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차랑 / 한국화학과 석사과정

  내가 연구하는 회화는 눈에 보이는 실체가 아닌 보이지 않는 실체를 그림에 담아내기에 작업의 발단, 과정, 논리 자체가 주관성, 관념성이 강하다는 점을 밝히며 연구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작업의 모티프는 나의 일상적 경험으로부터 얻었다. 자취생활 중, 청소를 하면서 ‘나’라는 객체가 공간에 개입하기 전과 후의 변화들을 유심히 살펴보다가 재미난 시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가 인식하는 현상은 나에게서 비롯되며, 그 현상 안에서 수없이 많은 관계들이 형성된다.

  이를테면 바닥에 있던 물이 담긴 물컵을 닦아 싱크대에 올려놓았을 때를 생각해보자. 나의 행동개입으로 인해 물컵은 바닥에서 싱크대로 위치이동을 했고, 컵 안에 있던 물은 하수구로 빠져나가 물의 특성상 무한한 분자로 나뉘어 무한한 가변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이와 같이 나의 행동으로 파생된 관계들로 인해 가시적(사물의 변형, 위치적 이동 등), 비가시적(습도, 공기, 감각 등)인 변화들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발생된 변화는 나를 바꾸며, 내 주변을 바꾼다.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유일하게 불변하는 것은 변화”라고 말했다. 지구 만물에 시간과 내(인식의 주체)가 개입하고 있는 한, 변한다는 것은 불변하는 것이며, 그 변화의 주체는 모두 ‘나’로부터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내 그림에서는 움직임의 연속된 순간들이 입체적으로 합성돼 움직임 자체가 하나의 유기체로 드러난다. 그 유기체들은 마치 물렁물렁한 액체처럼 보이며, 여러 유기체들과 화면을 구성한다. 유기체들은 다른 유기체들과 융합하기도 하고, 이로써 새로운 형태의 유기체가 생성된다. 이처럼 유기체는 모든 물질의 움직임의 Arche(혹은 아우라)이기도 하며, 융합은 ‘나’와 외물(外物)과의 관계형성을 말한다.

  융합된 유기체가 명확하지 않은 형태로 드러남으로써 나와 외물간의 심적 융합이 생겨나기도 한다. 또한 화면을 구성하는 움직임의 과정을 표현할 때는 소재이미지로 실제 행인들의 영상을 찍어 그들의 움직임들을 스크랩한다. 영상에 포착된 행인들에게는 일상적인 움직임일 수 있겠지만, 나의 그림에서는 일상의 모습들이 입체적으로 합성되어 낯선 모습을 띠게 된다.

  일상이란 터전에서 숨쉬고 있는 우리. 각자의 손끝에서 시작되는 작은 변화들을 통해 주변과의 관계를 느껴보도록 하자. 우리가 일상이라 느꼈던 반복된 터전이 조금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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