 통제를 불신하는 반중앙집권적 감성이 읽혀진다. 물론 진화생태학자들은 생태계생태학이 이론적인 약점이 있다고 주장한다. 생태계생태학이 그리는 군집의 천이가 1960년대에 들어 잘못된 이론으로 확인된 집단선택이론에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집단선택이론은 생물들이 협력을 통해 함께 진화해 가는 모습을 그리면서 1차대전 직후 생태학자들 사이에서 크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그런데 2차대전 이후 게임이론 등을 통해 협력이나 이타적인 행위가 개체들의 이기적 판단과 선택으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진화생태학은 이렇게 생물학계의 패러다임 변화와 사회 환경, 이념의 변화가 함께 만들어 낸 생태학의 한 경향이다. 특기할 점은 피앙카나 리클렙스의 진화생태학 교과서에서는 자연의 관리나 통제를 위한 제언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환경보호운동이 자리잡아가던 1970년대에 역설적으로 많은 생태학자들이 생태계생태학을 멀리하며 진화생태학을 추구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환경을 논의하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많은 생태학자들이 환경론을 위해 생태학이 말해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보기 시작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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