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5.5 화 23:34
기획사회
시장의 대학 식민화와 대안적 교양교육문성훈 / 서울여대 바롬교양대학 교수
이재원 편집위원  |  stjekyll@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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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호]
승인 2010.05.07  17: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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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 대학은 전례 없는 혁신 요구에 직면해 있다. 이른바 무한 경쟁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를 통해 대학이 더욱 대학다워진다면 이를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경쟁력이 단지 시장에서의 경쟁력이라는 데 있다. 즉 대학은 시장원리에 부응해야 하는 하나의 산업이며, 시장에 의해 선택받기 위해 그것이 요구하는 연구와 교육 상품을 생산해야 한다. 물론 시장의 주체는 기업이고, 따라서 대학은 기업의 요구를 마치 절대정신인양 받아들이며, 기업에 자신의 영혼을 파는 일을 서슴지 않는다. 그 결과 ‘CEO형 총장’이란 말처럼 기업경영자 출신이 이윤추구와 무관한 최고 교육기관의 수장으로 각광받고, 기업 경영 기법이 대학에 도입되고, 대학은 기업 연구소에서 컨설팅을 받는다. 더구나 학문 연구는 기업의 취향에 맞는 영역에 집중되고, 학자가 아니라 기업가형 대학교수가 등장하는가 하면, 교수 사회에는 학술적 경향보다 투기적 경향이 확산된다. 학생들은 어떤가. 취업을 향한 무한 질주 속에서 기업이 요구하는 우수한 상품으로 간택되기 위해 오로지 ‘스펙 쌓기’에만 몰두하고 있지 않은가.

시장의 노예가 될 것인가 주인이 될 것인가
이렇듯 시장의 압력에 굴복하여 자신을 혁신한 대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우리는 어떤 근거에서 이를 대학 본래의 정체성에서 벗어난 비정상적 모습이라 할 수 있을까. 역사적으로 볼 때 대학은 중세 이래로 자치, 담론, 교양 공동체라는 전통을 통해 고유한 정체성을 확립해 왔다. 즉 대학은 국가나 여타의 권위체로부터 독립하여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대화와 토론, 그리고 합의를 통해 운영된다는 점에서 자치 공동체였다. 그리고 대학에서는 어떠한 주장이나 지식도 비판과 반론을 통해 검증되지 않는 한 진리성을 주장할 수 없고, 따라서 연구와 교육이 대화와 토론을 통해 진행된다는 점에서 담론 공동체였다. 대학이 교양 공동체라는 것은 대학이 전공과 별도로 세계에 대해 자유롭게 사고하고 토론할 수 있는 보편적 인간을 길러낸다는 뜻이며, 이는 대화와 토론, 비판과 반론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대학생의 보편적 역량으로 본다는 것을 말한다. 이런 점에서 대학의 모든 활동은 하버마스가 말하는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따라 수행되었다고 할 수 있다. 즉 공동의 문제에 대해 자기주장을 펴되, 근거제시를 통해 이를 논증하고, 모든 논증은 다시 그 근거를 물으며 비판할 수 있고, 보다 나은 논증에 근거하여 합의를 형성하는 행동방식 말이다.

이렇게 대학의 정체성을 의사소통적 합리성에 기초한 자치, 담론, 교양 공동체로 볼 때 시장 경쟁력만을 강조하는 대학은 사실상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한 채 시장의 식민지로 전락한 것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과연 대학이 시장의 식민지로 안주할 수 있을까. 많은 대학생이 시장의 요구에 따라 자신의 모든 것을 바꾸었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은 청년실업이나 ‘88만원 세대’라는 말처럼 시장에 의해 버림받고 있다. 그러나 청년실업, 비정규직 증가가 대학이 교육을 잘못 시켰기 때문일까, 아니면 근본적인 경기변동에 따라 좌우된 일일까. 시장의 식민지는 결코 시장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대학이 더 이상 시장에 유린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의사소통적 인간 육성을 위한 대안적 교양교육
오늘날 한국 사회는 급격한 시대 변화를 겪고 있다. 정치적으로 민주화 시대, 문화적으로 다양성 시대, 공간적으로 세계화 시대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 혁신이 요구된다면, 시대 변화가 요구하는 보편적 역량을 육성해야 하고 시장의 요구 역시 이러한 시대적 요구를 충족하는 가운데 수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마치 시장의 요구가 시대 전체의 요구인양 절대화된다면, 이는 시대가 필요로 하는 역량을 육성하는 데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시장의 요구 자체도 충족하기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이 시대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면서도 대학 고유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의사소통적 인간 육성을 위한 ‘교양교육’일 것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 변화는 정치적, 문화적, 민족적 차이를 전제로 국내외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의사소통적 인간을 필요로 하며, 대학의 정체성 회복도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가치를 회복할 때 가능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법학적성시험, 공직적격성시험, 그리고 대기업에서 실시하는 직무적성검사조차도 결국 인간, 사회, 자연, 문화, 예술에 대해 논증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한다. 의사소통적 인간에 대한 실용적 요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의사소통적 인간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대안적 교양교육이 필요하다. 첫째, 많은 대학이 말하기, 읽기, 쓰기 등 이른바 의사소통과목을 교양과목으로 개설하고 있지만, 대개 이는 자기표현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상호 간의 합리적 소통을 중심으로 한 의사소통적 합리성 교육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둘째,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인간, 사회, 자연, 문화, 예술과 관련된 다양한 주제에 대해 주장하고, 비판하고, 합의를 도출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타인과 의사소통을 하는 것은 항상 구체적인 주제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이러한 능력은 철학교육을 통해 길러질 수밖에 없다. 철학만이 다양한 영역의 문제를 메타 이론적으로 다룰 수 있는 유일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셋째, 이러한 교육은 의사소통적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의사소통적 합리성은 바로 의사소통행위를 통해 길러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강연식이 아니라 문답형 토론식으로 진행되는 수업, 강의 내용 숙지가 아니라 공동의 과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형 학습, 그리고 지식이 아니라 논증적 사고력을 대상으로 한 평가가 그것이다.  
 
시장에 의한 식민화 극복과 대학의 정체성 회복이라는 원대한 과제 앞에서 고작 의사소통적 합리성 교육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너무도 소박한 생각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대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 걸음일 수 있다면 과소평가될 수만은 없다. 대학이 이런 시도마저 포기한다면, 필연적으로 내부로부터 터져 나오는 저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는 김예슬 양의 말이 그 단적인 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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