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지연 / 문예창작학과 석사과정

찰리 카우프만, <시네도키, 뉴욕>

<이터널 선샤인>, <어댑테이션> 등의 각본가로 알려진 찰리 카우프만의 첫 연출작 <시네도키, 뉴욕>은 라디오 방송의 패널이 들려주는 릴케의 시 <가을날>의 마지막 연으로 시작된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못할 것입니다 / 지금 고독한 사람은 계속 외롭게 머물며 / 잠이 깨어,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쓰게 될 것입니다 / 그리하여 낙엽이 뒹구는 가로수 길을 / 불안스레 이리저리 방황할 것입니다.”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 크쥐스토프 펜데레츠키의 <8번 교향곡 ‘덧없음의 노래’> 11악장의 합창부에도 릴케의 <가을날>이 등장한다. 이 곡은 19~20세기 독일 시들을 바탕으로 작곡된 것으로, 젊은 시절 난해한 음악들을 작곡했던 펜데레츠키가 일흔이 넘어 쓴 고전적이고 서정적인 교향곡이다. 작년 봄, 이 곡의 한국초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한 치의 사족도 없이 구성된 오케스트라와 경건한 합창 속으로 자유롭게 들고 나는 성악부, 관객들의 머리 위에서 하늘의 음성처럼 들려오던 알토 트럼펫의 웅장한 울림은 새삼 거장의 손길을 느끼게 했다. 대개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과 달리 모든 악기를 배제하고 공허하게 울리는 타악기만을 배치한 것, 그리고 마지막까지 남은 합창부의 노랫소리가 점점 잦아들며 사라져버리는 곡의 끝맺음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 곡의 모든 구성물들은 마치 처음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왔던 듯 아무런 격정도 없이 침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덧없음의 노래’라는 곡의 주제가, 곡의 운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시네도키, 뉴욕>의 주인공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연극연출가 케이든이다. 그는 뉴욕의 한 창고에 실물 크기의 도시 세트를 짓고, 그 무대 위에 정직하고 진실한 인생을 담은 연극작품을 올리기로 한다. 자신이 만난 모든 사람들의 역할을 맡아 줄 배우를 찾고, 자기 자신의 대역을 찾고, 그 대역의 대역을 찾는 동안에, 기어코 자신이 그 극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케이든의 세계 바깥에는 감독 찰리 카우프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허구를 좇으며, 우리가 발 딛고 선 세계에 필적하는 또 다른 세계를 건설하려는 자들의 마음을 카우프만만큼 잘 이해하는 감독은 흔치 않다. <시네도키, 뉴욕>의 결말은 미리 약속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펜데레츠키 교향곡 8번의 수순을 따르는 듯하다. 스스로 창조한 모든 인물들이 죽음에 이르는 순간, 그 자신의 죽음마저 확정하는 베케트의 소설 <말론, 죽다>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작품들이 우리에게 설명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기로 한다. 일부가 전체이고, 또 전체가 일부를 지시할 수밖에는 없는……, 이것은 그저 거대한 제유들의 카니발일 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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