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5.5 화 23:34
기획사회
영국 미들섹스대학 철학과 폐지 논란 - 대학은 공장이다이택광 / 경희대 영문과 교수
박휘진 편집위원  |  whyj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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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호]
승인 2010.06.02  21:5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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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자본주의와 불화할 수밖에 없는가. 물론 아니라고 말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대체로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인문학의 핵심이 비판에 있다고 했을 때, 인문학을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인문학의 본성과 상동하기 어렵다. 인문학이 본성상 자본주의와 불화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인문학에 내장되어 있는 회의주의가 언제나 기존의 체제에 대해 비판적인 ‘거리’를 확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경영자의 입장에서 볼 때, 자기 자신들이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정당하지만, 직원들이 인문학적인 사고를 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지적 지형도를 무너뜨리는 신자유주의의 바람

최근 영국에서 논란이 일어나고 있는 미들섹스대학(Middlesex University)의 철학과 폐지 문제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제는 대학당국이 경영상의 이유를 핑계로 철학과를 일방적으로 없애겠다고 통보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교수와 학생들은 즉각 반발하면서 학교 건물을 점거하고 철거농성을 벌였는데, 이제 사태는 전 세계의 인문학자들이 “철학을 구하자”라는 취지 아래 미들섹스대학의 지지서명에 참여하는 조직적인 운동으로 발전하고 있다.

<가디언>에 기고한 조내선 월프 교수(런던대)의 지적처럼, 미들섹스대학 같은 신생대학이 경영난을 이유로 철학과나 기타 ‘장사’가 되지 않는 인문학전공 학과들의 문을 닫는 일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장구한 역사를 자랑했던 맨체스터대학의 고전학과가 없어진 것이나 영국문화연구의 산실인 버밍엄대학의 문화연구학과가 사라진 것은 신자유주의 이념의 도입 이후 영국대학에 불어 닥친 변화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굵직굵직한 학과들도 없애버리는 마당에 미들섹스대학처럼 ‘작은 대학’의 철학과 하나쯤 폐과하는 것이 뭐가 그렇게 대수인가 싶은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러나 사정이 그렇게 만만한 것은 아니다. 미들섹스대학은 영미권을 통틀어 대륙철학을 제대로 가르치는 몇 안되는 철학과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다. 신생이긴 하지만 미들섹스대학만큼 최근에 이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주목을 받는 대학은 없다. 월프의 말처럼, 미들섹스대학의 철학과가 없어진다면 영국은 유럽의 지적 지형도에서 한 발을 뒤로 빼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최근 목격할 수 있는 프랑스철학의 약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앞으로도 당분간 대륙철학은 보편적 인류의 지적 사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이런 상황에서 미들섹스대학의 철학과처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곳을 경영상의 이유로 폐지한다는 것은 영국 전체, 아니 더 나아가 영미권 전체로 봐서도 어마어마한 손실을 초래할 것이 명백하다.

이 대학의 철학과에 재직하고 있는 대표적인 철학자들이 바로 피터 홀워드와 피터 오스본이다. ‘두 명의 피터들’이라는 농담이 오갈 정도로 두 사람은 이 대학의 철학과를 대표하는 인물들이자, 현재 영미권뿐만 아니라 대륙철학의 본산지에서도 주목받는 대표적인 학자들이기도 하다. 홀워드는 알랭 바디우의 제자로 바디우의 철학을 적극적으로 영미권에 소개하고 이를 토대로 독창적인 이론을 구축해가고 있는 소장학자이고, 오스본 역시 비판이론에 근거해서 프랑스철학의 문제점들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는 논문들을 발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학자들인 만큼 대학이 내세우는 것처럼 경영상의 부담을 그렇게 많이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경영의 입장에서 봐도 이들은 ‘낮은 임금’을 받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이번 미들섹스대학의 철학과 폐지는 경영을 담당한다는 이들이 갖고 있는 인문학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관련을 맺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대학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한정된 재정을 특정한 분야에 집중시켜야 한다는 발상은 신자유주의 이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현대판 ‘종교’는 머리만 있으면 손발 따위는 없어도 된다는 식의 세계관을 경영인들에게 주입해왔다. 그 결과가 바로 인문학에 대한 대학당국의 홀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공장이 된 대학, 파업하라!

미들섹스대학의 서명운동에 동참하면서, 나는 “이런 풍경은 너무도 한국에서 익숙하다. 이것은 미들섹스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의 문제이다”고 부기했다. 영국의 교육부장관이 한국의 대학을 본받자고 주장할 정도로 한국의 대학은 솔선수범해서 ‘반인문학적 경영’을 펼쳐왔다.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중앙대의 문과대학 개편도 이런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배우려는 바깥의 것이 사실은 우리에게 이미 있는 것이라는 역설이 여기에서 발생한다. 문제는 대학이라는 곳이 기업이나 공장과는 달리, 정책의 결과가 하루아침에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책의 오류를 깨닫고 수정하더라도 그 이전의 상태로 되돌려놓기는 상당히 어렵다. 왜냐하면 교육의 문제는 ‘계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육은 이렇게 자기계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과정을 내포하고 있다. 특정한 개인의 결정이나 선택이 교육 전체의 질서를 뒤흔들어놓을 수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교육을 사유물이 아니라 공공재라고 말하는 것이다.

대학 건물을 점거하고 농성을 벌이는 미들섹스대학의 풍경은 흡사 1968년 5월을 다시 보는 것 같았다. 학생들이 내건 현수막에 쓰여 있는 문구는 “대학은 공장이다. 파업하라! 점거하라!”였다. 촌철살인의 슬로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진정 대학을 공장으로 만들고, 교수들을 노동자로 만들고 있는 주역은 누구인가. 공장의 인문학, 이것이 21세기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화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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