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우 / 영화평론가

태양계에 흩어져 사는 백년 후의 인류는 수명을 연장하고 정신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신체의 기계화와 유전자조작이라는 두 유형의 기술을 개발한다. 이 기술들은 실용적 도구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인종갈등, 전쟁, 신인류로의 진화라는 기술-생태-정치문제를 제기한다. 사람의 변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저자인 브루스 스털링은 기계주의와 조작주의간의 갈등을 주제로 시리즈 소설을 썼는데, 이 작품은 그 중 하나다. 

줄거리는 ‘운동권 학생’ 린지가 고향 위성을 탈출하여 해적의 일원으로 겪은 무용담, 위기 시마다 정략적이지 않은 것처럼 서술되는 정략적 사랑, 숙적 콘스탄틴과의 결투, 인류의 생물학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발견 등 약 150년에 걸친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오디세우스의 SF판본이라고 할 수 있다. 윌리엄 깁슨의 <뉴로맨서>나 워쇼스키 형제의 <매트릭스>가 주로 기계주의자의 세계를 다루었다면 여기서의 무게 중심은 주인공들이 속한 조작주의에 있다. 기계주의는 ‘전선 머리’로 놀림을 당하는 퇴물로 그려지는 반면 조작주의는 독침을 가진 날아다니는 나방(현대식 병기), 매춘부의 자궁을 들어내고 쾌락 중추를 집어 넣는 성(性)공학, 유전형질에 따라 분류된 탁아소, 몸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는 회춘 바이러스, 외교술을 높이기 위해 정직함을 잊게 만드는 약물, 사별한 친구를 복제하여 입양하기 등 가공할 풍경으로 소개된다.
   
1985년도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작가의 미래학자적 식견이 돋보인다. 양 ‘주의자’ 간의 투쟁은 스스로를 ‘투자자’로 부르는 외계인의 등장으로 종식된다. ‘스키즈매트릭스’란, 새로 열린 데탕트 시대의 이름으로서 겉으로는 “다양성 속의 하나 됨”을 표방하지만 외계인들은 우월한 기술을 이용하여 인류의 재산을 등쳐먹는다. 동서냉전이 끝나면 미국주도의 ‘세계 평화’ 아래서 진행될 신자유주의적 약탈을 빗댄 것이다. 이를 비난하며 대변혁을 주창하는 젊은이를 두고 린지는 “젊은 세대가 사기 행각의 베일을 벗기려고 발버둥치고 있지만, 그 베일이 자신들이 사는 온 세상을 그려 넣은 화폭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린지는 엘리트의 공동체 지배와 아웃사이더들의 무정부주의 운동을 피할 수 없는 역사 법칙으로 본다. 그가 제시하는 제3의 길은 인류가 훨씬 다양한 종으로 계통 분기하여 한 단계 상승한 복합체로 나가는 진화론적 방법이다. 진공이나 물속에서 살도록 진화함으로써 환경의 블루오션을 찾자는 것이다. 하지만 자원의 제약을 무력화시키는 인종의 무한한 세분화전략이 가진 자들의 경쟁적 투자를 종식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게다가 세계화의 원리가 이윤의 법칙 아래 혁신과 다양화를 장려한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생물학적 다원주의를 촉진시키는 진화 프로젝트는 자유주의의 우생학적 버전과 종이 한 장 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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